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중남미 선거
※ 본 웹진에 게재된 내용은 외교부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지난 6.2(일) 치러진 멕시코 대선은 모두가 예상했듯이, 집권당인 국가재건운동(MORENA) 소속 후보인 클라우디아 셰인바움(Claudia Sheinbaum)의 승리로 끝이 났다. 선거관리위원회(INE)가 발표한 신속 집계 결과(6.8 기준)에 따르면, 셰인바움 후보는 59.8%의 득표율로 27.5% 득표에 그친 야당 연합의 소치틀 갈베스(Xóchitl Gálvez) 후보를 큰 차이로 따돌렸다. 이번 선거에서 이념적 스펙트럼을 넘어 단일 후보를 냈던 야당 연합은 선거 기간 동안 자주 불안한 모습을 연출하면서 유권자들의 불신과 외면을 받았다.1) 반면 셰인바움 당선인은 두 배가 넘는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하면서 MORENA는 연속 집권에 성공하였으며, 이번 선거를 통해 드러난 지지세와 AMLO(Andrés Manuel López Obrador 현 대통령의 약칭)의 영향력을 감안할 때 MORENA의 분화 가능성은 낮아지고, 당분간 독주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1) 대선과 함께 치른 의회 선거에서 ▴PRI(제도혁명당), ▴PAN(국민행동당), ▴PRD(민주혁명당)는 AMLO가 추진하는 개헌 입법을 막기 위해 총력을 다했으나, 지난 선거보다 적은 표를 얻으며 상원에서만 MORENA(82석)의 개헌 정족수(85석, 128석의 2/3)를 간신히 막음.
셰인바움 당선인은 1995년 멕시코국립자치대(UNAM)에서 에너지 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엘리트 과학자로서, AMLO 현 대통령이 멕시코시티 시장이던 2000년 당시 멕시코시티 환경 장관으로 발탁되면서 혜성과 같이 정계에 입문하였다. 정치에 입문한 이후, 그녀는 환경·기후변화 전문가로서 2006년 UNAM으로 돌아가 과학 저널에 논문을 발표하고, 2007년에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서 주요 저자로서 활동2)하면서 정치인이자 과학자로서 자신만의 차별화된 입지를 쌓아왔다. 이후 틀랄판(Tlalpan) 자치구 단체장3)을 잠시 거쳐, 2018년에 여성 최초로 멕시코시티 시장에 당선되면서 주요 정치 무대에 등장하게 되었다.
2) In 2007, she was a contributing author to the "Industry" chapter of the WG3 (Mitigation) report of the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4AR and in 2013, a lead author for the chapter in the IPCC Fifth Assessment Report. (Wikipedia)
3) 틀랄판은 멕시코시티 남부에 위치하며, 16개 자치구(Demarcación territorial) 중 가장 큰 규모이며, 인구는 70만 명(’20년 기준)임. 셰인바움은 ’15년 이곳에서 당선되었으며 ’18년 MORENA에서 멕시코시티 시장 후보 공천을 받고 사임함.
그러나 이번 대선은 MORENA의 후보 선출이 사실상 본선에서의 승리를 보장함을 감안할 때 그녀의 다소 부족한 중앙 정치 경력으로 에브라르드(Ebrard) 전 외무장관, 로페스(López) 전 내무장관, 몬레알(Monreal) 상원 원내대표 등과 같은 쟁쟁한 후보들을 쉽게 누르기까지는 AMLO의 보이지 않는 지원이 큰 힘이 되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이는 신정부에서 AMLO의 정책과 인맥 대부분이 그대로 계승될 수 있음을 의미하며, 또한 기후학자로서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에 대한 셰인바움 본인의 신념과 기존 석유·전통 에너지 산업에 집착했던 AMLO의 고집4)사이에서 마찰이 적지 않을 수 있음이 예견되기도 한다.
4) AMLO는 글로벌 민간기업들이 주도하는 재생 에너지 산업에 대한 거부감으로 인해 ’21년 전기산업법과 탄화수소법을 개정하고, PEMEX 등 공기업 권한 강화를 통해 여러 친환경 에너지 개발 프로젝트를 지연시키거나 취소시킴.
과거 AMLO는 집권하면서 대중들에게 ▴부패와 범죄 척결, ▴사회복지 증진, ▴정부 예산 삭감, ▴국가 주권 회복 등 민주화와 투명성을 약속하였다. 그의 주요 정책들도 경제 성장과 함께 구조 개혁, 사회 안정, 국내 치안 강화 등에 초점이 맞춰졌다. AMLO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재정 부양책을 최소화하고, 중앙은행의 충분한 긴축 정책으로 글로벌 인플레이션 추세에도 멕시코의 물가 인상을 비교적 잘 관리하면서 중남미 국가들 중에서는 예외적으로 강한 회복력을 보여주었다. 또한, 임기 중 글로벌 경기 부양과 미국의 리쇼어링(Reshoring), 글로벌 공급망의 탈중국 가속화 등이 이어지면서 반사이익까지 얻어 OECD 전체 성장률을 능가하는 성장을 보여주었다.5)
5) ’21~23년 멕시코 GDP 성장률 평균 4.4%, OECD 전체 성장률 평균 3.4%(실질 GDP 기준)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구조 개혁은 강하게 거부하면서 페소화 강세가 이어져 멕시코 경제는 상대적으로 건전한 펀더멘털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직접투자는 이전 니에토(Nieto) 정부만큼 증가하지 못하였다.6) 오히려 국가 이익에 반한다며 외국인 투자는 더 면밀한 조사로 제한을 받게 하고, 국내 산업에는 보조금을 지급하는 한편, 에너지, 농업, 제조업 등 핵심 산업에는 정부의 개입을 확대하였다. 심지어 석유와 천연자원에 대해서는 국유화를 강화하여 민간 부문 투자를 억제하기도 하였다.
6) ’13~’17년간 외국인 직접투자 USD 1,876.3억, ’19~’23년간 직접투자 USD 1,643.2억(5년 총액 및 유입 기준, 연말 취임에 따라 임기 첫해와 마지막 해는 산정 제외, IMF)
처음부터 멕시코 민족주의를 표방하며 집권 시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만 권력을 쓰겠다고 다짐한 AMLO는 소외된 남부지역에 자금을 투입하여 고용과 사업 기회를 창출하는 등 임기 동안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는데 비교적 충실했다. 멕시코 역사상 첫 좌파 지도자로서 그의 높은 지지율이 보여주듯이7) 멕시코 국민들은 AMLO의 이러한 통치 방식에 비교적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7) ’24.2월 Statista 기준, AMLO는 국정 지지율 58%를 유지하고 있음.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AMLO정부가 이전과 달리 멕시코 사회를 진정 더 나은 방향으로 가게 했는지, 또 민주주의를 진일보하게 했는지에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AMLO는 임기 내내 자신의 높은 지지율을 기반으로 국가 기관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였고8), 헌법에 위배되는 법안들을 추진하였으며9), MORENA 경선을 포함한 선거 과정에서 개입을 제재하려는 사법부와 선거 감독기관을 비난하였고, 특히, 군을 내치(內治)에 동원하는 등 민주주의를 퇴보하게 한 면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8) ’21년 11월 AMLO는 공공 이익과 국가 안보, 국가 발전을 위한 전략적 프로젝트들은 예산 집행 사항이나 의결 과정을 의회에 보고 없이 처리할 수 있는 행정 명령을 발동하였으나, 대법원은 법률이 아닌 명령으로 법적기관인 정보보호 감독기구(INAI) 권한을 침해하였다고 판시
9) AMLO 정부가 추진한 전력사업법 개정안은 ’21년 연방의회를 통과하였으나, 대법원은 동 법률이 헌법상 자유경쟁 원칙을 침해한다고 ’24년 2월 위헌 판결함. ’23년 추진했던 선거법 개혁안도 패스트 트랙 안건으로 위헌 결정 처리됨.
또, 매일 오전 7시 기자회견 방식을 빌려 서민들을 걱정하고 탐욕스러운 엘리트들과 싸우며, 야당과 외세를 사실상 적으로 간주하여 자신은 대내·외 위협으로부터 멕시코 주권을 수호하는 영웅처럼 역할을 정립해 왔다. 그리고 이렇게 분노를 자극하는 소통 방식은 국민들을 분열시켰고, 양극화를 심화시켜 결국 자신과 MORENA에게 편리한 통치 수단을 만들었다.
여기에 더해 빈곤층에게 대대적인 보조금 지급과 급격한 최저 임금 인상으로 멕시코 사회 안전망을 형성하게 해야 할 교육·보건 프로그램들을 사실상 후견주의10)로 바꾸어 정부와 여당은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으나, 빈곤층은 여전히 스스로 생존 기반을 만들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하게 하였다. 이는 결국 정치 세력만 뒤집혔을 뿐, 과거의 통치 방식과 비교하여 얼마나 더 나아졌는지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10)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노조나 지역 및 이권 집단 등을 설득하여 정책이나 돈을 표와 맞바꾸는 방식으로 서로 이익을 취함. 과거 PRI(제도혁명당)는 조합주의라고 부르는 즉, 정치 세력과 각 조합 간 강한 결탁을 통해 통치 질서를 구축하여 70여 년간 장기 집권함.
1990년대 극심한 사회 혼란11)에서부터 30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멕시코의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민주주의도 자율과 경쟁, 견제와 균형이라는 이상을 향해 더디지만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AMLO는 개혁의 완수를 위해 후계자인 셰인바움이 선거에서 쉽게 승리할 수 있도록 인내의 시간을 일부 되돌렸다.12)
11) 당시 집권당인 PRI의 내분과 권력 암투 속에서 개혁 성향의 대선 후보인 콜로시오(Luis Donaldo Colosio)가 지역 유세 중 암살을 당하고, 이후 멕시코는 외환 위기까지 겪으면서 국민들의 좌절과 분노가 쌓이면서 PRI의 기득권이 무너지기 시작함.
12) 과거 PRI에는 ‘Dedazo’라고 하여 퇴임하는 대통령이 후임자를 지명하고 경선을 도와 차기 대선에서 승리하도록 지원하는 정치 관행이 있었음. 셰인바움은 이번 MORENA 경선에서 복잡하고 불투명한 과정을 거쳐 대선 후보로 선출됨.
셰인바움 당선인은 자신이 공약으로 밝힌 바와 같이, 집권하면 멕시코의 주권 강화와 사회 안전망 확충, 일부 경제 부문에 대한 정부의 개입 확대 등 AMLO의 정책 목표 대부분을 승계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해 성평등 강화, 성적 다양성 확대, 양질의 무상교육 제공,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 등 그녀만의 진보적인 어젠다가 더해져 4차 변혁13)을 완성하고 멕시코를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국가로 이끌어 가려고 할 것이다. 멕시코 국가와 국민을 위한 개혁의 완성이라는 명분하에 희생된 가치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을 셰인바움 당선인이 근현대사의 오류를 반복하지 않고, 멕시코가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선진 국가로 도약하는데 일등 공신이 될 수 있기를 응원한다.
13) AMLO는 국가 핵심 자산에 대한 정부의 개입 확대, 부패 척결, 국가 주권 재확립 등 자신이 추진하는 개혁 정책을 4차 변혁(Cuarta Transformación)으로 명명함. 1차 독립 전쟁, 2차 레포르마(개혁 전쟁), 3차 멕시코 혁명에 버금가는 4번째 개혁을 통해 멕시코를 도약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으며, 셰인바움도 이를 계승하여 자신의 공약들에 반영하고 있음.
멕시코는 사실 여러 측면에서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다. 근현대사를 지나오면서 식민 지배의 아픔부터 해서 과거 권위주의 체제 지속에 따른 늦은 시민 사회의 생성과 진화가 그러했으며, 그 결과로서 초기 민주주의의 성숙도 다소 지체되었던 역사를 공통으로 갖고 있다. 또한, 경제적으로는 양국 모두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수출 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거대 시장을 보유한 미국을 우방으로 만들어 이에 크게 의존하면서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경험하였다. 최근 멕시코 경제가 GDP 규모에서 한국을 다시 추월하면서 오늘날에도 양국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건전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한국보다는 한발 늦었지만, 멕시코 200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탄생을 큰 박수로 축하하면서 향후에도 양국이 녹색 성장과 친환경 에너지 사회로의 전환을 두고 전기차, 배터리·소재, 재생에너지 사업 등에서 치열한 경쟁과 협력을 통해 상생의 발전을 거듭해 나가길 기대해 본다.
(작성일: 2024.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