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중남미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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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8일에 치러진 베네수엘라 대통령 선거에서 니콜라스 마두로(Nicolás Maduro) 현 대통령이 51% 득표하여 44% 득표한 야권연합의 에드문도 곤살레스(Edmundo González) 후보를 누르고 3선에 성공하여 2030년까지 집권하게 되었다. 그러나 서방 언론이 발표한 출구조사 결과에서는 곤살레스 후보가 65%, 마두로 후보가 31% 득표한 것으로 나왔고, 투표용지의 83.5%를 입수한 야권연합은 곤살레스 후보가 67% 득표하여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선거관리위원회(CNE)는 아직 선거 결과를 증빙할 선거구별 근거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앞서 2018년 대선에서도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었기에 국제사회는 베네수엘라에 경제제재를 가하는 것과 동시에 여야 협상을 통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실시를 촉구해왔다. 국제사회의 민주주의 회복 노력의 결과, 2023년 10월 마두로 정부와 야당 연합플랫폼(Plataforma Unitaria, PU)측이 공정한 선거를 보장하고 정치적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바베이도스 합의문(Barbados Agreement)에 서명함으로써 2024년 7월 대선을 치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정부는 바베이도스 합의문에서 약속한 ▴투명하고 공정한 선거 관리, ▴선거 참관인단 초청, ▴언론의 자유 등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국제사회의 비난과 대대적인 국민 항의에도 불구하고 마두로는 선거 승리를 선언하였고,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야권과 국민을 탄압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시민사회와 국제사회는 이번 대선이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선거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2024년 프리덤 하우스(Freedom House)에서 조사한 선거 취약성 지수(Election Vulnerability Index)에서 베네수엘라는 100점 만점에 15점을 받았다.1) 베네수엘라 선거는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가 부재한 상황, 즉 정치행위자, 시민사회, 언론의 자유 등이 제한된 환경에서 치러졌고, 선거관리위원회를 비롯한 선거 당국은 선거 전 과정에서 중립의 의무를 지키지 않았으며 국내 법조항도 다수 위반했다.
1) 프리덤 하우스(https://freedomhouse.org/country/venezuela/freedom-world/2024)
첫째, 선거관리위원회, 대법원, 검찰 등 대선 관련 정부 기관이 모두 친정부 인사로 채워져 선거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었다. 선거 당국은 야권의 대선 후보 등록을 방해하였는데, 야권의 유력한 대선 후보였던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María Corina Machado)에게 과거 반정부 활동 이력과 미국의 베네수엘라 경제제재에 찬성했다는 이유를 들어 15년간 피선거권을 박탈한 것이다. 이에 마차도는 야권 지도자의 역할을 하며 곤살레스 후보 지지를 호소했다.
둘째, 정부는 정치적 반대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채널을 차단하고,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며, 적법한 절차를 무시한 채 반대자로 인식되는 사람들을 탄압하였다. 우고 차베스(Hugo Chávez) 지지자 그룹인 콜렉티보(Colectivo)와 경찰이 정부에 반대하는 시민들을 감시하고 있고, 선거 이후 집회에 참여했다가 구금된 청소년들이 100명이 넘는다. 프리덤 하우스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는 세계에서 인터넷 자유 수준이 가장 낮은 20개국 중 하나다. 정부는 정부에 비판적인 국내외 언론과 NGO를 지속적으로 폐쇄해 왔는데, 최근에는 반NGO법을 통과시켜 국제인권 NGO까지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테러 혐의로 기소하고 있으며, 여권을 강제로 말소하는 등의 방법을 활용해 해외로 떠난 국민에게까지 통제를 확대하고 있다.
셋째, 유권자 등록을 방해했다. 특히 800만 명이 넘는 해외유권자들이 유권자 등록을 할 수 없도록 상시적으로 가능했던 유권자 등록 시스템을 2018년 폐쇄했다. 2024년 3월 18일부터 4월 16일까지 유권자 등록 기간이었지만 해외 주재 베네수엘라 대사관은 기간을 준수하지 않고 오히려 줄였으며, 일일 등록 유권자 수를 50명으로 제한하는 등 축소 운영과 불필요한 서류 요구를 함으로써 유권자들의 투표권을 박탈하였다.2)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 등록에 성공한 해외 거주 유권자는 69,000명으로 전체 유권자의 1% 미만이었다.3)
2) Transparencia Electoral(https://transparenciaelectoral.org/en/transparencia/voter-registration-process-in-venezuela-left-millions-of-people-without-their-right-to-vote/)
3) El País(https://elpais.com/america/2024-07-27/solo-el-1-de-los-venezolanos-en-el-exterior-puede-votar-en-las-elecciones-presidenciales.html)
넷째, 국내외 선거참관인의 감시 활동을 불허하는 등 선거 공정성에 있어 국제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다. 대선 직후 미국 카터 센터(The Carter Center)가 발표한 성명서 내용을 보면 선거참관인을 17명만 허용하여 14,000개가 넘는 선거구에서 직접적인 관찰을 하기 어려웠고, 선거 당일에는 선거 참관을 통제하였다고 한다.4) 야당 참관인들도 선거 참관에 제한이 있었다. 후안 카를로스 델피노(Juan Carlos Delpino)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은 선거 직전 선거 투명성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증언하였다.
4) The Carter Center(https://www.cartercenter.org/news/pr/2024/venezuela-073024.html)
다섯째, 선거관리위원회는 마두로의 대선 승리를 입증할 증빙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야권연합이 발표한 선거 결과는 야당 선거참관인들이 확보한 투표용지를 근거로 한 것이다. 베네수엘라는 전자투표를 하는데, 유권자가 출력한 인쇄용지를 투표함에 넣어야 투표가 종료된다. 이에 따라 유권자 정보 및 투표 정보가 전산에 기록된다. 투표가 종료되면 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함의 투표용지를 수개표하여 투표 결과를 검토해야 하지만,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구별 수개표 검증을 하지 않았고 전산 기록과 투표용지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의 대선 결과 발표 이후 미국, EU, 칠레, 브라질 등이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못한다고 하였고, 일부 국가는 단교를 선언하였다. 마두로의 대선 승리를 축하한 국가는 러시아, 중국, 쿠바, 니카라과, 이란 등 반미국가이다. 우호국들까지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음에 따라 국제사회의 對베네수엘라 경제제재는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미·중 패권 경쟁이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마두로는 브릭스(BRICS) 가입을 재시도할 것이고, 반미 동맹의 한 축으로서 역할을 하며 국제사회의 경제제재에 대응할 뿐만 아니라 다른 권위주의 국가들이 정치적 기반을 확대하는데 영향을 줄 것이다.
한편 베네수엘라 난민 조정센터(R4V)에 따르면 마두로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2013년부터 베네수엘라를 탈출한 사람들은 770만 명이 넘는다.5) 미국, 콜롬비아, 스페인, 칠레 등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이 많이 유입된 국가들은 이제 이민자를 더 이상 수용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베네수엘라 이민자들끼리 갈등을 만들기도 하고, 베네수엘라 사람들이 사회문제를 일으킨다는 자국민들의 시선 등이 결합되면서 수용국에서는 이 문제를 안보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고, 베네수엘라를 국제문제의 진원지로 보고 있다. 설문조사에서 베네수엘라 국민의 30%는 마두로가 재선되면 베네수엘라를 떠날 계획이라고 한다.6) 최근 베네수엘라가 가이아나 에세키보(Essequibo)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도 국내문제로부터 여론의 시선을 돌리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마두로의 3선 성공은 베네수엘라 민주주의 위기가 지역 갈등과 지정학적 위기로 확대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5) 베네수엘라 난민 조정센터(https://www.r4v.info/en/refugeeandmigrants)
6) Chatham House(https://www.chathamhouse.org/2024/08/venezuelas-stolen-election-encourages-worlds-autocracies)
신정부는 2025년 1월 출범한다. 가장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고 있는 콜롬비아와 브라질은 7월 28일 선거를 무효로 하고 재선거를 시행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베네수엘라 여야 모두 재선거를 거부하였다. 야당의 입장에서는 이미 친마두로 세력이 선거관리위원회와 사법기관을 장악하여 공정하고 민주적인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났고, 현 정부 입장에서는 지난 선거가 합법적인 선거라는 주장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2019년 국제사회는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후안 과이도(Juan Guaidó) 국회의장을 대통령으로 인정함으로써 '한 나라 두 대통령' 상황을 만들었고 경제제재를 지속하여 왔지만, 정권을 교체하지 못했다. 현재 야권에서는 곤살레스를 대통령 당선자로 인정해 줄 것을 국제사회에 호소하고 있지만, 국제사회는 이미 실패한 전략을 다시 시도하는데 신중한 입장이다. 국제사회는 각국 정부가 신뢰할 수 있는 기관에 의한 선거 검증을 주장하고 있고, 미국은 베네수엘라 정부 인사를 중심으로 경제제재를 강화하고 있지만, 베네수엘라 정부 입장에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베네수엘라 문제는 내부에서 해결돼야 하는데, 정부의 탄압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으며 마두로는 대선 직후 국가 통제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8월 26일 마두로 대통령은 2002년 차베스 정부에서 내무부 장관을 지낸 디오스다도 카베요(Diosdado Cabello) 의원을 내무부 장관 겸 차기 부통령으로 지명했고, 2022년 하이퍼인플레이션 상황을 극복한 델시 로드리게스(Delcy Rodríguez) 경제통상금융 장관을 석유 장관에 임명했다. 10대 청소년까지 구금하며 시민사회를 탄압하고 있으며, 야권 대선후보에 대한 체포 명령을 내림으로써 야당 세력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는 정권의 통치력과 통제력을 과시함으로써 국내외에 베네수엘라 정치 권력이 여전히 마두로에게 있다는 것을 전달하려는 의도이다.
한편 블라디미르 파드리노(Vladimir Padrino) 국방부 장관은 “국민에 의해 합법적으로 당선된 마두로 대통령의 차기 정부 성공을 위해 절대적인 충성을 약속한다”라고 밝혔다. 입법부, 사법부, 군대, 경찰까지 친마두로 인사로 채워진 만큼 정부의 대대적인 억압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한편, 이번 대선에서 시민들이 조직화하여 투표용지를 확보하고 야권과 연대할 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 공간을 플랫폼으로 활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정부는 지지자들, 경찰, 군을 동원해 국가 통제에 대항하는 도구가 된 모든 사이버 공간을 통제하고 내부의 반대 요소를 탄압함과 동시에 국제사회와의 연대를 차단할 것이다.
베네수엘라는 중대한 변곡점에 서 있다. 베네수엘라 민주주의 위기는 계속해서 역내 안보 불안과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파급 효과를 낳을 것이다. 국제사회의 대선 결과 검증 없이 마두로가 정권을 연장하게 되면, 베네수엘라의 정치 제도의 작동에 있어 야당의 역할은 의미가 없게 되고, 시민사회는 저항의 동력을 잃게 된다. 그렇게 되면 민주주의 회복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위한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는 지금, 베네수엘라의 야권연합과 시민사회, 국제사회는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할 것이다.
(작성일: 2024.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