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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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8월 제1차 남아메리카 정상회담에서 브라질의 카르도주 대통령(Fernando Henrique Cardoso)은 지역 내의 부족한 인프라를 개선하고 세계 시장으로의 접근성을 높이고자 남미인프라통합구상(Iniciativa para la Integración de la Infraestructura Regional Suramericana, 이하 IIRSA)을 제안하였다. 남아메리카 12개국이 참여한 IIRSA는 개방형 지역주의를 표방하며 회원국 간의 평등한 참여를 원칙으로 하는 남아메리카 최초의 거대한 인프라 개발 계획으로서 출발하였다.1) 이에 IIRSA 회원국들은 남아메리카의 인프라 건설을 통해 경제 발전과 남아메리카 통합이라는 큰 기대를 걸었다.
21세기 IIRSA를 통해 표출된 인프라에 대한 라틴아메리카 정부들의 기대는 19세기 철도 교통에 대한 기대감과 유사하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매우 이른 시기인 19세기부터 철도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브라질은 1836년 라틴아메리카에서 최초로 철도 건설에 관한 법령을 제정하였는데, 이는 당시 영국에서 본격적인 여객용 공공 철도가 건설된 것이 1825년의 일이고, 리버풀과 맨체스터 간 도시 철도가 최초로 건설된 것인 1830년의 일임을 감안한다면 매우 이른 것이었다. 근대화 시기 철도는 산업화와 발전의 상징이었으며, 서구 국가들의 산업화와 경제 발전으로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농축산물과 광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이 지역의 철도 건설의 필요성이 더욱 높아졌다.
1) 특별한 실행 기구 없이 회원국 실무 장관들의 협의체를 통해 운영되던 IIRSA는 2007년 회원국들 간의 실무적인 회합을 넘어서 UNASUR(남미국가연합, Union de Naciones Suramericanas, 이하 UNASUR)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남아메리카의 자주적 통합을 주창하던 UNASUR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회원국들의 지지 철회를 계기로 사실상 와해되었으며 UNASUR 회원국들 중 다수가 미국 주도의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Trans-Pacific Strategic Economic Partnership)에 참여하였다. 이러한 정치적 지형의 변화는 IIRSA의 세부 활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2017년 이후 새로운 계획이 수립되지 않고 있으며, 기존의 프로젝트를 해당 회원국들이 완성하는 단계로 들어섰다. IIRSA는 사실상 일몰 단계로 진입하였다(김희순, 2020, 151).
라틴아메리카는 여타 지역에 비해 교통 인프라의 발달이 지연되어 있으며, 이는 라틴아메리카 발전의 저해 요인으로 지적되어 왔다. 21세기 들어서도 라틴아메리카의 부족한 인프라는 저성장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Caldéron and Servén(2004)은 만약 남아메리카의 사회기반 시설이 동남아시아 정도만 되었더라면 실제보다 2.5~5.8% 정도 더 성장했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기까지 하였다. 라틴아메리카는 넓은 영토에 비해 인구밀도가 낮고 도시를 비롯한 인구 정주지역이 해안지역이나 고산지역에 편중되어 있다. 또한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산맥 및 아마존 열대우림 지역, 중앙아메리카 지역의 험준한 산지 지형이나 열대우림 지역은 교통로가 발달하는데 근본적인 장애물이 되어 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구 및 경제활동의 중심을 라틴아메리카 지역이 아닌 유럽으로 향하게 하고, 식민지 내에서의 교류를 금한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배로 인해 라틴아메리카의 교통 네트워크는 라틴아메리카 도시 간, 지역 간 교류는 매우 미미한 반면 유럽과의 교역은 유리하게 구성되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교통로의 중요성은 특히 정치권력의 형성 과정에서 일찍부터 부각되었다. 거대한 제국을 통일한 잉카의 권력은 안데스 산맥을 따라 남북으로 이어진 도로에서 비롯되었다. 잉카인들은 절벽을 깎아내고 골짜기에 다리를 놓아 사람은 물론 각 지역의 특산물과 정보가 이동하기 쉽게 만들었다. 잉카인들이 건설한 잉카왕도의 길이는 총 4만 ㎞에 달하는데, 교통로의 정비를 통해 잉카는 제국의 범위를 손쉽게 확대할 수 있었고, 도시간의 기능적 보완 관계가 형성될 수 있었다(남영우, 2009, 4).
비슷한 맥락으로, 19세기 초반 새로이 독립한 국가들은 국가통합과 중앙집권적인 정치 권력의 형성을 위해서는 전국토를 아우르는 교통 인프라의 건설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당시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이룬 국가들에서는 지방 토호 세력인 카우디요(Caudillo) 세력들이 여전히 강력하였고, 브라질은 식민 초기부터 12개의 카피타니아(Capitânia)를 다스리던 지방 토호 세력이 굳건하였다. 강력한 토호 세력은 중앙 정부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촌락 지역에서 실질적인 지배 세력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에 19세기 중엽 아르헨티나의 정치학자인 Alberdi는 근대 국가 체계의 건설에서 전국의 지역을 연결할 교통로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아르헨티나 헌법의 근간이 된 자신의 저서 ‘아르헨티나의 정치조직을 위한 기초와 출발점(『Bases y puntos de partida para la organización política de la República Argentina』, 1853년)’에서 그는 “아르헨티나의 국토는 너무 광대하여 철도를 건설하지 않고는 중앙집권적 체제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단언하였다(Alberdi, 1852).
라틴아메리카에서 건설된 최초의 철도 노선은 1855년 파나마 지협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파나마 철도였다. 이 철도는 1848년 미-멕 국경 형성 이후 미국 서부 지역에서 일어난 골드러쉬 및 서부 지역의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구와 물자의 수송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9세기 유럽과 미국의 산업화의 과정에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대규모의 자원을 수출하고 있었고, 주로 내륙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이나 광물을 수출항까지 수송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국가의 주요 도로망은 식민지배 중심지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으며 대부분의 도로는 포장이 되지 않아 상품 수송시 상품 훼손의 원인이 되었다. 지방도로의 건설 책임은 지방 토호들에게 있었기에 도로는 제대로 보수되지 않았고 통행세를 받는 구간도 상당하였다. 당시 수출 자원에 대한 세금, 즉 자원지대가 주요 국가 수입원이던 신생국가들에게 내륙과 항구를 잇는 철도망의 건설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근대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필수적인 사안이었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의 철도 건설에는 여러 난제가 있었다.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정치적으로는 불안정하고 국가의 세수입은 매우 한정적이었다. 대규모의 자금 동원 능력과 높은 수준의 기술력이 투입되어야 하는 철도 공사를 진행할 기술도 인력도 없었다. 게다가 지방 토호들이 철도의 건설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이었는데, 철도를 건설할 경우, 부채노동자나 노예제도로 묶어 두었던 노동력이 공사현장으로 유출될 수 있다는 염려에서였다(Mattoon, 1977, 273). 험준한 지형과 불리한 기후 조건을 차치하고라도, 초기 철도 공사의 대부분을 맡았던 백인 노동자들이 지역의 풍토병인 황열병과 말라리아에 대한 면역력이 낮았던 점도 중요한 문제였다. 이러한 난제들은 결국 공사 기간의 연장과 공사 비용의 증가로 이어졌다.
2) 1836년 제정된 이 법안에서는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iero)에서 바이아(Bahia), 미나스제라이스(Minas Gerais), 그리고 히우그란지두술(Rio Grande do Sul)을 잇는 철도를 건설하는 회사에게 40년 간의 독점적인 운영 권한을 약속했다. 같은 해 상파울루 지방 의회는 상투스(Santos)항을 중심으로 파라이바(Paraíba), 티에테 강(Tietê), 캄피나스(Campinas), 이투(Itú), 피라시카바(Piracicaba), 포르투풀리스(Porto Feliz)를 잇는 거대한 철도 및 내륙 수로 네트워크 건설과 관련된 법안을 의결했다(Mattoon, 1977, 273)
미국 자본이 주도한 중앙아메리카 및 안데스 국가의 철도 건설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국인 Hery Meiggs가 페루 리마에서 안데스 산맥으로 올라가는 철도와 페루 및 칠레의 해안 철도를 건설하였으며, 그의 조카인 Henry Keith, Minor Keith 형제가 코스타리카를 시작으로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등의 철도 공사를 하였다(Chapman, 2007, 27-29).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은 커피 수출을 위해 철도를 건설하고자 하였는데, 험준한 지형과 열대 우림 기우로 인해 공사 과정이 매우 지난하였고, 황열병과 말라리아로 공사장 인부들의 사망률이 높았다. 험난한 공사 과정에 대한 대가로 코스타리카 정부가 철로 공사 대금을 철도 주변의 토지로 지불하였는데, 당시 Minor Keith가 받은 철도 공사 대금은 코스타리카 국토의 약 7%에 달했다. 이러한 공사 방식은 과테말라, 니카라과, 온두라스 등 중앙아메리카 대부분의 국가에서 반복되었다. 철도 공사가 끝난 후 Minor Keith는 공사대금으로 지급받은 철도 주변 토지에 바나나를 심어서 미국으로 수출하였으며, 훗날 다국적 농기업이 된 United Fruits사를 창립하였다. United Fruits사는 중앙아메리카에서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이 되었으며, 이후 중앙아메리카 국가군이 소위 바나나 공화국이라 불리는 유래가 되기도 했다.(Rippy, 1943).
철도의 중요성을 역설한 아르헨티나의 정치학자 Alberdi 역시 아르헨티나의 미래의 발전을 담보로 외국 자본을 끌어와 철도를 건설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의 희망은 19세기 후반부에 현실이 되어, 막대한 규모의 외국 자본들, 특히 영국계 자본과 기술, 기관차들이 아르헨티나로 유입되었고 전 국토에 걸친 광대한 철도망이 완성되었다. 아르헨티나의 철도망은 팜파 지역의 멘도사(Mendoza)를 거쳐 안데스에 서 가장 높은 아콩카구아(Aconcagua, 해발고도 6,960m)를 넘어 칠레에까지 이르렀다. 1914년, Alberdi가 그의 희망을 밝힌 지 불과 60년 만에 아르헨티나 연방정부는 33,355km에 이르는 철도망을 통하여 278만 ㎢의 국토를 아우르는 중앙집권적 통치를 실행할 수 있었다(Pulley, 1966, 63). 20세기 초반 아르헨티나는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긴 철도망을 갖추었는데 이는 당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러시아, 캐나다에 이어 세계에서 9번째로 긴 것이었다. 당시 자원 수출 중심 경제의 아르헨티나는 세계 5대 부국으로 꼽혔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20세기 초반 제1차 세계 대전과 1929년 세계 대공황 이전까지 철도 건설에 힘썼으며, 남아메리카에서만 현재 10만 km가 넘는 철도망이 남아있다. 그러나 현재 철도 활성화 비율은 60% 정도로, 상당 구간이 방치상태에 있다. 이에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라틴아메리카 대륙을 가로지르는 교통 인프라 재건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IIRSA의 계획과 실행 과정에서 철도의 일부 구간을 재생하거나 개선하는 프로젝트들을 다수 포함시켰다. 특히 43,000㎞가 넘는 철도망을 갖춘 아르헨티나가 가장 강력하게 철도 활성화 의지를 보였으며, 칠레, 브라질, 우루과이, 파라과이, 볼리비아 등도 철도 활성화 프로젝트를 실행하였다. 나아가 IIRSA는 기존의 광범위한 철도망을 이용하여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6개 광역 계획까지 구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원대한 철도망 통합 계획은 구상에 그칠 뿐 구체적 이행 계획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IIRSA를 주도한 남미국가연합(UNASUR)가 사실상 해체되면서 동력을 상실한 요인이 크다. 게다가 나라별, 지역별로 궤간이 914~1,676mm의 6단계로 상이한 것도 철도 네트워크 통합의 기술적 어려움으로 꼽힌다(COSIPLAN, 2017).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지역통합 촉진, 물류 개선, 친환경 교통수단에 대한 수요 증가로 철도 인프라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19세기 말 경제발전과 국가통합을 목표로 값비싼 건설비용을 지불하고 건설된 라틴아메리카의 철도망이 21세기에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관심이 주목된다.
참고문헌
김희순, 2020, “남아메리카의 인프라 구축과 관련된 사회적 요인 고찰: 19세기 철도와 21세기 IIRSA를 중심으로,” 한국도시지리학회, 23(1), 149-162.
남영우, 2009, “잉카제국과 고대도시 마추픽추의 성쇠,” 한국도시지리학회지, 12(2). 1-17.
Alberdi, J., 1852, Bases y puntos de partida para la organización política de la República Argentina, Imprenta Argentina, Buenos Aires.
Chapman, P., 2007, Bananas: How the United Fruit Company shaped the world, Canongate, New York.
COSIPLAN, 2017, Insumos para elaborar una estrategis que facilite la Integratcion Ferroviaria de Suramerica, Montevideo: Ministerio de Transporte y Obras Publicas.
Caldéron C. and Servén, L., 2004, The Effects of Infrastructure Development onGrowth and IncomeDistribution: Working Papers No.270, Central Bank of Chile
(http://www.bcentral.cl/esp/estpub/estudios/dtbc).
Mattoon, R., 1977, Railroads, Coffee, and the Growth of Big Business in São Paulo, Hispanic American Historical Review, 57(2), 273-295.
Pulley, R., 1966, The Railroad and Argentine National Develpment, 1852-1914, The Americas, 23(1), 63-75.
Rippy, F., 1943, Dawn of the Railway Era in Colombia, The Hispanic American Historical Review, 23(4), 650-6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