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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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 동향”은 우리 현지 공관에서 작성한 중남미지역의 산업·경제 관련 최신 동향과 이슈를 소개합니다.
‘탈달러화(de-dollarization)’는 말 그대로 달러의 보유 또는 사용에서 이탈 또는 벗어나는 현상을 말하는데, 구체적으로는 각국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 내 달러 비중 축소, 국제 무역 및 금융 거래에서 달러 사용 감소 등을 의미한다. 이러한 탈달러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세계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국제적 위상은 약화된다.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 출범 이후 달러는 세계의 기축통화 역할을 담당하면서 각국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 내 주요 통화이자, 세계 무역 및 금융 거래에서 주된 결제수단으로서의 지위를 누려왔다. 1971년 미국의 달러 금태환 정지에 따라 브레턴우즈 체제가 붕괴된 이후 국제사회에서는 탈달러화가 진행되어 왔으나, 달러는 여전히 세계 각국 외환보유고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는 등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연도 | 달러 | 유로화 | 엔화 | 파운드 | 위안화 |
---|---|---|---|---|---|
2010 | 62.14% | 25.71% | 3.66% | 3.94% | - |
2015 | 65.73% | 19.14% | 3.75% | 4.71% | - |
2020 | 58.92% | 21.29% | 6.03% | 4.73% | 2.29% |
2021 | 58.81% | 20.64% | 5.57% | 4.78% | 2.79% |
2022 | 58.36% | 20.47% | 5.51% | 4.95% | 2.69% |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미국의 러시아 경제 제재 이후 국제사회의 탈달러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는데, 특히 중국, 러시아, 브라질 등 BRICS 국가들을 중심으로 활발하다.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지난 4월 중국 국빈 방문 계기 BRICS 신개발은행(New Development Bank)을 방문한 자리에서 “나는 매일 밤 왜 모든 나라가 그들의 무역을 달러에 기초해야 하는지 자문한다. 우리는 왜 우리의 화폐로 무역을 할 수 없는가?”라고 언급하는 등 탈달러화 정책에 대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본고에서는 국제사회의 탈달러화 움직임 속에서 특히 브라질의 탈달러화 동향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브라질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1990년대 말 달러 등 외환 부족으로 인해 외환위기를 경험했다. 국제 거래의 주된 결제수단인 달러의 부족은 대외 무역 및 금융 거래의 축소를 의미하며, 이는 국내 경제에도 타격을 준다. 탈달러화는 브라질 통화인 헤알화 등을 활용하여 대외 무역 및 금융 거래를 할 수 있는 길을 터주기 때문에 외환 부족에 따른 경제위기를 사전 예방하는 효과뿐만 아니라 사후 경제위기가 발생하더라도 달러 부족에 따른 교역 중단 등의 부정적 영향을 억제할 수 있게 한다. 또한, 브라질의 주요 교역국이 달러 등 외환 부족으로 국제 교역에 어려움을 겪을 때 동일한 효과를 가져온다. 예를 들어, 브라질의 이웃 나라인 아르헨티나는 달러 등 외환 부족을 자주 경험하였고, 아르헨티나가 외환 부족을 경험할 때면 브라질과의 대외 교역이 축소되곤 했는데, 달러를 매개로 하지 않고 브라질 헤알화와 아르헨티나 페소화를 통해 교역이 가능하다면 달러 부족에 따른 교역 규모 축소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탈달러화는 달러를 무역 매개 수단으로 이용하는 데 따른 높은 거래비용을 낮출 수 있다. 브라질 수입업자 A가 중국 수출업자 B에게 수입대금을 달러로 지불하는 경우와 자국 통화인 헤알화로 지불하는 경우를 비교해 보자. 달러로 지불할 때 A는 헤알화를 우선 외환시장에서 달러로 환전한 후 이를 B에게 송금하는데, 이때 환전 시 수수료와 송금 시 수수료를 모두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B가 수출대금을 헤알화로 받는 데 동의한다면, A는 달러로 환전할 필요 없이 바로 헤알화로 송금하면 되고, 이 경우 송금 수수료만 납부하고 환전 수수료는 납부할 필요가 없어 거래비용을 낮출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브라질 정부는 미-중간 신냉전 구도에서 전통적으로 견지해 온 중립 외교 추구 및 중남미에서의 지역 패권 강화라는 지정학적 관점에서 탈달러화 정책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룰라 대통령은 탈달러화를 위해 남미 공동화폐뿐만 아니라 BRICS 공동화폐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며, 이러한 탈달러화 정책은 룰라 정부뿐 아니라, 보우소나루 전 정부에서도 추진되어 오던 초당적 성격의 정책으로, 앞으로도 지속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
브라질은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에서 달러의 비중을 지속 축소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근 국제 무역 및 금융 거래에서 달러 사용을 줄이기 위한 정책 등을 도입함으로써 탈탈러화를 추진하고 있다.
브라질 정부는 자국의 외환보유고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을 지속 축소하고 있다. 아래 표를 보면 최근 5년간 외환보유고에서 차지하는 달러의 비중이 축소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달러와는 달리 브라질의 최대 교역 대상국인 중국 위안화 비중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2018년 말 달러 비중 89.93%, 위안화 비중 0%에서 2022년 말 달러 비중 80.42%, 위안화 비중 5.37%로 변화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줄어드는 달러의 빈자리를 위안화가 채우고 있는 셈이다(위안화 보유 비중은 달러에 이어 2위, 다만, 달러와 비교해 볼 때 위안화의 비중은 미미한 수준).
연도 | 달러 | 유로화 | 엔화 | 파운드 | 위안화 |
---|---|---|---|---|---|
2018 | 89.93% | 5.13% | 1.49% | 1.92% | 0.00% |
2019 | 86.77% | 7.35% | 1.73% | 2.11% | 1.10% |
2020 | 86.03% | 7.85% | 1.72% | 2.02% | 1.21% |
2021 | 80.34% | 5.04% | 1.93% | 3.47% | 4.99% |
2022 | 80.42% | 4.74% | 1.01% | 3.15% | 5.37% |
브라질과 중국은 지난 3월 29일 브라질 무역사절단의 중국 방문 계기 양국의 수출입 결제와 금융 거래 등에 현재 통용되고 있는 달러 중심 결제망(SWIFT, 국제은행 간 통신협회)을 대신하여 위안화-헤알화를 직접 거래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위해, 중국 교통은행 자회사인 BOCOM BBM 은행(리우데자네이루 소재)이 SWIFT 결제망의 대안으로 중국이 개발한 국경 간 은행 결제 시스템(CIPS : China Interbank Payment System)과 연결되어 브라질 헤알화와 중국 위안화의 직접 거래를 중개하는 정산소(clearing house) 역할을 수행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그간 양국 간 교역 당사자들은 헤알화→달러→위안화 또는 위안화→달러→헤알화 환전의 과정을 거쳤으나, CIPS 이용 시 헤알화↔위안화 간 직접 환전을 통해 거래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가 위안화 환율에 대한 높은 통제력을 보유하고 있어 달러를 매개로 거래할 때에 비해 환위험도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편, 브라질은 외환 부족을 겪고 있는 아르헨티나와 양국 교역 시 달러 대신 브라질 헤알화 등으로 결제하는 방안도 협의 중이다.
룰라 대통령은 브라질의 국제 무역 및 금융거래에서 달러에 대한 의존도 완화 등을 위해 올해 1월 아르헨티나 방문 시 아르헨티나 대통령과 함께 남미지역 교역 및 금융거래 활성화를 위한 남미 공동화폐 도입 논의를 개시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또한, 브라질은 남미 공동화폐 논의와 함께 올해 8월 남아공에서 개최 예정인 BRICS 정상회의에서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BRICS 공동화폐 도입에도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브라질의 입장에서 탈달러화는 미국 대내외 정책 변화에 따른 달러의 유동성 변동 및 가치 등락, 달러를 무역 매개 수단으로 이용하는 데 따른 높은 거래비용, 달러 부족 시 대외 무역·금융 거래 축소 등의 문제점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매력적인 수단으로 보일 것이다. 이에 따라, 브라질은 중앙은행 외환보유고 내 달러 비중 축소, 대외 무역에서 자국 화폐 사용 확대 등 탈달러화 관련 정책들을 추진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와 같은 브라질 정부의 탈달러화 노력이 앞으로 얼마나 성공적일지는 미지수다. 우선, 지난 수년간 브라질 중앙은행 외환보유고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달러 대신 비중이 늘고 있는 위안화도 현재 5% 내외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외환보유고 내 위안화 비중은 여전히 낮은 수준(2.5%)에 머물고 있다. 따라서, 달러가 위안화로 어느 정도 대체되더라도 그 규모는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또한, 타국과의 수출입 결제와 금융 거래 시 헤알화 또는 위안화 사용을 확대하려는 브라질 정부의 노력도 현재로서는 중국 등 소수 국가에 한정되어 있으며, 중국과의 교역에 있어서도 양국의 수출입 기업들이 이를 얼마나 활용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수출입 기업들의 경우 위안화-헤알화 결제가 제도적으로 가능하더라도 화폐가치 안정성 측면에서 결제통화로 위안화·헤알화보다는 여전히 달러를 선호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브라질의 탈달러화 정책은 초기 단계로, 아직 상징적·선언적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남미 공동화폐 및 BRICS 공동화폐 도입은 이제 논의가 시작되는 단계일 뿐만 아니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Paul Krugman 교수가 남미 공동화폐는 ‘끔찍한 아이디어(terrible idea)’라고 비판했듯이 실제 도입 여부도 불투명하고, 설령 도입되더라도 그 시기는 요원해 보인다. 남미 공동화폐는 이미 1980년대 말부터 간헐적으로 논의되어 왔으나 작년까지 아무런 진전이 없던 상황이었다. 정치·경제적 제도가 유사한 유럽 국가들도 유로화를 도입하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으며, 어렵게 도입된 유로화가 2010년대 초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로존 국가들의 금융·재정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화폐 통합의 장점뿐만 아니라 단점도 많이 부각된 상황에서 남미 공동화폐 및 BRICS 공동화폐가 도입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따라서, 브라질의 탈달러화 정책은 위안화 등 여타 화폐를 활용하여 달러를 급속히 대체한다거나 지역화폐의 도입 등을 통해 현 통화시스템을 단기간에 급격히 변경하기보다는 달러 중심의 현 국제 통화시스템에 대한 보완 차원에서 점진적으로 진행되어 나갈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