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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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의 성평등: 남녀 동수제의 확산에서 외교까지
울산대학교 스페인·중남미학과 이순주 교수
1. 중남미 성평등 정도, 지표로 보면

세계의 성평등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2가지 주요 지표가 있다. 먼저, 평균수명, 교육, 소득 등의 지표를 통해 남녀의 성취 수준을 국가 간 비교하는 유엔의 성개발지수(Gender Development Index, GDI)이다. 유엔의 GDI는 각 국가의 사회경제적 개발 수준에 따라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해당 국가 내 실질적인 성평등 정도를 지수화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이에 유엔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일부 지표를 추가하여 성불평등지수(Gender Inequality Index, GII)를 도입하였다. 그리고 추가로 2019년부터는 젠더 사회규범지수(Gender Social Norm Index, GSNI)를 도입하기도 하였지만 여전히 성평등에 관한 객관적인 비교는 쉽지 않다. 두 번째 지표는 개별 국가에서 경제 참여 및 기회, 교육적 성취, 건강과 생존, 정치적 권한 등의 지표를 성취도가 아닌 격차를 비교하는 세계경제포럼의 성격차지수(Gender Gap Index, GGI)이다. 세계경제포럼의 GGI는 단일 국가 내에서 각 분야별 성 격차를 지수화한 것으로, 특정 국가의 성평등 정도를 평가하기 위해 상당히 유용한 지수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양대 지표를 통해서 중남미 지역의 성평등 수준을 살펴보면, 우선 UN에서 산출한 GDI의 한국 순위는 2021년 세계 16위이지만, 성평등 정도에 따른 분류(GGI)는 중간인 3그룹에 속한다. 중남미 국가들의 GDI 순위는 우리보다 대부분 낮지만, 과테말라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우리보다 앞선 1, 2그룹에 속한다(UNDP 2023).

2023년 세계경제포럼의 글로벌 성격차보고서(Global Gender Gap Report)에 따르면, 중남미 지역은 유럽과 북미지역 다음으로 성 격차가 낮은 지역으로 평가되었다. 이 보고서는 전 세계가 완전한 평등에 도달하기까지 131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중남미 지역은 최근의 성 격차가 축소되는 추세를 감안하면, 그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53년 정도면 완전한 평등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 보고서에서 한국의 GGI 순위는 세계 105위, 동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14위를 기록했다. 반면 과테말라를 제외한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들은 100위 이내에 있다. 니카라과는 세계 7위, 코스타리카 14위, 자메이카 24위, 칠레 27위, 멕시코 33위, 페루 34위, 아르헨티나 36위 등 50위권 이내에 다수의 중남미 국가가 자리 잡고 있다(표1 참조). 안타깝게도 사회·경제적 발전 정도가 선진국의 대열에 있다고 자부하는 한국의 성 평등도가 중남미보다 한참 뒤처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교육 성취 분야에서는 표2에서 볼 수 있듯, 중남미 지역의 평등도는 99.2%에 달한다. 세부적으로 문해율 99%를 달성한 국가가 14개국이며, 고등교육의 경우 18개국에서 완전 평등을 달성했다. 중등교육 등록률은 16개 국가에서 그리고 초등교육 등록률은 9개국에서 완전 성평등을 달성했다. 건강 및 생존 지수 분야에서도 전체적으로 97.6% 정도의 평등도를 보이고 있다. 한편, 경제 참여와 기회에서 성평등은 65.2% 정도로 중동과 북아프리카(62.6%), 그리고 남아시아(63.4%) 지역 다음으로 낮은 편에 속한다.

가장 두드러진 성과는 정치 참여 및 권한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중남미는 35%대를 기록하고 있으나, 세계에서 유럽(38.1%) 다음으로 가장 성평등한 지역이며, 특히 이 분야는 최근 중남미 지역에서 여성의 정치적 권한을 확대하기 위해 도입하고 있는 ‘동수제’라는 제도적 개선을 통해 빠르게 격차를 줄이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중남미는 지속적으로 역내 국제기구를 통해 끊임없이 성평등에 관한 국가 간 협의와 논의, 그리고 행동계획의 이행 점검을 실시하며 정치 분야에서의 변화를 추동하고 있다.

< 표1. 중남미 국가별 GGI 순위 >
자료: WEF(2023), Global Gender Gap Report

< 표2. 지역별 GGI 비교 >

※ 100%로 갈수록 완전한 성평등을 의미

자료: WEF(2023), Global Gender Gap Report
2. 여성할당제의 도입: 민주화 과정에서의 여성의 역할과 국제규범의 활용

종합적으로, 중남미 지역은 유럽을 제외한 다른 지역들에 비해 정치 분야의 성평등 정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는 이 지역 여성들이 정치·사회적으로 성평등한 권한을 쟁취하기 위해 벌인 투쟁의 역사가 깊고, 민주화 과정에서의 역할이 컸던 것이 반영된 결과이다. 여기에 더해 성평등과 관련한 다양한 국제회의와 협약 등의 참여와 가입은 국제적인 규범을 국내에 적용하게끔 각 정부를 압박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중남미 지역의 여성참정권은 1927년 우루과이를 시작으로 1940년대와 50년대에 대부분의 국가에서 뿌리내렸다. 참정권의 획득 이후 1950년대에서 1970년대 혹은 국가에 따라 1980년대까지는 성평등 의제보다는 탈권위주의와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더 컸다. 이 시기는 오히려 민주화 과정에서 어머니와 아내로 한정되는 전통적인 여성의 입장과 역할을 부각시키는 것이 유리한 측면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아르헨티나의 ‘5월 광장의 어머니들’은 1976년에서 1983년까지 권위주의 정권의 폭력에 의해 실종된 자녀를 찾아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하였다. 다분히 권위주의 정부에 대한 저항적 성격을 지니는 것이지만, ‘정치적’이기 보다 ‘모성’을 강조하는 것이어서 당국의 탄압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비켜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운동은 아르헨티나 권위주의 정부의 폭력과 인권탄압을 전 세계에 알리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고, 민주화를 앞당기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975년 멕시코시티에서 개최된 UN세계여성대회 이후 나타난 여성주의(feminism)의 제도화는 중남미 지역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유엔인권협약인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 철폐에 관한 협약(Convention for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 CEDAW)(1979)’은 선출직에서 여성의 대표성 확대를 위한 적극적 조치(affirmative action)의 도입을 처음으로 옹호했다. 이를 바탕으로, 1995년 베이징세계여성회의에서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의 확대’가 주요 의제로 설정되었다. 특히 여기서 채택된 ‘베이징 행동강령’은 초국가적으로 여성 활동가들이 자국에서 여성할당제 채택을 촉구할 수 있는 근거와 수단을 제공하였다.

이와 같은 역내 외적 흐름 속에서 1991년 아르헨티나가 처음으로 총선에서 여성할당제를 적용하였다. 아르헨티나에서는 하원 의석의 경우 1983년에서 1991년까지 여성비율이 4%에 불과하였지만, 할당제 도입 이후인 1995년에는 그 비율이 38%에 달하였다. 그리고 아르헨티나에 이어 여러 중남미 국가에서 여성할당제를 적극 도입하여 1990년대 말에는 지역 평균이 20%에 도달하였다. 하지만 각 국가의 보수적인 정치, 사회적 문화를 극복할 수 있는 제도의 설계와 정치적 의지, 할당제 법 적용의 효율 정도에 따라 실질적인 여성 정치 대표성은 상당히 큰 편차를 보였다. 실제로 할당제를 적용한 선거의 결과에서 선출된 여성의 비율이 할당 비율에 현저히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여성할당제의 도입의 효과는 정치 분야에서 여성 대표성을 어느 정도 높이는데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3. 여성할당제의 제도적 한계를 넘어 ‘남녀동수제’로

문제는 여성할당제에서 정한 비율은 여성 정치 대표성 확대에서 새로운 ‘천장’으로 작용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 분야에서만 효과가 국한되었다는 점이었다. 교육과 보건 분야를 제외한 사회경제 전반에서의 불평등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여전히 종족, 인종, 사회적 계층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여성에 대한 중층적인 차별은 계속되었다. 사회적으로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근절되지 않았고, 성차별의 극단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페미시디오(Femicidio)’로 불리는 젠더 기반 여성 살해가 빈발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강력한 대처를 필요로 하였다. 이러한 정치·사회적 환경은 2000년대 들어서 입법부에서 뿐만 아니라 사법, 행정 등의 공직 내 결정 권한을 가진 고위직에서 ‘남녀동수(paridad de género)’를 지속하여 법제화할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중남미 지역에서 동수민주주의의 개념이 역내 여러 국가들로 확산된 데에는 제10차와 제11차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여성지역회의의 역할이 컸다. 이 두 회의에서 제시된 동수민주주의의 개념은 좁게는 선거에서 후보 비율과 선출직에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대표성을 갖는 ‘남녀동수제’를 의미한다. 보다 포괄적으로는 삶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정책 결정 과정과 사적 영역에서도 동등하게 대표되고 참여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구조적인 배제를 근절하고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권리와 책임, 그리고 권력을 공유하는 질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2016년 제13차 지역회의에서 승인한 ‘몬테비데오 전략’은 중남미에서 동수에 대해 ‘정치적 권한의 지위에 여성과 남성의 균형을 이루는 것을 넘어서 젠더 관계를 민주화하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 중남미 지역은 1977년 쿠바 아바나에서 ‘라틴아메리카 경제 및 사회발전을 위한 여성통합에 관한 회의’를 개최한 바 있다. 이후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경제위원회(ECLAC)의 주관으로 여성에 관한 지역국제회의를 3년 이내의 간격으로 개최하고 있다.

에콰도르는 키토 컨센서스(2007, 10차 회의) 직후 중남미에서 최초로 의회 선거에 동수제 적용을 입법하였다. 키토 컨센서스는 국가와 지방 수준의 선출직과 공직에서 여성이 동수를 달성할 수 있는 모든 조치와 메커니즘을 채택할 것을 촉구한 것이었다. 현재는 코스타리카(2009), 볼리비아(2010), 니카라과(2012), 멕시코(2014), 온두라스(2016), 파나마(2017), 아르헨티나(2017), 페루(2020) 등 9개 국가가 동수제를 적용하고 있다. 그 결과 2023년 중남미 지역 국가들에서 의회 내 여성 비율은 35.8%를 기록하고 있으며, 동수제를 도입한 국가들에서는 대부분 평균을 넘어서고 있다.

< 그래프1. 2022년 중남미 각국의 의회에서 여성 의석 비율 >
자료: ECLAC(2023)
4. 동수제 확산을 위한 메커니즘

ECLAC은 키토 컨센서스 이후 역내 국가들이 여성 발전을 위한 국가 제도를 강화하고, 공공정책 수립과 모니터링을 위한 통계자료를 제공하며, 각국의 협의된 아젠다의 이행 여부를 모니터링하기 위해 성평등감시소(Observatorio de Igualdad de Género)를 설립하였다. 감시소는 경제자율성, 결정(정치)자율성, 신체자율성, 그리고 각 자율성 간의 상호관계 영역으로 구분하고 해당 영역을 파악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지표들과 관련 제도들을 국가별로 비교 제공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연구보고서도 공개되어 있으므로 정부 관계자들 뿐만 아니라 학자, 페미니스트 등 시민단체, 개인이 분야별 성평등 현황을 확인하고 활용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각 국가가 역내 합의된 성평등 아젠다의 충실한 이행을 압박하는 중요한 도구가 되고 있다.

< 그림1. 성평등감시소(Observatorio de Igualdad de Género) 홈페이지 >
자료: oig.cepal.org/es

또 동수민주주의를 역내 전 국가로 확산하기 위한 메커니즘으로 〈Atenea por una democracia 50-50〉이 제정되었다. 이는 유엔개발계획(UNDP)가 2015년 9월 25일 지역적용 프로젝트로 승인한 ‘정치적 동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를 고안한 메커니즘이다. 이는 동수의 관점에서 여성의 정치적 권리의 실현상태를 8개 분야 40개 세부 지표를 통해 측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헌법과 법령’과 관련한 지표로는 헌법에 여성과 남성의 평등이 포함되어 있는지, 헌법에 동수(la paridad)를 포함하는지, 평등법(ley de Igualdad)이 존재하는지, 폭력 없는 삶에 대한 접근에 관한 법(ley de acceso a una vida libre de violencia)이 있는지, 차별금지법(ley contra la discriminación)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또, 사법부와 선거 관련 지표로는 대법관 중 여성의 비율, 최고선거위원회에서 여성위원 비율, 최고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젠더기구 존재 여부, 그 외 투표권(1개), 할당제와 동수제(5개), 행정부 권력과 공공행정(5개), 입법부(10개), 정당(5개), 지역 정부(2개) 등의 세부 지표로 구성이 되어있다. 이는 하나의 체크 리스트와 점수표를 혼합한 것과 유사한데 어떤 정책과 제도를 수립할지에 대한 지침을 제공한다. 이 지표들을 충족할수록 ‘동수’와 성평등에 가까워진다고 볼 수 있다.

5. 중남미 성평등의 확대, 외교에서도

중남미 지역의 성평등은 정치 영역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중남미 사회에서 여전히 심각한 젠더 폭력과 페미사이드 문제의 궁극적 해결방안은 완전한 성평등 사회를 이룩하는 것이며, 완전한 성평등이 이루어질 때 질적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중남미 지역에서는 동수제의 도입이 각 국가의 민주주의의 질적 향상을 위한 기본 요건일 뿐만 아니라 역내 국가들 간의 약속이 되었다.

2023년 1월 에콰도르에서는 경제 분야의 성평등을 위한 구체법안을 담은 비올레타경제법(Ley de Economía Violeta)*을 발효했다. 미주개발은행과 세계경제포럼은 이 법의 적용으로 에콰도르의 성평등을 위한 큰 진전이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러한 법의 도입은 국가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역내 다른 국가에도 확산될 여지가 크다.

* 경제발전에 대한 여성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궁극적으로는 노동, 교육, 사회, 정치 참여를 방해하는 모든 격차와 차별 철폐를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노동법(Código del Trabajo), 내국세제도법(Ley de Régimen Tributario Interno), 회사법(Ley de Compañías) 등 구체적인 법 개정도 동반되었다. 이 법은 공공 부문 뿐 아니라 직원수 50명 이상의 민간기업에게도 적용된다.

외교정책에도 체계적으로 젠더 관점을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여성주의 외교의 대열에 중남미 국가들이 합류하고 있다. 여성주의 외교는 2014년 스웨덴의 전 외무장관 마고 월스트롬이 도입한 개념으로, 여성의 권리, 여성의 대표성, 성평등 보장을 위한 자원할당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이는 지속가능발전목표 5번 성평등을 달성하기 위한 주요 조치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면서 최근 국제사회에서 확산하고 있다. 2020년 이미 멕시코가 여성주의 외교를 표방했고, 칠레(22.3월)와 콜롬비아(23.7월) 정부도 여기에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와 같이, 중남미 외교 분야에서도 성평등과 여성주의 기조는 점차 확산 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CEPAL(2023), Participación de las mujeres en la toma de decisiones en América Latina y Caribe,
https://oig.cepal.org/sites/default/files/participacion_de_las_mujeres_en_la_toma_de_decisiones_en_america_latina_y_el_caribe.pdf
WEF(2023), Global Gender Gap Report,
https://www.weforum.org/reports/global-gender-gap-report-2023/?gclid=EAIaIQobChMI0M6yxJSRgQMVIseWCh3FGw1VEAAYAiAAEgII6_D_BwE
UNDP(2023), Breaking Down Gender Biases: Shifting Social Norms Towards Gender Equality, 2023 Gender Social Norms Index.
https://doi.org/10.18356/9789210028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