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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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의 한류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민원정 객원연구원
지구촌 시대

세계화와 통신 기술의 발달로 지구촌 곳곳의 문화상품을 소비하는 일이 수월해졌다. 시·공간적 제한은 더 이상 결정 요인이 아니며 대중 매체는 불과 수십 년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잠재력을 획득했다. 세계화와 더불어 인터넷의 지속적인 발전은 전 지구로 퍼져나갈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새로운 유형의 문화를 창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텔레커뮤니케이션의 발달로 중남미에서도 발리우드 영화, 유럽 코믹, 일본 애니메이션, 그리고 케이팝 등 다양한 국가의 문화 상품 소비가 증가했다.1) 이에 더해 이러한 문화 상품은 팬덤을 형성하고 팬들은 전통적, 혹은 합법적인 유통 채널을 벗어나 새로운 글로벌 네트워크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으며,2) 이를 통해 낯설고 새로운 문화상품으로의 접근이 더 용이해졌다.

1) Min, Wonjung (2015). Korean Wave. In Wonjung Min (Ed.), Estudios coreanos para hispanohablantes: un acercamiento crítico, comparativo e interdisciplinario [스페인어 화자를 위한 한국학. 비판적, 비교적, 통합적 접근] (63-79). Santiago, Chile: Ediciones UC
2) Black, D. Epstein, S., & Tokita, A. (Ed.) (2010). Complicated Currents: Media Flows, Soft Power and East Asia. Melbourne: Monash University e Press.

중남미 한류의 시작

인터넷의 발달로 2000년대 초반부터 지구 반대편 중남미에서도 한국의 대중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2019년 영화 〈기생충〉, 2021년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BTS의 노래는 중남미 사람들에게도 낯설지 않다. 중남미의 한류는 아시아와 북미에서의 한류 도입 시기와 발전 면에서 차이가 있다. 또한, 중남미 지역 내에서도 나라마다 한류가 알려진 시기와 드라마, 케이팝, 영화 등 선호도에 나름의 특색이 있다.3) 공식적으로 중남미에 한류가 처음 소개된 때는 2002년 멕시코, 칠레, 페루, 브라질에 한국 드라마가 방영되면서부터다.4) 그러나 방영 시기는 국가마다 매우 산발적이고 간헐적이었다. 한국 드라마가 일부 소수 팬들만의 눈요깃거리라는 세평을 벗어난 인기다운 인기를 누린 것은 10여 년이 지나 〈꽃보다 남자〉가 방영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그 사이 2005년도에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나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 등은 영화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았다.5) 2007년 칠레현대미술관에서 한국현대미술전 〈Peppermint Candy〉를 개최했을 때 당시 박물관 소장 베아트리스 부스토스(Beatriz Bustos)는 그해 최고의 전시라며 한국미술을 칭송했다.6) 일부 학자들은 한국 드라마가 중남미에서 성공할 수 있는 이유로 가족 중심,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드라마 속 한국적 감성이 중남미와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중남미에서 생산되는 드라마의 내용을 고려해보면 전혀 무관하지는 않다. 한국 드라마는 줄거리도 흥미로우면서 온 가족이 보기에도 적절한 내용이라는 점이 차이라고 할 수 있다.7)

3) 민원정 (2022). 지구 반대편 칠레의 한류 팬덤. 현안과 정책 414호.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2022년 10월 4일.
https://www.good21.net/issuepaper/?q=YToy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zOjQ6InBhZ2UiO2k6MTt9&bmode=view&idx=13008452&t=board
4) Min, Wonjung (2015). Korean Wave. In Min Wonjung (ed.) Estudios coreanos para hispanohablantes: Un acercamiento crítico, comparativo e interdisciplinario. Ediciones UC, p. 73.
5) 민원정 (2022). 지구 반대편 칠레의 한류 팬덤. 현안과 정책 414호.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2022년 10월 4일.
https://www.good21.net/issuepaper/?q=YToy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zOjQ6InBhZ2UiO2k6MTt9&bmode=view&idx=13008452&t=board
6) Min, Wonjung (2008). The Korean Wave Arrives in Latin America. In The Korea Herald (ed.) Korean Wave. Jimoondang, p. 173.
7) Min, Wonjung (2015). Korean Wave. In Min Wonjung (ed.) Estudios coreanos par hispanohablantes: Un acercamiento crítico, comparativo e interdisciplinario. Ediciones UC, p. 74.

< 사진1.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게임 스페인어 포스터 >
자료: El Cierre Digital, El Comercio 발췌
중남미 한류의 동력: 케이팝(K-POP)의 인기

그러나 사실상 중남미 한류의 인기는 케이팝이 이끌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케이팝은 디지털 미디어의 발달과 더불어 급속하게 전 세계로 확산되었고 소비, 수용, 그리고 정체성 역학을 갖춘 특별한 팬덤을 가지고 있다. 케이팝은 시청자들이 일상생활에서도 세계화를 접하고 해석하며 다양한 전 지구적 상상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도록 하며,8) 따라서 사회적 맥락에 따라 현실을 대체할 상상의 공간을 제공해준다.9) 하지만 서구 팬들은 서구 지배적인 문화 논리 안에서 케이팝 아이돌을 숭배한다. 서로 다른 문화는 혼종으로 이해의 폭을 넓힐 가능성을 열어두는 반면 여전히 권력관계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케이팝은 하위문화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케이팝은 전통적인 미디어가 아닌 인터넷으로 여러 사람들이 콘텐츠를 공유함으로써 확산되었고 케이팝 아이돌과 팬 사이의 상호작용 또한 인터넷을 통해 강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인터넷은 케이팝 콘텐츠의 생산, 소비, 유통의 주요 플랫폼이 되었다.10)

8) Yoon, Kyong (2018) Global Imagination of K-pop: Pop Music Fans’ Lived Experiences of Cultural Identity. Popular Music and Society 41(4), 373-389.
9) Oh, David C. (2017) K-pop Fans React: Hybridity and the White Celebrity-Fan on YouTube. International Journal of Communication 11, 2270-2287.
10) Min, Wonjung (2022) Reworking the Cultural Imaginary: K-Pepsi Chile, Neo K-Pop, and Exoticized Otherness. Seoul Journal of Korean Studies 35(1), 75-79.

케이팝은 미국 대중문화의 전 지구적 흐름을 파고 들어 문화 유통의 헤게모니를 뒤흔들었다. 케이팝은 TV와 같은 전통적인 방송 매체 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음악, 드라마 등 여러 콘텐츠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중남미 사람들은 드라마를 보고 OST를 찾아보거나 좋아하는 음악이 드라마의 주제곡이라는 것을 알고 드라마를 보기도 한다. 케이팝의 인기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접근이 청소년과 MZ 세대에게 가상의 세계에서 문화, 예술, 음악의 글로벌 흐름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법을 보여주는 예다.11)

11) Min, Wonjung (2021) Mis Chinos, Tus Chinos: The Orientalism of Chilean K-pop Fans. International Communication Gazette 83(8), 799-817.

중남미 케이팝 팬들은 춤으로 팬심을 드러낸다. 2000년대 초·중반, 케이팝이 조용히 인기를 끌기 시작할 무렵 케이팝 안무를 따라 하는 커버댄스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주로 슈퍼주니어, 동방신기, 소녀시대, 빅뱅이 팬층을 이끌었다. 슈퍼주니어 커버댄스 그룹인 칠레의 Blue Boy는 자체 팬클럽까지 생길 정도였다. 2011년 KBS는 신동을 닮은 Blue Boy 멤버의 일상을 보도하기도 했다. 중남미 주재 한국 대사관들은 커버댄스 그룹을 대상으로 케이팝 콘테스트를 개최했다. 2022년 케이팝 월드 페스티벌에서는 케이팝 보이 밴드 Super M을 모방하는 칠레 그룹 솔져(SOLDIER)가 우승을 차지했다.12)

12) https://redgol.cl/tiempolibre/K-Pop-Dance-Cover-Chileno-Soldier-gano-el-K-Pop-World-Festival-2022-Cuando-ganaron-Donde-fue-el-evento-20221007-0056.html

중남미에서 케이팝이 인기를 끌며 크고 작은 공연도 열리는 중이다. 2012년 JYJ의 칠레와 페루 공연을 시작으로 모두 14회의 뮤직뱅크 월드투어 중 7회 녹화*, SM Live 공연(2019년 칠레), 모두 3회의 BTS 공연**등이 중남미 각지에서 열렸다. 슈퍼주니어는 루이스 미겔(Luis Miguel)의 라틴팝 〈Ahora te puedes marchar〉를 리메이크하고, 가수 청하는 〈Demente〉 등 스페인어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BTS의 멤버 J-Hope은 멕시코계 미국 가수 Becky G와 협업으로 〈Chicken Noodle Soup〉을, 콜롬비아 가수 세바스티안 야트라(Sebastián Yatra)는 Monsta X와 함께 〈Magnetic〉을 불렀다. 2021년 CJ ENM은 HBO Max, Endemol Shine Boomdog과 손잡고 남미 시장을 목표로 오디션 프로그램을 기획한다고 밝히기도 했다.13)

* 2012년 칠레, 페루; 2014년 멕시코, 브라질; 2018, 2022년 칠레; 2023년 멕시코
** 2017년 칠레; 2019년 브라질; 2020년 칠레 공연은 코로나 19로 취소; 2022년 칠레
13) https://www.hellokpop.com/kpop/cj-enm-to-collaborate-with-hbo-max-and-endemol-shine-boomdog-to-launch-a-south-american-k-pop-group/

< 사진2. 2018 뮤직뱅크 월드투어 공식 포스터 및 J-Hope과 Becky G 협업 사진 >
자료: 네이트뉴스, Billboard MUSIC NEWS 발췌

케이팝은 일렉트로닉, 힙합, 팝, 랩, 록, R&B 등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과 안무를 결합한 매력으로 중남미 팬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중남미 팬들은 이제 단순히 안무를 모방하는 커버댄스에서 케이팝을 재해석하려는 시도도 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 펩시 칠레 지사는 2020년 K-Pepsi Chile라는 케이팝 아이돌 모방 그룹을 만들어 자사 제품을 광고했다. 춤과 노래에 재능이 있는 5명의 칠레 케이팝 남성 팬을 모집해 한국어, 영어, 스페인어가 섞인 케이팝 스타일의 음악을 선보였다. K-Pepsi Chile 광고에는 안무, 미학, 남성성, 테크놀로지, 가사, 언어 등 칠레가 생각하는 케이팝의 주요 구성 요소가 나타난다.14) 칠레의 한류 팬들은 케이팝을 해석하고 재창조하는 과정을 통해 나름의 방식으로 한국 대중문화를 즐기는 중이다.15)

14) Min, Wonjung (2022) Reworking the Cultural Imaginary: K-Pepsi Chile, Neo K-Pop, and Exoticized Otherness. Seoul Journal of Korean Studies 35(1), 75-79.
15) https://www.good21.net/issuepaper/?q=YToy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zOjQ6InBhZ2UiO2k6MTt9&bmode=view&idx=13008452&t=board

< 사진3. 슈퍼주니어 페루 콘서트 및 NCT127 콜롬비아 콘서트 >
자료: AP Noticia, 헤럴드경제 발췌
그리고

2023년 한국문화교류진흥원의 자료에 따르면, 아르헨티나에서는 한류 관련 지출액 조사에서 음식 지출이 가장 많았을 뿐만 아니라 유료 이용 의향에서는 음식이 55.3%로 다른 콘텐츠에 비해 월등히 높다. 음악의 경우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실제 브랜드파워지수는 음식이 더 높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식은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고 서구 음악과 유사한 케이팝과는 달리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케이팝이 한류를 이끄는 견인차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웃 나라 칠레와 달리, 영화 강국 아르헨티나는 영화와 드라마가 음악, 음식에 못지 않다. 소수 마니아층의 인기를 끄는 웹툰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16)

16) 민원정 (2023). 2023 해외 한류 실태 조사: 아르헨티나 한류 심층 분석. 한류 Now. 한류 분석 심층 보고서 54(5-6), 52-61.

나가며

지리·문화적 거리로 인해 중남미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아직 미약하다. 요즘 서구 학계에서는 한국 문화콘텐츠의 인기가 한국 정부의 노력이냐 아니냐의 문제로 시끄럽다. 중남미 한류가 한국문화원의 역할 덕인지, 문화콘텐츠의 자체의 힘인지에 대한 분석은 앞으로의 과제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한류는 지구 반대편 중남미에 꾸준히 스며들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