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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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공동시장의 회원국은 6개월마다 정상회의를 갖는데, 가장 최근의 정상회의는 2024년 7월 8일 파라과이의 아순시온에서 개최되었다. 회원국은 순차적으로 6개월씩 의장국을 맡게 되는데, 파라과이의 산티아고 폐냐(Santiago Peña) 대통령이 우루과이에 의장국 직을 넘겨주며 그간의 소회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남미공동시장이 창설된 이래로 뼈아픈 역경이 지속되어 왔습니다.”1) “남미공동시장이 최고의 시기를 보내지 못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번 정상회의가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2) 경제통합을 향한 여정에서 남미공동시장이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회원국의 고민이 깊은 시기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1) MercoPress. 2024, “Mercosur Summit: Peña admits setbacks have always existed”
2) MercoPress. 2024, “Mercosur not going through the best of times ahead of Asunción Summit”
남미공동시장은 1991년에 출범하였고, 당시나 지금이나 중남미 지역에서 경제규모가 가장 큰 통합체이다. 2024년 7월 볼리비아가 신규회원국으로 가입했지만, 설립 회원국은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다. ‘공동시장’은 두 가지를 특징으로 갖는데, 첫째는 회원국 간에 상품, 서비스, 생산요소가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이고, 둘째는 공동시장 안으로 수입되는 제품에 회원국이 동일한 규모의 관세, 즉 역외공동관세(common external tariff)를 부과하는 것이다. 남미공동시장의 설립 기반이 되는 아순시온협정(Treaty of Asunción)은 위 두 가지 요소를 모두 설립 목적에 명시하고 있다.3) 그러나 현실의 남미공동시장은 공동시장이라고 불리기엔 불완전한 측면이 있다. 첫째, 회원국이 보호하고자 하는 자동차나 설탕 같은 제품에 대해서는 회원국 간에도 수입관세를 부과하기 때문에, 공동시장 내에서 자유무역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둘째, 대외공동관세를 부과하는 것이 원칙이나, 다양한 제품에 대해 예외 조항을 두고 있기 때문에 회원국별 상이한 대외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남미공동시장이 이렇게 불완전한 형태의 공동시장으로 운영되는 이유는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려는 보호무역주의가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공동시장이라면 비회원국에 대해서는 보호무역주의 장벽을 세우되 회원국 간에는 보호무역주의를 걷어내야 하지만, 보호무역이라는 장벽이 공동시장 내부에도 일부 세워진 형국이다.
3) MERCOSUR. 1991, “MERCOSUR FREE TRADE AGREEMENT”
회원국이 보호무역주의 성향을 갖게 된 것은 역사적인 경험 때문이다. 회원국은 모두 오랜 기간 광물이나 농산물과 같은 원자재를 미국이나 유럽에 수출하고, 제조업 제품과 자본재를 수입하는 경제구조를 이어왔다. 그러나 20세기 초반 선진국이 대공황을 겪으면서 남미 국가들의 원자재 수출이 급락하였다. 이는 원자재 수출과 제조업 제품 수입에 의존하는 남미 경제의 취약성을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국내 제조업을 육성하려는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특히 높은 수입관세라는 장벽을 세워 자국 산업을 보호하면서 제조업을 육성하였는데, 이러한 보호무역 기조가 남미공동시장의 운영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남미공동시장 설립 이전에는 개별 국가 차원에서 제조업 육성과 제품의 국내 생산을 도모했다면, 남미공동시장의 설립 이후에는 제조업 육성을 공동시장 차원으로 확대하였다. 남미공동시장 설립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생산 공급망을 남미공동시장 내에 구축하여, 개별 회원국의 산업을 발전시키고 공동시장 내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었다.4) 이러한 공동시장 내 공급망 구축은 회원국 간의 자유무역이 전제되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로 인해 역내 공급망 구축은 크게 진전되지 못했다. 결국 보호무역주의가 현재의 불완전한 공동시장에 이르게 한 것이다.
4) CEPAL. 2023, “Boletín de Comercio Exterior del MERCOSUR Nº 6. Nuevos canales para la integración en el período pospandemia”
남미공동시장은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는 경제에서 벗어나 제조업을 키우고자 하지만, 역설적으로 2000년대의 전 세계 원자재 붐을 지나며 원자재에 더욱 의존적인 경제가 되었다. 원자재는 공동시장 외부로 수출되는 상품이기 때문에, 원자재 생산과 수출이 늘어나면서 제조업 생산은 상대적으로 위축되었고, 회원국 간의 교역은 줄어들게 되었다. 우선 지난 20년간 제조업이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브라질의 경우 14.5%에서 11.1%로, 아르헨티나에서는 22.5%에서 15.4%로, 우루과이에서는 14.9%에서 10.4%로 줄었다. 파라과이에서는 17.5%에서 19.4%로 늘어났지만, 남미공동시장 전체적으로는 제조업이 축소되었다. 제조업이 위축되면서 회원국 간 교역도 줄어들었는데, 회원국의 전 세계와의 교역에서 회원국 간 교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1990년대 말에는 22.4%였으나, 최근에는 10.5%로 줄었다. 유사한 경제통합체인 EU의 경우 회원국 간 교역이 전체 교역의 약 60.7%이고, 북미자유무역협정(USMCA)에서는 약 50%인 점과 비교하면, 남미공동시장 내의 교역은 현저하게 낮은 수준이다.
질적인 측면에서 제조업의 발전이 이루어졌는지를 평가하자면, 전체 제조업에서 중·고급 기술 제품의 생산이 늘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제규모가 작은 파라과이와 우루과이에서는 제조업 제품의 질적 향상이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루과이의 경우 전체 제조업 제품에서 중·고급 기술을 사용해 생산한 제품이 과거 14.2%에서 최근 18.5%로 늘었고, 파라과이에서는 11.1%에서 21.8%로 크게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규모가 큰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는 질적인 개선을 확인하기가 어렵다. 브라질의 경우에는 중·고급 기술 제조업 제품의 비중이 33.2%에서 34.4%로, 아르헨티나는 25.8%에서 25.3%로 유사한 수준으로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남미공동시장의 제조업은 전반적으로 양적인 면에서 위축되었고, 질적인 면에서 발전이 더디다고 할 수 있다.
제조업을 비롯한 산업 발전은 남미공동시장 모든 회원국이 공통으로 마주하는 과제이다. 그리고 이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남미공동시장이 성장의 발판이 되는지 혹은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원국마다 견해가 다르다. 뿐만 아니라, 같은 국가라 할지라도 지도자에 따라 견해가 달라진다. 현재 브라질의 룰라(Luiz Inácio Lula da Silva) 대통령은 브라질의 산업과 경제발전에 남미공동시장이 긍정적인 기여를 한다고 바라보는 반면, 아르헨티나의 밀레이(Javier Gerardo Milei) 대통령은 남미공동시장의 보호무역주의가 성장의 걸림돌이라고 판단한다. 이러한 차이는 두 지도자의 서로 다른 경제관에서 비롯된다.
국내 경제정책에서 룰라 대통령은 신산업정책을 수립하고 정부가 민간과 함께 투자의 주체로서 적극적으로 역할을 하도록 한다. 반면, 밀레이 대통령은 무정부 상태를 이상향으로 설정하고 모든 것의 자유화와 최소한의 정부를 지향하는 경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룰라 대통령은 Mercosur-EU FTA가 남미공동시장 회원국의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협정문이 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 주장의 바탕에는 남미공동시장을 통해 회원국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그러나 밀레이 대통령은 극단적인 시장자유주의를 지향하기 때문에, 남미공동시장의 보호무역주의는 그가 이상향으로 바라는 경제모델과 상충한다. 또한 밀레이 대통령은 경제발전의 협력 대상국으로서 개발도상국가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선진국과의 협력을 지향한다. 이러한 이유로 밀레이 대통령은 대선에서 남미공동시장의 탈퇴를 공약하기도 했다.5) 밀레이 대통령은 7월에 개최된 남미공동시장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대신, 이 기간 브라질에서 개최된 보수정치행사에 참석했는데, 이는 남미공동시장에 대한 그의 회의적인 입장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두 정상 간 경제관의 차이는 외교적인 불화로도 이어졌다. 특히 밀레이 대통령은 룰라 대통령을 ‘부패한 공산주의자’라고 언급하거나, 브라질의 경제정책을 사회주의라고 비판하고 있으며,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밀접한 경제관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취임 이후 룰라 대통령과 대면할 기회를 만들지 않고 있다.6)
5) The Conversation. 2023, “Argentina’s Brexit: why new president Milei is threatening to pull out of South America’s common market”
6) Reuters. 2024, “Argentina's Milei doubles down on Lula criticism as war of words heats”
아르헨티나와 브라질뿐 아니라, 우루과이와 나머지 회원국 간에도 긴장 관계가 존재한다. 이는 남미공동시장이 역외국가에 시장을 개방하는 데 있어, 회원국 간에 의견이 갈리기 때문이다. 경제규모가 큰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시장개방에 소극적인 반면, 경제규모가 작은 우루과이와 파라과이는 적극적인데, 특히 우루과이는 남미공동시장이 중국과 FTA를 체결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파라과이는 대만과 수교하고 있는 상태이기에 중국과의 FTA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입장이고, 브라질은 시장개방에 소극적이며, 아르헨티나 전 정부는 시장개방에 소극적이었고 현 정부는 남미공동시장에 관심이 낮은 상태이다. 따라서 우루과이의 주장은 회원국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에 우루과이는 단독으로 중국과 FTA를 논의하고 있다.7) 그러나 남미공동시장의 설립협약은 개별 회원국이 역외국가와 무역협정을 체결하는 것을 금하고 있기 때문에, 우루과이의 행보는 설립협약을 위반하는 처사이다.
7) Buenos Aires Times. 2024, “Mercosur tensions: Uruguay rage overshadows hope for EU deal”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정상의 남미공동시장을 바라보는 입장 차이와 아르헨티나의 남미공동시장에 대한 거리두기 등으로 인해, 남미공동시장의 운영이 매끄럽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미공동시장은 중남미에서 가장 중요한 시장이다. 특히, 최근 볼리비아가 정회원국으로 가입하면서 남미공동시장이 외연적 확장을 이루었다. 볼리비아는 2015년에 가입을 신청했고, 이후 각 회원국 의회의 승인을 거쳐 2024년 7월 정회원국 자격을 얻게 되었다. 볼리비아는 향후 4년 동안 국내법을 남미공동시장의 규제와 일치시키는 이행 기간을 갖게 된다.8)
8) CNN. 2024, “El presidente de Bolivia, Luis Arce, promulga la ley de adhesión al Mercosur”
중남미 경제통합체 중에서 남미공동시장과 더불어 경제적 가치가 높은 시장은 멕시코, 칠레, 페루, 콜롬비아를 회원으로 하는 태평양동맹(Pacific Alliance)이다. 특히, 멕시코가 미국의 니어쇼어링 생산기지로 재평가받고, 칠레가 리튬의 최대 매장국이자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로서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태평양동맹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경제규모와 인구 측면에서 남미공동시장은 태평양동맹보다 가치가 높은 지역이다. 남미공동시장의 GDP는 볼리비아를 포함하여 약 3조 달러로 중남미 전체 GDP의 약 절반이고, 인구는 약 2억 8천만 명으로 중남미 인구의 약 43%를 차지한다. 태평양동맹의 GDP는 이보다 적은 약 2.8조 달러, 인구는 약 2억 4천만 명이다.9) 최근 우리기업의 투자 동향을 살펴보더라도 남미공동시장의 경제적 가치를 알 수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브라질 경제가 성장세를 회복하면서, 우리기업의 투자도 빠르게 늘고 있다. 2012년 이후 남미공동시장 국가들의 경기침체로 우리기업의 투자가 지속적으로 하락했으나, 팬데믹 이후에 투자가 증가하여 반전을 이루고 있다. 2023년에 우리기업이 브라질에 투자한 직접투자액은 약 12억 달러인데 이는 멕시코에 투자한 약 7억 달러에 비해 1.7배나 높은 수준이다.10) 또한 아르헨티나는 중남미 리튬 보유국가 중에서 가장 기업 친화적인 투자환경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기업이 리튬을 직접 생산하는 설비에 투자한 국가이다.
9) World Bank 데이터
10) 한국수출입은행 해외투자통계
남미공동시장은 경제규모가 큰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운영을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양국의 경제정책 노선이 큰 차이를 보일 경우, 남미공동시장의 운영과 대외협상이 순탄하게 이루어지기 어렵다. 최근에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번갈아 가며 남미공동시장에서 일탈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브라질의 전 보우소나루(Jair Messias Bolsonaro) 대통령(2019~2022년)은 밀레이 대통령과 유사하게 남미공동시장의 보호무역주의에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당시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대외공동관세를 낮출 것을 회원국에 요구했지만, 회원국이 동의하지 않자 브라질만 일방적으로 대외공동관세를 낮추기도 했다.11)
11) USDA. 2021, “Brazil Temporary Lowers Import Tariffs”
이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모두 새 정부가 들어선 후, 브라질은 대외공동관세를 원래 수준으로 복구하고 남미공동시장의 공동행동을 지지하는 반면, 아르헨티나가 남미공동시장에서 일탈하고 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중 적어도 한 나라는 남미공동시장에 소속되려는 의지를 갖는다는 점이다. 특히 룰라 대통령은 경제통합에 대해 강한 의지를 갖는 지도자이다. 밀레이 대통령과의 불편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룰라 대통령은 브라질의 경제발전에서 남미공동시장이 중요한 플랫폼이라는 그의 신념에 변화가 없음을 밝혔다.12)
12) 브라질정부. 2024, “Lula expresses an “unshakeable” belief in Mercosur's strategic regional role“
남미공동시장을 공고화하려는 브라질의 노력은 남미를 넘어선 국제무대로도 확장된다. 브라질은 2024년 G20 의장국으로서,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국가들이 당면한 문제를 의제로 설정하여 국제사회에 개도국의 요구가 반영될 창구를 마련하고 있다. 아프리카연합(African Union)은 G20 회원국의 지위를 부여받아 2024년부터 회원국 자격으로 G20 회의에 참석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룰라 대통령이 아프리카연합의 G20 가입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왔다.13) 그리고 브라질은 이번 G20 회의에 남미공동시장을 초청하였고, ▴빈곤퇴치, ▴지속가능한 발전, ▴글로벌 거버넌스 개혁이라는 의제에서 남미공동시장이 결집하도록 요청하고 있다.14) 이번 G20 개최를 계기로 브라질은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리더십을 활용해, 그리고 남미공동시장의 G20 참석을 통해 남미공동시장의 결집을 다지고자 하며 그 귀추가 주목된다.
13) 브라질 정부. 2023, “Lula announces that Brazil will back the African Union's entry to G20”
14) G20 Brasil 2024. 2023, “President Lula invites Mercosur countries to act as partners in the G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