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 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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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Caribbean Sea)’는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머나먼 바다로 알려져 있다. 카리브해는 중앙아메리카 지역에 있으며, 넓이는 2,754,000㎢ 정도로 동쪽의 대서양과 서쪽의 태평양을 잇는 교차점에 위치한 바다이다. 카리브해에 산재된 도서국가와 지역에 관한 정보는 국내에서 아직 생소한 편에 속한다. 학계에서도 카리브해에 관한 현대적 연구가 유럽, 아시아의 경우에 비해서 충분한 수준은 아닌 것으로 평가된다.
카리브해의 북쪽으로는 쿠바(Cuba)와 아이티(Haiti), 도미니카공화국(Dominican Republic), 미국 자치령 푸에르토리코(Puerto Rico)가 있고, 서쪽으로는 멕시코(Mexico), 벨리즈(Belize), 과테말라(Guatemala), 온두라스(Honduras), 니카라과(Nicaragua)가 있으며, 서남쪽으로는 코스타리카(Costa Rica), 파나마(Panama), 남쪽으로는 콜롬비아(Colombia)와 베네수엘라(Venezuela)를 바라보고 있다. 즉 카리브해 남쪽은 남미 서부 중앙아메리카 지협을 마주하고, 동쪽은 앤틸리스(Antilles) 제도에 둘러싸여 있으며, 멕시코 북부는 카리브해에 포함되지 않는다.
지정학적으로 카리브해는 중앙아메리카에 위치하지만, 일부가 북아메리카에 속하는 바다로 대서양과 멕시코만에 접하고 있다. 즉 북아메리카의 남동쪽, 중앙아메리카의 동쪽, 남아메리카의 북쪽에 위치한다. 하지만 사회·문화적으로 카리브해는 라틴아메리카에 속하는 남아메리카와는 약간 다르게 분류되기도 한다. 카리브해는 다도해(多島海)로서, 여러 섬으로 구성된 ‘카리브 제도(Caribbean)’가 있기 때문이다. 카리브해는 역사적으로 식민지 시기에 ‘서인도 제도(West Indies)’라고 부르던 곳이다.
특히 오늘날 카리브해의 ‘지리적 해역’과 주권국가와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일컫는 ‘정치적 카리브해’의 범주는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바베이도스, 트리니다드토바고는 소앤틸리스 제도에 포함되지만, 섬의 주요 라인으로부터 벗어나 대서양에 위치하고 있지만 카리브해의 일부로 포함된다. 남아메리카 북쪽 기아나 3국(가이아나, 수리남, 프랑스령 기아나)도 카리브해에 접해 있지 않지만, 인종적 구성과 역사적으로 공통성이 많고 거리도 가까워 정치적으로는 카리브해에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영어권 국가인 중앙아메리카의 벨리즈도 카리브해 국가들과의 역사적 공통성이 강하기 때문에 종종 이에 포함된다. 확실한 것은 이들 카리브해 도서국들이 여타 라틴아메리카 국가와는 문화적으로 다르게 분류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은 남아메리카와는 달리 이 지역은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의 지배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1)
1) 카리브해의 역사, 사회, 지역 연합 결성에 대해서는 다음 문헌에서 요약, 발췌 및 재구성하였다. 우양호(2018), “카리브해의 해역네트워크와 도서국가의 지역적 통합”. <해항도시문화교섭학>, 제18호, 205-232쪽.
카리브해 지역은 제국주의 열강의 지배로 인하여, 식민 제국의 언어 및 문화가 강하게 남아 있다. 그런데 이는 특이하게도 식민지배의 역사적 순서와 궤를 같이한다. 먼저 1492년 바하마 군도를 발견한 콜럼버스는 스페인을 식민지 확장의 길에 들도록 했다. 스페인은 남아메리카 대륙과 카리브해를 가장 먼저 지배했다. 원주민을 학살하고 노예로 삼은 뒤, 새로 발견한 땅에서 ‘부(富)’를 마음껏 착취하여 본국으로 실어 보냈다. 1494년 ‘토르데시야스 조약(Tratado de Tordesillas)’에 따라 로마의 교황은 스페인, 포르투갈과 해외의 미개척된 지역을 임의로 분할하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대서양의 한가운데를 지나가는 선이 그어졌다. 스페인은 대서양 선의 서쪽인 카리브해에 정착했고, 포르투갈은 동쪽을 지배하여 인도양 무역을 독점했다.
16세기 말까지 카리브해는 계속 ‘스페인 대해(大海)’로 불렸다. 아메리카 전 대륙을 포함한 토르데시야스 조약 덕분에 스페인은 카리브해 전 지역에서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식민지를 착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스페인은 대서양 해안으로 진출하려는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의 시도는 막을 수 없었다. 결국 17세기부터 프랑스와 영국은 서인도 제도에 많은 발판을 확보했고, 17세기 중반까지 카리브해 식민지를 조금씩 넓혀갔다.
스페인 선박을 약탈하는 해적에게 후원까지 했던 프랑스와 영국의 카리브해 식민지 형성은 스페인의 독점 지배에 종지부를 찍게 했다. 그 이후부터 카리브해는 본격적으로 대서양 노예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카리브해 섬에서 만든 사탕수수와 설탕을 유럽으로 옮겨 되팔았다. 그 돈으로 생필품을 사서 다시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와 교환했다. 이 노예를 실은 배는 카리브해로 되돌아와서 인력으로 공급되었다. 이런 삼각무역은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약 200년 동안 계속 반복되었다.
근대 이후 카리브해 국가들은 전통적으로 영국, 프랑스 등의 식민지였던 관계로 유럽으로부터 사회·문화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아프리카 노예가 다수 정착하여 아프리카적 특성도 지역의 역사와 사회적 발전에 기여했다. 한편 20세기 이후 카리브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쪽은 ‘미국’이었다. 카리브해 소도서국들은 노예해방과 독립 이후, 지리적 근접성으로 인해 미국과 가장 큰 이해관계가 생겼다. 근래에는 다소 독점적이고 협소한 협력 관계를 가져왔다. 또한, 역사와 지리적 이유 때문에 카리브해 도서국가들은 미국과 유럽을 제외한 여타 다른 국가들로부터 국제협력 혹은 원조를 받는 것에는 보이지 않는 한계가 있었다.
오늘날 카리브해에 있는 모든 도서국가들은 ‘카리브공동체(Caribbean Community) 또는 카리콤(CARICOM)’이라는 이름으로 뭉쳤다. 카리브공동체는 1973년 8월에 바베이도스, 자메이카, 가이아나, 트리니다드토바고 등 4개 도서국가들 사이에서 ‘카리콤 설립협정(Treaty of Chaguaramas)’이 체결되면서 정식으로 출범하였다. 이는 1965년에 이미 출범한 카리브 자유무역연합(CARIFTA)을 전신으로 하고 있다.
카리브공동체의 설립은 카리콤 단일시장(CARICOM Single Market)과 공동시장(Common Market) 형성을 위한 경제적 이유가 가장 컸다. 즉 최초의 목적은 시장 권역의 통합과 역내 협력의 증진, 대외정책의 상호 조율 등이었다. 이후에 해역의 조화롭고 균형 잡힌 발전을 위한 회원국간 통상관계를 강화하고 있으며, 경제활동의 지속적 확대·통합 및 이로 인한 혜택의 공정한 공유를 강조하고 있다. 카리브공동체(CARICOM)는 회원국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자격은 정회원국(Full Members), 준회원국(Associate Members), 참관국(Observers)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 중에서 정회원국만 총회 의결권이 있고, 준회원국까지는 발언권이 있다. 카리브공동체의 개별 구성원은 다음과 같다.2)
2) 2024년 기준으로 현황을 기술하였다. 출처: 카리브공동체(Caribbean Community).
정회원국(14개국과 1개 속령) | 준회원국(5개 속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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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아나(Guyana) | 버진아일랜드(British Virgin Islands, 영국령) |
바베이도스(Barbados) | 터크스케이커스제도(Turks and Caicos Islands, 영국령) |
자메이카(Jamaica) | 앵귈라(Anguilla, 영국령) |
트리니다드토바고(Trinidad and Tobago) | 케이맨제도(Cayman Islands, 영국령) |
벨리즈(Belize) | 버뮤다(Bermuda, 영국령) |
도미니카연방(Dominica) | 참관국(8개국) |
그레나다(Grenada) | 콜롬비아(Colombia) |
몬트세랫((Montserrat, 영국령) | 도미니카공화국(Dominican Republic) |
세인트루시아(Saint Lucia) | 멕시코(Mexico) |
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Saint Vincent and the Grenadines) | 베네수엘라(Venezuela) |
앤티가바부다(Antigua and Barbuda) | 푸에르토리코(Puerto Rico, 미국령) |
세인트키츠네비스(Saint Kitts and Nevis) | 아루바(Aruba, 네덜란드령) |
바하마(Bahamas) | 퀴라소(Curacao, 네덜란드령) |
수리남(Suriname) | 신트마르턴(Sint Maarten, 네덜란드령) |
아이티(Haiti) |
당초 카리브공동체의 구축과 협력은 유엔(UN) 등의 국제사회에서 회원국들의 영향력을 크게 높이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자신들의 문제를 갖고서 국제정치에 참여하려는 소도서국들의 열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8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 가장 심했던 ‘식민지 및 노예제 역사에 대한 청산과 배상요구’의 문제이다. 식민시대의 유산, 이른바 “학살 및 노예제도 운영 등의 배상에 관한 후속조치 합의”는 지난 30년 동안 카리브공동체의 꾸준한 공식 안건이었다. 카리브공동체는 국제사회에서 과거 유럽 열강들이 그들의 역사적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반드시 사과와 배상에 나서야 함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카리브 노예제도 피해자를 위한 정의 실현 및 배상”을 추진하기 위해 공동체는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제사법재판소의 중재를 통해 실제 유럽 일부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아내기도 했다. 최근에는 기후변화 대응, 해양환경 보전 등의 국제적인 도전과제에도 공동으로 대응해 나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카리브해와 도서국은 아시아, 미국, 유럽 등에 비해서 우리나라와 교류가 적었기 때문에 지리적 거리만큼 심리적 거리감 또한 적지 않다. 상당수 사람에게는 전혀 처음 들어 보는 나라 이름들도 있을 것이다. 혹자는 카리브해를 “아름다움과 모험으로 가득한 동경의 대상이자, 최고의 여행 희망지”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이제 카리브해의 국가들이 처한 현실과 상황을 직시하고 관심을 높여나가야 한다.
카리브공동체는 지역이 가진 장점의 극대화보다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통합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바다를 낀 섬 지역이라는 물리적 한계, 이동과 교통에 불리한 조건, 그로 인한 경제·산업적 지체, 빈번한 자연재해는 섬 지역의 약소국을 서로 뭉치게 만들었다. 초국경 공동체를 형성하지 않으면 강대국들과 마주하는 국제사회에서 규모의 정치, 규모의 경제가 불가능했다. 카리브공동체의 구축은 스스로 생존과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유일한 선택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 카리브공동체는 국제사회에서 그 지정학적 중요성에 주목받고 있으며, 정치적 위상도 크게 격상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등 주요 강대국들은 카리브공동체를 스스로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강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지역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 이유는 현재 유엔의 193개 회원국 중에서 카리브해의 16개 국가3)가 전체 투표권의 8.3%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의 ‘1 국가 1표’의 의결구조에서 국제사회의 주요 현안에 대해 카리브공동체는 일종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식민지 경험을 가진 도서국들의 특성상 유색인종의 인권향상과 빈곤 문제, 기후위기로 인한 해수면 상승 및 자연재난 증가 등의 현안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에 다른 나라들도 카리브해 지역의 요구에 눈을 돌리고 있다. 전통적인 외교 관계에 더하여 새로운 경제협력 관계를 통해 이 지역이 가진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이에 대해 유연하고 적절한 대응을 하는 것이 향후 카리브공동체와의 협력 발전의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3) 16개국: 앤티가바부다, 바하마, 바베이도스, 벨리즈, 쿠바, 도미니카공화국, 도미니카연방, 그레나다, 가이아나, 아이티, 자메이카, 세인트루시아, 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 세인트키츠네비스, 수리남, 트리니다드토바고(출처: UN)
지난 2023년 카리브공동체는 출범 50주년을 맞이했다. 이제는 중견 글로벌 지역연합체인 카리브공동체는 우리가 전략적으로 소통해야 할 필연적 대상이다. 우리나라는 외교부의 주도로 지난 2006년 카리브공동체와 상호협력협정(MOU)을 체결했고, 투자 및 관광 진흥, 시장 접근성 개선, 기업과 과학기술 및 인적교류 증진 등을 약속했다. 2011년부터는 매년 단위로 고위급 포럼을 정례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가장 최근인 2023년 10월에는 제13차 한-카리브 고위급 포럼이 열렸다. 역대 고위급 포럼의 주요 의제는 환경과 에너지, 관광 부문이며, 기타 협력방안을 확대하고 있다. 협력 의제가 풍성하지는 않고, 현재까지는 정부의 외교적 접근이 국제사회에서의 지지에 비례한 지원에만 충실한 상황으로 보인다. 다자 협력은 정례적이긴 하지만, 정부 주도의 단선적 구조에 가깝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은 카리브해의 주요 현안인 기후변화, 식량안보, 해양문제, 정보통신기술(ICT) 등에서 다양한 협력방안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가 가진 비교우위의 자본과 기술에 입각한 장기적 협력을 창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 예로 카리브해 크루즈와 관광투자를 특화시켜 온 미국과 스페인, 물류기지와 항만을 확보한 네덜란드, 인프라(SOC) 건설과 문화협력에 집중하는 중국 등의 사례를 우리는 깊이 참고해야 한다. 협력의 방식으로는 개별 도서국가 보다는 카리브공동체의 예하 기구를 중심으로 역내의 모든 도서국가를 아우르는 보다 포괄적인 협력이 효과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