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문
※ 본 웹진에 게재된 내용은 외교부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정책과 미국과 중남미 관계:
한국의 중남미 관계 강화 전략
국방대학교 안전보장대학원 김영준 교수
서론

2025년 1월 20일, 트럼프 행정부 2기가 출범하였다. 트럼프 행정부 1기의 충격에 대한 반작용으로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였으나, 4년의 임기를 끝으로, 미국민들은 다시 트럼프 대통령을 백악관으로 소환하였다. 2015년 뉴욕에서의 그의 첫 대통령 출마 선언은 여전히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사건으로 기억된다. 통상적으로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인들은 대통령 출마를 선언할 때, 이전 행정부에 대한 비판과 함께 출마의 변으로 미래에 대한 비전 등을 밝히는 것이 관례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출마 선언은 달랐다. 그는 중남미 국가 출신 불법 이민자 통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불법 이민자들 중에는 중범죄자들이 있다고 하고 심지어 이들을 강간범으로까지 표현했다. 특정 집단에 대한 강한 타자화와 적대적 표현은 과거 냉전 시절 공산주의나 소련, 9.11 테러 이후 이슬람 테러리스트 조직에게나 쓰던 방식이었다. 특히 인종차별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중남미 국가 출신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원색적 비난이 담긴 트럼프 대통령의 출마 선언은 전통적인 미국 정치인의 상을 모두 바꾸어 놓았다. 동시에, 그간 사회적 약자로 보호받아 왔던 불법 이민자들을 강도 높게 비난하면서 그가 기존 정치인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갈 것이라는 것을 예고했다.

이민과 정치

이민 문제가 발단이 되어 정치적인 사건이 되고 정치 진영이 양분화된 경우는 역사적으로 종종 있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전 시절 공산화된 베트남을 탈출하려던 이민이나, 공산화된 쿠바를 탈출하려던 난민을 적극 수용한 것은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포용성과 미국식 자유주의 질서의 상징이자 권위주의 체제 등에 대한 상대적 도덕적 우위로 존재했다. 특히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신대륙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유럽의 취약 계층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로서 이민자에게 매우 관대한 정책들을 전통적으로 고수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이민에 대한 입장은 냉전 이후 유럽과 미국 등에 제3세계 출신 이민자들이 급증하고, 불법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장기화된 시리아 분쟁으로 시리아 난민들이 유럽으로 유입됨에 따라, 기존의 이민자 증대로 인한 사회·문화 변화에 저항감이 있던 극우 유럽 정치인들은 이민자 축소 등의 공약으로 정치 선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는 9.11 테러 이후 이민자들이 자행한 유럽 내 테러, 유럽 국적자인 무슬림의 IS 가입 등으로 이민자에 거부감이 있던 유권자들에게 크게 영향을 미쳤다. 특히 프랑스의 마린 르 펜(Marine Le Pen) 등이 등장하며 유럽 내 극우화·반이민 정서가 확산되는 가운데, 영국에서는 반이민 정서에 편승한 브렉시트(Brexit) 투표 가결로 EU 탈퇴가 확정되면서 반이민 정서가 정책으로 실현화되는 정점에 이르렀다. 이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주요국에서는 브렉시트와 유사한 극우 정당의 반이민 정책 제안 등이 돌풍을 일으키게 되었다.

한편 미국에서는 멕시코 등 중남미 불법 이민자들의 증가와 미국 내 몰락한 서민층의 분노가 결합하면서, 트럼프 대통령 후보의 남부 국경지대 불법 이민자들의 범죄를 타겟으로 하는 반이민 정서가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다. 트럼프 등장 이전, 보수 언론인 폭스 뉴스(Fox News)나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The Heritage Foundation) 등에서는 이미 증가하는 중남미 히스패닉 이민자들을 타겟으로 한 여론조사, 불법 이민자들의 복지 지출로 인한 미국 서민층, 중하층 월급 노동자들의 세금 부담 증대와 혜택 축소 등을 강조하는 방송, 칼럼, 보고서 등을 양산하였고, 스티브 배넌(Steve Bannon)이나 스티븐 밀러(Stephen Miller) 등의 보수 논객들은 불법 이민자 문제를 전면에 등장시켰다.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 후보는 남부 지역 백인 서민 유권자들의 잠재된 불만과 요구를 과감하게 반영하여, 모든 이민자들은 약자이기 때문에 관대해야만 한다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에 정면으로 맞서 남부 국경지대에 장벽을 세운다(Build the Wall)는, 당시에는 허황되게 들리는 공약을 내세웠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유세 당시 엄청난 반감을 불러일으켰던 불법 이민자 추방과 장벽 건설에 대한 주장들은 바이든 행정부 시기에도 변형된 형태로 예산과 법안이 통과되었다. 이렇듯 이민은 이제 미국, 유럽 등 서방권에서 사회·문화적 정체성 문제, 이민자에 대한 복지 혜택을 둘러싼 논쟁, 불법 이민자를 경제적 불만의 타겟으로 삼는 보수의 목소리가 다수를 차지하여, 극우 정당이나 트럼피즘(Trumpism)이 확산되게 되는 변화를 초래했다. 스티븐 밀러는 트럼프 행정부 2기에서도 백악관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으면서 불법 이민자 추방과 차단이라는 반이민 정책을 지속 강화할 것을 예고하였다.

현재 미국과 중남미 관계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선거 기간 내내 멕시코 등 중남미 국가들이 불법 이민자 증가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며 집권 시 대대적인 압박을 하겠다고 공언을 해왔다. 집권 직후 캐나다, 멕시코에 먼저 관세를 부과할 것을 선언하면서 선거 운동 기간 공언한 압박을 바로 실현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불법 이민 문제에 대해서는 멕시코라는 특정국을 지속 강조하며 멕시코 정부가 불법 이민 문제를 모두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압박을 가해왔다. 이 과정에서 관세 부과는 단순한 경제적 조치가 아니라, 압박 수단이자 중남미 정책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적 맥락을 이해하는 도구로 볼 수 있다.

최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중남미 관계에서 또 하나의 주요 의제로 내세운 것은 파나마 운하를 되찾겠다는 것이었다. 파나마 운하는 전 세계 무역량의 4~5%를 차지하고, 160개국 1,700개 이상의 항구를 연결하고 있어 전 세계 해상 운송의 전략적 요충지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곧 파나마 운하를 중국으로부터 환수할 것이며, 중국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해 파나마 주둔 미군(현재 200명 수준)을 증강하고, 외교적 압박도 가할 것임을 강조하였다. 그 결과,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실제로 파나마 운하 인근 2개 항구의 운영권은 홍콩계 기업 CK 허치슨 홀딩스(CK Hutchison Holdings)에서 미국의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으로 넘어가게 되었으며, 이는 그의 공약과 선언이 매우 빠른 속도로 이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조치들은 미국이 중남미와의 관계에서 중남미 출신 불법 이민자 차단에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중남미에서 확장되고 있는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려는 의도를 반영한다. 현재 미국은 중남미에서 전통적인 영향력을 재확립하고, 실익을 확대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1기에서 2기로 : 고립주의에서 팽창주의로?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세계 경찰국가 역할을 최소화하는 고립주의 경향을 보였다면, 2기에서는 취임 연설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종식시키는 동시에 파나마 운하 환수, 그린란드를 합병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등 윌리엄 매킨리(William McKinley) 전 미국 대통령의 제국주의·팽창주의 노선도 강하게 병행하고 있다. 이러한 고립주의와 팽창주의의 동시 적용은 모순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모순된 것이 아니라 선택과 집중의 문제로 보는 것이 옳다.

미국은 자유주의 가치나 동맹국 연대라는 명분을 위한 전쟁 장기화에 몰입하는 대신 실질적인 미국의 지정학, 실용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곳으로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정과 광물 협정을 추진하는 것, ▴유럽 안보는 유럽인들이 책임지고 미국의 나토(NATO) 기여를 줄이는 것, ▴한국과 일본 등에서 미국의 기여도를 낮추면서 방위비 분담금을 올리는 것,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위기 관리를 시도하는 것, ▴그린란드, 파나마 운하를 확보하는 것 등이 모순되는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과 집중, 실익이 있는 곳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일관성 있는 정책 기조인 것이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 2기가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향후 2기 행정부의 대외정책 기조와 방향은 현재까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집행 성격을 통해 예상할 수 있다. 즉 트럼프 행정부 2기는 ▴동맹국들에게 최대한 압박을 통한 미국의 실용적인 이익 확보와 ▴적대국들 중 러시아, 북한과의 관계 개선, ▴중국과의 경제, 무역 분야 경쟁 등에 집중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트럼프 행정부 2기의 대외정책 기조는 중남미를 포함한 전체적인 글로벌 전략의 일환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미국과 중남미 관계 전망 : 이민 문제를 중심으로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중남미에서 확대되는 중국의 영향력, 특히 정치·경제 차원의 자원 확보와 중남미 내 친중 국가 확보를 통한 외교력 증대를 차단하고, 서반구 지역에서의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고자 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파나마 운하 관련 논란과 같은 사례는 미국의 대중남미 정책 기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트럼프 행정부 2기에서는 전반적으로 미국의 대중남미 정책이 강화될 것이고, 불법 이민자 차단 정책에 대한 강경한 미국의 이민정책도 이러한 기조와 함께 추진될 것이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남미 강경 이민정책은 국내 정책 차원에서는 불법 이민자 차단과 체포·추방이라는 맥락에서 진행되는 동시에, 중남미 관련 국가들을 압박하고 이를 해당국뿐 아니라 중남미 전반에 대한 외교 안보 전략으로 활용할 여지가 높다. 이민정책이 국내 정책인 동시에 외교 안보 정책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 내 불법 이민자 비중의 다수를 차지하는 멕시코, 아이티, 베네수엘라 등은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으로 불법 이민자 차단 정책에 협조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이민자 문제 등에 대한 압박으로 인해 자원 등 다른 이권과 관련된 미국과의 협상에서는 불리한 위치에 놓일 가능성도 높다. 관세도 이러한 측면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이민 문제와 함께 중남미 국가들을 압박하고 유리한 협상 고지를 점령하는 수단으로 함께 활용되고 있다. 중남미 국가들이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이슈들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

우리의 대응 전략

우리의 대중남미 외교 전략은 실용주의 차원에서 자원 공급망 및 외교력을 확대하는 것이 주요 노선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중남미를 상대로 강경한 이민정책을 펼치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 먼저, 우리의 대외 원조 및 외교력을 활용하여 ‘한-중남미’라는 단순한 협력을 넘어서 미국과 중남미 모두 관심있는 이민 문제, 개발협력 등의 사안에서 한국이 참여자 및 협조자로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통해 중남미 시장 진출과 자원 확보에 유리한 여건 조성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중남미는 한 개의 권역으로 묶기에는 여러 개의 국가로 이루어져 있고 개별 환경들이 다 다르지만, 각국에 대한 한국의 긍정적인 경제, 문화, 외교 영향력은 상당하다. 이를 활용하여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강경한 이민정책과 관련하여 한국이 기여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여 기회 요소를 창출할 수 있다면, 기존의 한국과 개별 중남미 국가들과의 관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대중남미 외교 정책의 시기가 도래할 수 있다.

또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중남미 국가들과 불법 이민 차단을 추진할 때 한국은 중남미 국가들 내 한국의 기업과 문화 산업에 대한 우호성을 바탕으로 인적, 문화 교류를 확대하는 동시에, 적극적인 지원자이자 개발 사업의 주도자로 참여하여, 중립적인 위치에서 기회의 공간을 확보하고, 중남미 자원에 대한 접근성을 확보할 교두보로 활용해야 한다.

중동의 기회가 대한민국 발전의 거점이 되었듯이, 위기의 중남미가 역으로 한국의 중남미 진출의 기회가 될 수 있기에, 한국과 중남미 국가들 간에 미국을 매개로 상호 이익이 될 기회가 열려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이를 잘 활용할 수 있는 한미 공조와 중남미 국가들과의 연대를 강하게 유지해야 한다. 외교력 확보와 시장, 자원 확보를 위한 중남미로의 진출 기회가 트럼프 행정부 2기의 이민정책에서 확보될 수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