공관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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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기회의 땅, 태양의 나라 멕시코
주멕시코대한민국대사관 엄재영 상무관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우리의 삶이 과거와는 참 많이 달라지고 있다. 최근에 개발된 제주도 여행상품 중에는 항공기에 탑승한 채로 제주도 상공을 선회하고 돌아오는 두어 시간짜리 일정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여행이나 출장을 위해 공항에서 항공기에 탑승할 때의 설레임과 기대를 조금이나마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참신한 아이디어인 듯하다. 그럼 전화나 SNS로부터 해방되는 비행기 안에서의 시간을 좀 더 오래 즐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서, 지금 이 순간에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는 가장 비행시간이 긴 항공편은 무엇일까? 정답은 지구 반대편 아메리카 대륙의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 아즈텍 문명의 후예, 태양의 나라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 시티행 항공편이다. 한국과 멕시코는 얼핏 보면 참 다른 점이 많다. 지구 반대편에 있어서 한국보다 14시간이 느릴 정도로 시간대도 전혀 다르고, 국토면적은 멕시코가 약 200만㎢로 세계 14위인데 반하여 우리는 남북한을 다 합한 면적이 약 22만㎢, 세계 85위권으로 멕시코와 비교하면 10분의 1을 조금 넘는 정도다.

하지만 한국과 멕시코는 닮은 부분이 더 많다. 먼저, 음식문화부터 시작하자면, 한국에서 온 유학생, 기업의 주재원, 그리고 관광객들도 멕시코에서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 고생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한다. 매운 음식을 즐기는 아시아 대표로 대한민국, 아메리카 대륙 대표로 멕시코를 꼽을 수 있고, 술도 비교적 독한 술인 소주·위스키(한국)와 데킬라(멕시코)를 즐기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으로는 음악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다. 우리나라 TV 예능의 대세는 ‘전국노래자랑’부터 시작해서 최근의 ‘미스터 트롯’까지 노래와 춤 실력을 겨루는 프로그램이었고, 이런 탄탄한 국내 기반을 바탕으로 한국 아이돌 그룹의 인기가 전세계에서 날로 상승하고 있다. 멕시코의 경우에도, 전통의상인 ‘판초’와 챙이 넓은 밀짚모자 ‘솜브레’를 멋들어지게 갖춰 입고 노래를 부르는 악사(樂士), ‘엘 마리아치’를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다. 축구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다. 특히나 최근에는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맺은 한국과 멕시코간의 성공적인 협력을 계기로 멕시코 국민들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한층 상승했다고 한다. 우리 대표팀은 조별 예선전에서 멕시코에 1:2로 패배하여 결국 16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명예회복을 위해 나섰던 마지막 경기 독일전에서 2:0으로 승리한 덕분에, 멕시코가 스웨덴과 함께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축구 사랑이 넘치는 멕시코 국민들이 우리 국민들을 만날 기회가 있으면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고 한다.

경제와 관련한 이야기로 넘어가자면, 2019년 기준으로 한국과 멕시코는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각각 세계 12위와 15위인 중견국(IMF)이며, 주력산업인 자동차 생산대수(OICA: 세계자동차산업연합회)로는 우리나라가 395만대로 7위, 멕시코가 399만대로 6위를 나란히 기록하였다. 우리나라와 멕시코간 경제협력 관계를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양국간 무역규모는 최근 3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19년 기준으로는 약 171억 달러를 나타냈다. 멕시코는 우리나라의 제8위 수출대상국(홍콩 제외)이자 중남미 제1위의 수출대상국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의 10대 수출대상국 중에서 FTA 또는 CEPA와 같은 무역협정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로는 일본(5위), 대만(6위), 멕시코(8위)가 있다. 일본, 대만과의 무역협정은 산업구조 등 경제협력 관계와 함께 정치적인 관계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검토되어야 하는 사안일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10대 수출대상국가 중에서 FTA 협정 체결이 조속히 진행될 필요가 있는 유일한 나라는 멕시코라고 할 것이다. 우리와 멕시코 양국간 경제협력 위상에 걸맞는 무역협정의 체결을 위해 우리와 멕시코 정부는 2007년 이후 지금까지 여러 차례 협상을 진행하였으나 멕시코 내 일부 산업의 반대 또는 유보적인 입장 표명 등으로 인하여 지금까지는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정부는 한-멕 양자 FTA 추진과 더불어 멕시코, 칠레, 콜롬비아, 페루 등 4개국으로 구성된 태평양동맹(PA) 준회원국 가입도 추진하고 있다. 2012년 출범한 태평양동맹은 2030년까지 역내 무관세를 목표로 하는 무역 의정서를 체결하였다. 태평양동맹은 준회원국으로 가입하는 국가에도 무역에 있어서는 역내국가간 교역과 동일한 혜택을 부여할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2013년 7월에 태평양동맹에 옵저버로 가입하였다. 우리나라가 태평양동맹 회원국중에 멕시코를 제외한 세 나라인 칠레(자유화 수준: 우리측 96.2%, 칠레측 96.5%), 페루(우리측 98.6%, 페루측 80.4%), 콜롬비아(우리측 96.1%, 콜롬비아측 96.7%)와 높은 수준의 FTA를 체결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우리나라가 준회원국으로 가입하게 되면 실질적으로는 멕시코와 FTA를 체결하는 효과를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국내적으로 통상절차법에 따라 무역협정 체결추진을 위한 절차인 공청회, 대외경제장관회의 의결(’18.1월), 국회 소관 상임위 보고(’18.5월)를 완료하였으며, 2019년 7월 칠레 산티아고에서 개최된 태평양동맹 정상회의에서는 우리나라와의 준회원국 가입협상 추진을 공식 발표하였다. 현재 태평양동맹은 1차로 호주·뉴질랜드·싱가포르·캐나다와 준회원국 가입협상을 진행하고 있으며, 우리와도 협상세칙(ToR: Terms of Reference)이 확정되는 대로 본격적인 협상에 돌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편, 멕시코·미국·캐나다 3국간의 자유무역협정인 NAFTA가 금년 7월1일부터 USMCA(US·MEXICO·CANADA의 약자)로 대체되었다. 멕시코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중 상당수가 기존 NAFTA를 활용하여 멕시코에서 생산한 제품을 미국이나 캐나다 시장에 판매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미국 주도로 새롭게 마련된 USMCA는 우리 기업들에게 위기이자 새로운 기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USMCA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항은 자동차 원산지 규정이다. 먼저 역내에서 제조된 자동차로 인정되어 관세를 면제받기 위해서는 자동차 조립시에 사용되는 부품들도 일정비율 이상은 북미지역 내에서 제조되어야 한다는 소위 역내가치비율(RVC: Regional Value Contents)이 금년에 62.5%에서 최대 75%까지 상향된다. 특히 핵심부품인 엔진 등은 최종조립이 멕시코, 미국, 캐나다 3국내에서 이루어질 것을 요구하고 있어서 과거에 비하여 원산지 인정기준이 상당히 엄격해졌다고 평가된다. 미국 정부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에게 향후 역내가치비율 준수를 위한 방안, 즉 이행계획을 제출할 것을 자동차 업계에 요구한 상황이며, 당초 8월말까지였던 기한이 10월말로 연장된 상황이다. 다만, 일부 자동차 업체들은 미국 대선의 향방을 좌우하는 미시간·펜실베니아 등 경합주에 완성차와 자동차 부품 제조설비 등이 다수 분포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대선이 마무리 되는 시점까지는 이행계획 제출 및 승인 관련 불확실성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USMCA 역내 가치비율 기준 >
완성차 (의무조건) 핵심부품 (의무조건) 주요부품 보조부품 경과 규정
66% 66% 62.5% 62% 발효 1년차
69% 69% 65% 63% 발효 2년차
72% 72% 67.5% 64% 발효 3년차
75% 75% 70% 65% 발효 4년차

역내가치비율 상향 이외에, 고임금 지역(16 US$/시간)에서 생산된 부품사용 및 연구개발비 투입비율도 의무화하였다. 3국중에서 가장 저렴한 임금구조를 나타내고 있는 멕시코의 경우에는 2020년 기준으로 1일 법정 최저임금이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고임금 지역 생산 부품 등 의무화로 인하여 자동차 소재부품 업체에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 고임금 지역 부품 및 R&D 등 의무화 합의 내용 >
전체 부품 R&D/IT 경과 규정
30% 15% 15% 발효 1년차
33% 18% 15% 발효 2년차
36% 21% 15% 발효 3년차
40% 25% 15% 발효 4년차

마지막으로 자동차 제작에 사용되는 철강·알루미늄의 원산지 규정이 강화되었다. 특히 동 사안은 USMCA 수정합의(’19.12월)를 통해 결정되었으며, 당초 원산지 규정상 열연가공부터 북미에서 진행된 철강제품은 원산지 인정이 되었으나, 수정합의된 바에 따르면 제선·제강 즉, 쇳물을 뽑아내는 과정이 역내에서 진행되어야만 원산지를 인정받게 되었다. 현재 멕시코를 포함해서 USMCA 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 철강 기업중에는 제선·제강 과정을 진행할 수 있는 설비를 현지에 보유하고 있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동 원산지 규정 강화로 인해 사업구조 개편 등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USMCA에서 원산지 규정이 보다 엄격하게 변경되고, 고임금 지역 부품 등 사용비율 기준을 부과하는 것은 북미지역 내에서 보다 많은 부가가치와 고용을 창출하는 기업에게 무역협정의 혜택을 집중하겠다는 의도라고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기존에 멕시코를 북미지역 진출의 관문 또는 기지로 활용했던 기업들의 입장에서도 변화된 환경에 따른 대응전략이 필요하다. 주요 원자재를 본국에서 들여와서 멕시코내에서 단순가공이나 후처리 공정만을 하는 방식보다는 핵심 생산공정을 멕시코에서 진행하는 등 밸류체인을 신속히 재편하는 기업이 새로운 기회인 USMCA의 혜택을 보다 많이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멕시코는 물리적 거리가 멀고, 익숙하지 않은 언어인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까닭에 이국적인 향취를 느낄 수 있는 여행지로만 인식되기 쉬웠다. 하지만 USMCA를 통한 북미시장 진출의 교두보이자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남미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관문이라는 전략적 경제협력 대상으로서의 중요성이 앞으로는 보다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주멕시코 대한민국 대사관과 KOTRA·무역보험공사 등 유관 지원기관은 우리 기업이 새로운 기회를 구체적인 성과로 실현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