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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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CABEI 협력기금을 활용한 한ㆍ중미 경제교류 활성화
한-CABEI 신탁기금 담당 김건민 행정관

World Bank, ADB 등 다자개발은행(MDB, Multilateral Development Bank)은 한국의 고도 경제 성장기에 각종 사회간접자본 투자에 자금을 제공한 고마운 존재였다. 그뿐만 아니라, 초기 한국 건설기업의 해외진출 과정에서도 MDB가 주도한 개발 사업은 한국기업이 해외진출 경험을 쌓고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건설기업은 예외없이 MDB 주도 개발 사업을 통해서 대형 해외인프라 사업경험을 축적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크게 성장한 한국경제는 MDB 자금을 통해서 국내 인프라 사업에 투자할 수도 없고, 한국기업의 가격경쟁력 하락으로 MDB를 통한 한국기업 해외진출 기회 확보도 어려운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특히, 한국기업은 높은 기술경쟁력에도 불구하고 낮은 가격경쟁력으로 인해서 MDB가 발주하는 많은 인프라 사업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 정부가 여러 MDB를 통해서 운영 중인 다양한 신탁기금은 한국경제가 보유한 다양한 잠재력과 MDB의 주요 사업지역인 개발도상국을 연결해주는 디딤돌 역할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신탁기금은 한국정부와 국제금융기구가 특정한 목적달성을 위해 사업규모, 대상, 절차 등을 정하여 운용하는 자금으로 정의된다. World Bank, ADB, IDB, AfDB, EBRD 등 한국이 가입한 모든 다자개발은행에는 예외 없이 신탁기금이 설치되어 있다. 신탁기금의 주요 목적은 개발도상국의 발전이지만, 한국정부는 이 과정에서 인프라, 행정, 보건, 교육, ICT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기업의 해외진출이 병행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 신탁기금의 유형

신탁기금 사업은 일반적으로 100만 달러 이하의 다양하고 작은 사업으로 구성되며, 수원국 정부의 상환의무가 없다. 따라서 신탁기금 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 시범사업, 네트워크 사업 등 본 사업을 촉진할 수 있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 소규모 사업에 집행하게 되며, 궁극적으로는 신탁기금 사업을 발판삼아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등과 연계한 본 사업으로 발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일부 한국기관의 경우 이러한 신탁기금 사업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공공외교 예산이나 구호활동 예산으로 오해하여 상징물 조성이나 구호기금으로 전용을 제안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오해를 해소하고 신탁기금 사업을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필자는 아래와 같이 신탁기금의 사업을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 유형 1 : 시범사업形 >
시범사업形 신탁기금 사업은 한국의 발전경험을 가장 직접적으로 전달하고 이것이 본사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살아있는 증빙자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가장 바람직한 형태의 신탁기금 사업으로 평가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한국형 스마트팜의 유용성을 입증하기 위해, 소규모 스마트 시범농장을 짓고, 1~2년간 시범운영을 통해서 해당지역에서 한국형 스마트팜의 가능성을 입증하는 사업이 시범사업形 신탁기금 사업으로 분류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시범사업이 성공하면 이를 바탕으로 대규모 스마트팜 조성이 논의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한국수출입은행의 전대금융, EDCF 등 규모가 큰 융자사업을 통해 본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 유형 2 : 사업 타당성 조사形 >
대규모 인프라 사업의 경우 예비타당성조사(feasibility study)가 필수적이며, 대부분의 경우 그 이전 단계인 사전예비타당조사(pre-feasibility study)가 요구된다. 하지만 개발도상국 차원에서는 조사비용이 자체적으로 부담하기에는 적지 않은 금액이고 전문성이 있는 조사기관을 섭외하는 일도 쉽지 않다. 이 경우에 신탁기금 사업을 통해 조사비용을 조달하고 국제기구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수준높은 조사기관을 선정ㆍ지원받을 수 있다. 이렇게 신탁기금을 통해 타당성 조사를 실시하는 경우 단순한 비용추정을 넘어서 더 안전하고 유용한 사업이 될 수 있도록 혁신적인 사업설계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 유형 3 : 마스터플랜形 >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한국이 성취한 사회간접자본 확충ㆍ정보화ㆍ복지도입ㆍ행정의 전산화 수준을 부러워하고 있다. 하지만, 개도국 수준에서 한 번에 한국 수준의 발전을 이루기가 어려우므로, 단계적인 발전전략에 따라 연차별로 법령을 정비하고 최적의 재원을 투입하여 점진적인 발전을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연차적인 발전전략을 제시하는 신탁기금 사업이 마스터플랜形 신탁기금 사업이다. 이는 해당국가가 마스터플랜을 자체적인 국가발전 계획과 연동하여 성실하게 계획을 이행할 경우 해당국가 뿐만 아니라, 마스터플랜 수립을 지원한 국가 입장에서도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 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마스터플랜을 제공하는 국가가 많아지고, 해당국가의 정치적 불안정성 등으로 인하여 중장기 마스터플랜이 효용을 잃어가는 경우가 많아지는 추세다. 따라서 ‘책상 위에서 잠자는 마스터플랜’이 아닌 실제로 해당 국가 공무원들과 정치인들이 중요한 발전전략 수립의 준거자료로 작용하는 마스터플랜이 되기 위해서 마스터플랜 수립ㆍ발표뿐만 아니라, 한국정부ㆍ공공기관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 유형 4 : 인적 네트워크 형성形 >
네 번째 유형은 해당국가의 사람에 투자하는 신탁기금 사업이다. 앞서 말했듯이 중장기적인 계획수립과 이행이 필요한 발전과제에 대해서 단순히 서류로 된 계획서를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유용성도 떨어지고 있다. 이 경우에 지원대상 국가에 해당분야 전문가를 교육하고 국내에 초청하여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등 지속적으로 한국의 발전경험에 관해 관심을 갖고 자문을 구할 수 있도록 인적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사업이다. 직접적인 지원효과는 찾기 어려울 수 있지만, 중장기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 신탁기금 활용 시 유의점

추가로, 신탁기금 사업의 발굴과정에서 유의할 점으로 개발도상국의 수요만을 따라가서는 바람직한 신탁기금 사업이 기획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만약, 절대빈곤층에 속한 인구비중이 높은 개발도상국에서 신탁기금 사업을 제안받을 경우, 대부분 당장 시급하게 필요한 낮은 수준의 에너지ㆍ교육ㆍ보건시설 투자를 제안받게 되는데, 이러한 사업은 대부분 한국경제의 기술적 협력 가능성이 낮아서 신탁기금이 의도한 사업이 아니다. 예를 들어서, 시골마을 학교에 깨진 유리창을 고치는 일이 개도국 입장에서는 당장 필요한 일이지만, 해당 국가의 경제발전을 위한 예비적 사업으로서 신탁기금의 사업의 성격과는 거리가 멀고, 한국경제가 특별히 적극적 기여할 수 있는 사업내용도 아니다. 당장 필요한 사업은 아닐지라도, 저개발ㆍ빈곤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는 본 사업이 착수될 수 있도록 사전에 디딤돌 역할을 하는 것이 신탁기금사업이다.

이러한 신탁기금은 개발도상국이 사전에 본사업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업내용을 확정하고 참여기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MDB內에 존재하는 엄격한 이해상충 방지장치와 내부규제 등으로 한국 등 신탁기금 조성에 기여한 국가의 참여가 제한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한국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신탁기금 매니저를 파견하고 한국 공공기관의 기술지원ㆍ자문을 받으며 신탁기금 사업의 발굴부터 승인까지 全절차를 관리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에 더 크게 주목받고 있는 것이, 최근에 신설된 한국-CABEI 협력기금이다.

□ 한-CABEI 신탁기금

2020년 신설된 한국-CABEI 협력기금의 경우, 전체 신탁기금 중 유일하게 전체 출연금 5천만 달러(5년)의 55%를 한국 소재 기업만 입찰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고, 나머지 45%의 경우에도 한국기업이 참여한 컨소시엄에 대해서 가산점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한국기업의 참여기회를 극대화하였다. 특히, 수요발굴ㆍ사업확정ㆍ기술평가 등 全과정에서 한국정부ㆍ공공기관의 적극적인 지식협력을 통해 한국기업이 신탁기금 사업을 통해 중미지역 경제성장에 기여할 기회를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우호적 절차가 빠른 시간에 정착된 이유로는 한국정부의 CABEI 내부에서의 높은 지분율과 지속적으로 축적ㆍ확대된 한국-CAEBI 간 신뢰축적 과정을 지적할 수 있으며, 미국ㆍ일본ㆍ중국 등이 가입되어있지 않은 CABEI의 특수한 상황에서도 이유를 찾을 수가 있다. 실제로 한국의 CABEI 內 지분규모는 7.67%로 역내회원국과 유사한 수준이며, 실제 업무 과정에서도 회원국 중에 가장 발전된 산업국가인 한국이 갖는 높은 위상을 체감할 수 있다.

중미지역은 미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가장 주목받는 지역이다. 중미지역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통한 경제사회 안정은 미국의 핵심적 이익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경제는 CABEI의 가치와 위상을 새롭게 평가해야 한다. CABEI는 설립 이후 지난 60년간 지속해서 중미지역 경제정책을 주도하는 공동 경제정책의 구심점으로서 역할을 해왔다. CABEI를 통한 중미지역 사업진출은 정치적 리스크를 낮추고, 안정성과 지속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필자를 포함하여 CABEI에 파견 중인 한국정부 인력이 한국경제와 CABEIㆍ중미경제 사이에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헌신적인 봉사를 할 것을 약속드리며 이 글을 마친다.

* CABEI 및 한국-CABEI 협력기금 관련 문의 : kimk@bci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