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관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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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의 도시화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1800년에는 세계 인구의 3%만이 도시(city)에 거주했으나, 2050년에는 68% 정도의 인구가 도시 지역에 집중되어, 교통, 범죄, 환경 등의 도시문제가 보다 심각해 것이라 한다. 세계 각국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여 각종 도시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선진국을 중심으로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코자 노력중인 가운데, 스마트시티가 현대 도시문제 해결을 위한 종합 솔루션의 하나로 등장하고 있다.
개별 국가나 사회마다 서로 처한 여건과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스마트시티의 개념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지만, 스마트시티를 미래 국가 경제발전의 원동력과 지속가능한 도시개발을 위한 플랫폼으로 보는 시각에는 이의가 없다고 하겠다. 페루도 아직까지는 도로, 주택, 교통 등의 전통적인 도시 인프라 건설에 주력하고 있지만, 최근 선진국과 유사한 각종 도시문제에 직면하면서 스마트시티로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또한, 상대적으로 불안한 페루의 치안상황과 교통 혼잡도 등의 도시문제들이 페루정부의 주요 과제로 부상하고 있어, 페루 정부는 수년 전부터 우리의 선진 스마트시티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고 이를 자국에 적용하고자 노력 중임에 따라, 우리 스마트시티 모델의 페루 진출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페루는 약 5천년 전에 발생한 남미 최초 문명인 카랄(Caral) 문명을 포함하여 마추픽추로 유명한 잉카문명의 문화적·역사적 유산을 지닌 국가이며, 남미에서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다음으로 국토면적이 넓은 나라이다. 세계은행(World Bank)에 따르면, 코로나19 발생 이전의 지난 10여 년간 페루는 남미 국가 중에서 가장 견실한 경제성장세를 유지하였고 동 기간 동안 연평균 인플레이션도 3%를 밑도는 등 안정적인 물가수준도 유지하였다. 또한, 영국계 글로벌 은행인 HSBC는 페루가 2050년경 전 세계 GDP 규모에서 26위를 차지하면서 잠재력 측면에서 브라질과 칠레를 능가할 것으로 전망하는 등 페루는 중남미 미래 유망시장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또한, 페루는 중남미 지역 내 지리적 교통 요충지이고 시장친화적인 정책도 유지하고 있어 우리가 중남미 진출을 적극 모색해야 할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페루는 ICT 기술을 활용하여 지역주민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고 지역사회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일환으로 스마트시티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여러 도시 분야 중에서도 시민 안전과 교통 개선, 그리고, 재난 관리를 스마트시티의 주요 활동 분야로 보고 있다.
스마트시티 업무와 관련된 페루 정부 부처를 살펴보면, 교통통신부(MTC), 주택건설수도부(MVCS), 내무부(MININTER), 총리실(PCM) 등이 있다. 교통통신부는 통신 서비스의 연장선에서 접근하여 북부 피우라(Piura) 시, 남부 따끄나(Tacna) 시 등 페루 지자체의 스마트시티 추진을 지원하고 있다. 주택건설수도부는 스마트시티를 도시 현대화를 위한 과제로 인식하며, 정례적으로 세미나를 개최해 오고 있다. 내무부(MININTER)는 산하 경찰청(PNP)과 함께, 시민안전 서비스 개선을 위해 CCTV 관제 고도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총리실(PCM)은 디지털 정책을 총괄․조정하는 기관으로서 스마트시티 사업을 바라보고 있다.
페루 지자체들은 수년전부터 시민들의 삶을 개선하고 도시 인프라를 발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스마트시티 구축에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주요 지자체로는, 북부 피우라(Piura) 시, 잉카제국의 옛 수도로 유명한 쿠스코(Cusco) 시, 페루 관문도시인 카야오(Callao) 시, 그리고, 수도 리마(Lima) 시와 리마시내 수르코(Surco) 구, 미라플로레스(Miraflores) 구 등이 있다. 이 중에서 피우라 시와 수르코 구는 한-페루 양국 정부 간의 양해각서(MOU) 체결을 통해 시범도시 사업을 준비하고 있으며, 쿠스코 시는 우리 국토교통부의 K-CITY 네트워크 지원사업을 통해 스마트시티 기본구상을 마련하고 있다. 인구 천만의 리마 시도 우리 서울시와 양국 수도(capital) 간 스마트시티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각 지자체가 스마트시티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업재원이 필요하다. 사업재원 조달 방안으로는 페루 정부나 지자체에서 자체 재정을 투입하거나, 민간분야 또는 국제기구 등을 통해 조달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특이한 점은 민간재원인 세금대체공사(Obras por Impuestos) 방식을 통한 재원 조달방식이다. 이는 민간 기업이 직접 자금을 조달하여 정부 인프라 사업을 먼저 시행한 후, 소요비용만큼 법인세를 사후 감면받는 방식이다. 페루 정부나 지자체 입장에서는 정부예산 투입 없이 무이자로 민간자본을 활용할 수 있고, 계약업무 처리절차도 간소화되어 조속한 사업 추진이 가능하므로 민간 기업과 리스크를 분담하는 이점이 있다. 사업 참여를 희망하는 기업 입장에서도 경쟁 입찰 부담 없이 사업시행 주체인 민간기업과 세금대체공사에 관한 협상을 통해 대상사업에 참여할 수 있어 수의계약과 유사한 장점을 누릴 수 있다.
한편, 페루 스마트시티 사업에 진출을 희망하는 우리 기업이 고려할 현지 상황들이 있다. 먼저, 페루 중앙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현재로서는 적극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페루 지자체들의 적극적인 관심 표명이나 사업화 추진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 차원의 스마트시티 종합전략이 없고 재정투입에도 소극적이라고 하겠다. 앞서 언급했듯이, 스마트시티 관련부처가 교통통신부, 주택건설수도부, 내무부, 총리실 등으로 분산되어 있다 보니 정부 내 구심점 발휘도 다소 어려운 구조이다.
다음으로, 페루에서의 스마트시티 사업 발굴이 지자체의 여건이나 형편을 고려한 국가적 계획보다는 관심 지자체에 의존하여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페루는 중남미 지역의 대표적인 개발도상국가로, 다수 지자체를 스마트시티로 전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 할 수 있다. 페루의 넓은 국토면적(한반도의 약 6배)과 사막에서 열대우림에 이르는 다양한 자연환경을 고려할 때 각 지자체가 지닌 도시 환경과 인프라 수준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스마트시티 추진 초기에는 대체로 국가 차원에서 시범 적용에 가장 적합한 지역을 선정하고 이를 모델화하여 확산하는 접근을 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또한, 우리 기업측면을 보면, 페루에 상주하는 우리 기업 중에서 정보통신 기술 분야 전문성을 지닌 현지 지상사가 아직 없다. 사업화를 준비하고 있는 페루 지자체의 기술력이 부족하여 사업계획서나 기술사양서 작성 등을 ICT 전문기업 등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해당 지자체와 수시로 협의하면서 현장 지원을 하는 게 바람직하며, 국내에서 원격지원만으로는 대응에 역부족이라 하겠다. 페루 내부적으로도 스마트시티 구축 경험을 지닌 기업이 사실상 전무하다 보니, 기술사양까지 반영된 조달 발주서류 작성이 지연되면서 재원조달을 위한 신청이나 사업발주 등의 행정절차도 순연되고 있다.
한-페루 양국은 2018년 3월, 우리 국토교통부와 페루 교통통신부 간에 스마트시티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였고, 이어서 스마트시티 시범도시 개발을 위한 후속 양해각서가 일부 도시에 대해 체결되었다. 피우라 시가 2018년 8월에 우리 국토교통부와 페루 교통통신부 간 시범사업 추진 양해각서를 통해, 그리고 수도 리마시내 수르코 구청이 2019년 6월에 우리 행정안전부와 페루 내무부 간 시범사업 추진을 위한 양해각서를 통해 본격적으로 스마트시티로의 발전을 준비하게 되었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페루 중앙부처 공무원, 현지 전문가, 페루 시민 등 1천여 명을 대상으로 한국 스마트시티 설명회가 꾸준히 개최되어 왔고, 이를 통해 스마트시티 추진 필요성과 우리 우수사례 등이 소개되었다. 2018년에는 페루 의회 교통통신상임위원회를 대상으로 한 간담회도 열렸다. 또한, 한-페루 전자정부협력센터,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등 우리 정부기관이 주관한 초청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여러 페루 고위인사가 국내에 초청되어 스마트시티 주요 현황과 시설을 시찰하였다. 여기에는 비스까라 前 페루 대통령, 몬테로라 前 페루의회 교통통신상임위원장, 쿠스코 시장 등이 포함되었었다.
지금껏 양국 간 협력은 스마트시티 분야 협력을 위한 추진근거를 마련하면서 방한 초청연수를 통해 페루 주요 인사들이 우리의 발전된 스마트시티의 실제 모습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이제부터는 그동안의 협력방식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페루 정부의 스마트시티 정책 추진력을 뒷받침하고 페루 지자체의 사업화를 지원하여 양국 간 실질적인 협력성과가 창출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이에, 국제적으로 호평 받고 있는 우리의 스마트시티 모델이 페루에 본격 보급되기 위한 4가지 진출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페루 정부에서 정책적 우선순위를 두고 스마트시티 구축을 본격 추진해갈 수 있도록 우리 정부의 정책 추진 노하우와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페루 정부는 아직 국가 차원의 스마트시티 추진전략이 없으므로 우리의 무상원조(ODA)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페루 정부가 종합적인 스마트시티 추진전략을 수립토록 지원하는 것을 검토해 볼 수 있겠다. 이를 통해 페루 정부가 4차 산업혁명의 기술기반인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미래 신성장 동력을 발굴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페루 지자체별 특화된 사업구상을 페루 정부가 정책적, 재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도록 정책 환경을 조성토록 하는 것이다.
둘째, 페루의 각 지자체에서 준비 중인 스마트시티 시범사업을 지원하여 초기 성공사례를 창출토록 하는 것이다. 초기 단계에서의 성공사례 확보 여부가 본격적 사업 추진 단계에서 시민 지지나 재정투입 등 향후 추진동력 확보에 관건인 만큼, 사업의 난이도와 투자규모를 고려하여 시범사업을 적절히 기획하고 실행에 옮기도록 지원함으로써, 페루 스스로 스마트시티 발전가능성을 인식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기본적인 도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 첨단기술 적용이 보다 용이한 수도 리마 시와 같은 지역별 거점도시 등이 스마트시티 후보지로 검토될 수 있겠다.
셋째, 페루 지자체 실정에 맞는 현지 맞춤형 마케팅을 전개하는 것이다. 페루는 태평양 연안의 사막지역, 안데스 고산지대, 아마존 열대우림 등 다양한 자연환경을 지닌 국가이다. 페루 지자체에 컨설팅을 제공하는 경우, 초기부터 무리하게 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스마트시티 추진범위를 설정하기 보다는, 도심이나 부촌지역 등 특정지역으로의 범위를 한정한 후 상황을 보아 단계적으로 확장해 가도록 조언하는 게 바람직하다. 적용대상 업무도 시민안전, 교통, 재난관리 등 시민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분야부터 구축하여 시민들이 실생활에서 스마트시티 구축효과를 피부로 느끼도록 할 필요가 있다.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일정 수준의 도시 인프라를 중심으로 스마트기술 적용 효과가 큰 분야부터 단계적으로 적용해 나가는 방안이 효과적일 것이다. 참고로 시민안전 분야는 페루 내무부(MININTER), 교통분야는 대중교통청(ATU), 재난 관리분야는 재난관리청(INDECI)이 담당하고 있다.
넷째, 기업 간 전략적 제휴를 통해 진출 모색이다. 역량을 갖춘 팀코리아(Team Korea)를 구성하고 공동으로 페루 스마트시티 사업 지원활동을 전개해 나가는 것이다. 페루 지자체는 사업의 안정성을 위해 선진 글로벌 기업의 참여를 선호하므로, 스마트시티 구축경험과 글로벌 인지도를 지닌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스마트시티 사업은 ICT 기술 적용과 도시 건설 등 양 분야 전문성이 함께 요구되므로 ICT 전문기업과 엔지니어링 업체 간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이외에, 우리 기업과 협업을 희망하는 페루 기업과도 네트워킹을 강화하면 현지 환경에 대한 적응력을 높일 수 있다. 자금력이 부족한 기업은 우리 정부의 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 기금을 활용한 민관 투자사업 지원제도를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겠다.
우리의 스마트시티 모델은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확산 속에서도 빛을 발휘하여 감염자 추적 등 팬데믹 대응 솔루션까지 응용분야를 넓히고 있다. 우리가 그동안 쌓아 온 디지털 분야 선도국가로서의 이미지, 오랜 스마트시티 구축 경험, 그리고 우리 스마트시티에 대한 해외의 우수한 평가 등을 십분 활용하여 페루의 스마트시티 수요에 부합하는 솔루션을 제안하고, 양국이 상생 발전하는 방향으로 페루시장을 선점해 나가는 능동적이고 중기적인 관점의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페루는 2019-2025 국가인프라 계획에 기반하여 공항, 지하철, 고속도로 등 다양한 인프라 사업을 추진 중에 있으며, 우리 기업들은 쿠스코 친체로 신공항 건설사업관리(PMO) 용역사업(2019) 등 전통적 인프라 사업을 기반으로 페루에서 수주 성과를 내고 있다. 앞으로도 우리가 페루에서 인프라 분야 성과를 지속 창출하기 위해서는 신사업분야에 대한 사업 발굴이 필요하다. 양국이 그동안 스마트시티 협력을 꾸준히 추진해 온 점을 감안하면, 스마트시티 분야도 앞으로 양국 간 실질 성과를 창출해 나갈 분야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