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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칠레 국방·방산 협력 잠재성 및 방향
주칠레대한민국대사관 황정한 공사참사관
1. 칠레, 중남미의 중요 안보협력 파트너 -‘한-칠 국방협력 협정’ 발효

한국과 칠레는 중요한 안보협력 파트너이다. 2022년 양국 수교 60주년을 맞아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외교관계를 격상하였다. 칠레는 우리나라 최초의 FTA 체결국(2003년 한-칠 FTA 체결 및 2004년 발효)이자, 구리와 리튬 등 핵심 광물 공급국으로 전통적인 안보 개념을 넘어 ‘경제 안보’에 있어서도 중요한 협력국이다.

지난 2023년 9월 한-칠레 국방협력 협정이 발효되었다. 2019년 양국 정부가 서명한 지 4년 만이다. 이번 협정은 ▴국방 관련 경험·정보 교환, ▴국방 분야 인적 교류 활성화, ▴인도적 지원 및 국제평화유지 활동 협력, ▴사이버 방호·안보, ▴군사 교육·훈련, ▴방위산업, ▴군사 체육·문화 활동, ▴군사 의료·보건 서비스, ▴재난·자연재해 등 위기관리 경험, ▴군사비밀정보 보호 등 양국 간 다양한 협력 분야와 협력을 뒷받침할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2017년 발효된 방산 군수 협정 이후, 양국이 국방 관련 광범위 협력 심화 근거를 마련하고, 기존의 경제·통상·자원·에너지에 이어 양자 간 협력 범위가 국방·안보 분야로까지 확대되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2. 칠레 국방 정책, 현황 및 역량

칠레의 국방 기본 정책 기조는, ▴주권·국익·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군사력 구비, ▴역내 및 타 지역 국가에 대한 평화정책 기조 유지, ▴영토·주권·독립·국내 질서 및 자주권 보호 태세 완비, ▴우방국과 긴밀한 군사 외교 협력 활동, ▴국제 평화유지 활동 참여 등이다.

아울러, 칠레 정부 부처 내에서 인도-태평양 전략 개념을 최초로 도입한 곳이 국방부로 2020년 칠레 국방정책 내 아-태 개념이 인-태로 대체되었다. 이는 4천km가 넘는 남태평양 해안선을 보유한 칠레의 지리적 특성과 이로 인해 해상 무역이 대외무역의 93%를 차지하는 점, 그리고 전체 수출의 65% 이상이 인-태 지역에 집중된 점 등 칠레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칠레가 인도를 비롯하여 인도양 연안 국가들을 상대로 수출선 다변화를 꾀하면서, 우방과의 협력을 통한 해상질서 확보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칠레군은 육군, 해군, 공군의 3군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불과 201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방부 산하에는 국내 치안유지를 담당하는 군사경찰(Carabinero)이 있어 4군 체제로 운영이 되었다. 이 군사경찰은 1973년 칠레 군사쿠데타 이후, 1974년 국방부 산하로 이전되었다가, 2011년 이후 내무부 산하에 있다. 현재 총병력은 육군 4만6천, 해군 약 2만(해병대 3천6백 명 포함), 공군 1만1천 명으로 약 7만7천 명이 현역으로 복무 중이며, 준군사조직인 예방경찰(Carabinero)은 5만5천 명이 있다.

그렇다면 칠레의 군사력 정도는 어떠할까. 우리 언론에도 자주 인용되는 글로벌파이어파워(GFP)는 각국의 병력, 무기 수는 물론 경제력, 전시 동원 가능 인력, 국방 예산 등 60개 이상의 개별 항목 지표를 활용해 매년 군사력순위를 발표하고 있다. GFP의 2024년 군사력순위를 보면, 칠레의 군사력은 세계 145개국 중 52위로 나타났다. 중남미에서는 브라질(12위), 아르헨티나(28위), 멕시코(31위), 콜롬비아(44위)에 이은 5위로, 그다음으로 페루(53위), 베네수엘라(57위) 순이다. 그러나 칠레의 재래식 전력 수준은 중남미 어느 국가보다 높은 수준이다. 칠레군은 전략자산을 주로 미국, 유럽, 이스라엘, 한국 등에서 도입하고 있다. 칠레 공군은 F-16(46기)을 보유하고 있으며, 꾸준한 성능개량을 통해, 지역 내 최고 수준의 공군력을 보유하고 있다. 육군의 경우, 중남미에서 유일하게 3세대 전차(레오파드 2A4)를 2백 대 이상 운용 중이다. 해군도 잠수함 4척(스코르펜 급 2척, 209/1400-L급 2척), 호위함 8척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일부 군사 전문가들은 칠레의 실제 전투력을 중남미 최고 수준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군의 업무 범위는 타국에 비해 좀 더 광범위한 편이다. 먼저 공군은 우주위성 운용 및 정책을 주도하고 있으며, 공항 인프라 및 민간항공 안전도 공군 산하 민간항공국(DGAC)에서 담당하고 있다. 해군은 우리의 해양경찰 역할을 담당하며, 육군은 산하에 군사지리원(IGM)을 두고 지도 제작 및 지리정보 업무를 담당한다.

또한, 방위산업의 경우 각 군 산하 공기업에서 생산 및 유지보수·성능개량을 담당한다. 육군 산하의 육군병기창(FAMAE)에서는 탄약, 수류탄, 권총, 소총, 박격포 등을 생산할 수 있으며, 차륜형 장갑차 위탁생산, 전차와 자주포 개량 사업 수행 역량을 가지고 있다. 해군 산하의 해군조선소(ASMAR)는 군함과 민간선박 유지보수는 물론, 다목적함선, 수송함, 쇄빙선 건조 경험이 있으며, 잠수함 유지보수 성능개량 사업도 진행한 경험이 있다. 마지막으로 공군 산하의 국영항공사(ENAER)는 T-35라는 기본훈련기를 생산하여 칠레 공군은 물론 에콰도르, 파나마, 도미니카,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파라과이, 스페인 공군에 공급하였다. 현재는 T-35 개량형으로 Pillan II라는 기본훈련기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이외에도 항공기 부품 및 구조품을 생산하여 EADS(에어버스 밀리터리), 다소 항공, 록히드마틴에 납품하고 있으며 C-130(수송기), F-16(전투기), F-5(전투기) 성능개량사업뿐 아니라 보잉 707/737 등의 민항기 유지보수 역량도 보유하고 있다.

3. 한-칠레 국방협력 및 방산 분야 심화 가능성

한국과 칠레는 각각 무관(한국에선 해병대, 칠레에선 해군)을 파견하며 양국 간 국방협력을 유지해 오고 있다. 또한, 군 위탁교육생 파견 등 인적 교류와 림팩(RIMPAC)훈련 등 합동 훈련도 해오고 있다.

방산 분야의 경우 1991년 현대위아가 KH-178 105mm 견인포 16문을 수출하였으며, 기아차는 KM420(레토나), KM450(소형트럭), KM250(2t 트럭), KM451(구급차)을 꾸준히 수출하고 있다. 최근에는 기아 소형전술차량 KLTV 31대를 G2G방식으로 칠레 해군(해병대)에 납품하였다. 지난해에는 약 300대(약 1,200만 불)의 한국산 순찰차(현대 산타페, 기아 스포티지)를 칠레 내무부 산하 경찰(Carabinero)에 공급했다. 동 사업은 일반차량을 칠레 특장차 업체가 경찰 요구도를 반영하여 개조 후 납품하였다.

이외에도 칠레는 육해공의 다양한 무기체계를 비롯하여 우주·위성 및 사이버전(Cyber warfare, CW) 대응 분야에서도 한국과 협력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사이버전의 경우, 북한 정찰총국의 해커 부대로 알려진 라자루스 그룹(Lazarus Group)이 2018년 칠레 은행 네트워크를 공격한 것으로 밝혀진 이후, 칠레 사이버보안 분야에서 국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칠레는 한국과의 국방협력을 통해 단순 방산물자 도입이 아닌, 한국의 방위산업 발전 노하우를 이전받아 자국 국방력 강화 및 방위산업 발전을 도모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칠레 전략물자 조달은 크게 3가지 방식으로 이뤄진다. 첫 번째는 각 군에 전략물자 공급자 등록을 한 이후 (제한)경쟁 입찰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각 군은 소요 발생 시 공급자 리스트 상의 잠재 공급자에게 RFI(사전정보요청)를 보내고, 이를 바탕으로 RFP(제안요청) 및 RFQ(견적요청) 이후 업체 선정하여 구매 계약을 진행한다. 대부분의 구매는 경쟁입찰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두 번째는 정부간계약(G2G)이다. 우리가 칠레 해군(해병대)에 정부간계약 방식으로 기아 소형전술차량을 납품했지만 해군 이외 공군 및 육군은 정부간계약 방식은 선호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는 각 군 산하 공기업과 공동생산을 통한 납품이다. 각 군은 산하 공기업 생산 제품이나 서비스를 수의계약으로 조달을 할 수 있다. 이에 각 군 산하 공기업에서 추진하는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납품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칠레의 전략물자 조달 시 특기할 만한 사항은 금융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칠레는 중장기 소요를 미리 구상하여 예산에 반영한 후 전략물자 도입을 추진한다. 이에, 우리는 방산 수출 시 칠레에 수출금융을 제안할 필요가 없다. 칠레가 주변국 대비 이미 군사적 우위에 있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금융 패키지를 받아 군비를 늘릴 필요가 없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4. 칠레의 역내 전략적 중요성 및 새로운 협력 기회

칠레는 우리나라의 국방·방산 협력에 있어서, 중요 양자 파트너임과 동시에 지역 내 교두보가 될 수 있다. 먼저, 칠레군은 우리와 같이 서방 무기체계를 도입하고 NATO 기준을 준용하고 있어 우리와 무기체계 호환이 용이하다. 지역진출 교두보로 판단할 때는 협력국의 의지와 역량이 중요한데, 한-칠레 국방협력 협정 체결은 이러한 양국 간 협력 의지가 공식적으로 표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역량 면에서도 정치적 안정성과 건전한 재정 상황, 방산 인프라 기반과 역량, 칠레의 지역 내 외교관계 및 방산 네트워크를 고려했을 때, 우리에겐 신뢰할 만한 협력 파트너임이 분명하다. 특히, 칠레의 주요 방산공기업들은 이미 역내 국가들은 물론 미국, 유럽 국가와도 협력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칠레는 기존의 전통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물자 도입 외에도, 비전통 안보 위협에 대한 다양한 대응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이에 한-칠레 협력 범위와 가능성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특히, 국제범죄조직 대응, 남태평양 불법어업활동(IUU) 대응, 국경통제, 해안선 방어, 사이버전·AI, 우주·위성 분야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한-칠레 양자 국방·방산협력 및 지역 교두보 타진 측면에서, 금년 4월 9-13일간 개최 예정인 칠레 항공우주전(FIDAE)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동 전시회는 격년으로 개최되는 남미 최대규모의 항공우주전시회로 미국, 중국, 프랑스, 이스라엘을 비롯하여 27개국 이상에서 220여 주요 방산업체들이 참가할 예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현대 위아가 참가하고, KOTRA에서는 부스를 운영하며, 한국 방산·보안 업체 홍보활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또한, 여러 우리 방산업체들이 사절단을 구성하거나, 단독으로 동 행사에 참여하며 새로운 기회를 찾아보려 한다.

5. 칠레와의 방산 협력은 포괄 안보협력의 틀 안에서

우리나라는 칠레와 꾸준히 국방·방산 협력이 이어져 왔으나, 지리적 거리와 상대적으로 작은 시장 규모 등으로 인해 우리 방산업체들의 관심이 다소 적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칠레는 경제 안보, 군사 안보를 포함한 포괄적 안보협력의 틀에서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인 협력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국가이다. 또한, 칠레 방위산업은 역내 확산 기반을 갖추고 있으며, 산업 구조상 우리와 경쟁하기보다는 상호보완이 가능하다.

한-칠레 관계가 2022년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격상되고, 2023년 국방협력 협정이 발효된 만큼, 이 모멘텀을 이어, 전략물자 수출을 뛰어넘어 양국 간 전략적 포괄적 안보협력 체계를 구축해나가도록 노력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