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관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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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전략 경쟁은 중남미에서도 중요한 화두이다. 필자가 주페루 국방무관으로 근무하며 페루 군 장성과 영관장교를 만날 때마다 항상 듣는 질문이 주요국 간 전략 경쟁에 대한 견해이다. 이러한 질문이 흔한 이유는 중남미 지역에서도 글로벌 전략 경쟁은 피할 수 없는 구조적 환경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제관계 환경 속에서 2024년 한국이 페루에서 달성한 방산 수출 성과를 검토하는 것은 의미 있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2024년은 대중남미 방산 수출 역사에서 ‘르네상스’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놀라운 성과를 달성한 해였다. 특히, 페루 해군과는 중남미 방산 수출 역사상 최고액인 4억 6천만 달러에 달하는 전투함 건조 계약을 체결했으며1), 페루 육군과는 향후 추진될 기동성 향상 프로그램의 주사업자로 계약을 체결했고2), 1차 이행 계약으로 6천만 달러 규모의 K808 장갑차 30대 수출을 성사시켰다. 이어서 2024년 11월 페루에서 개최된 APEC 계기에 페루 육군과는 차기 전차 도입사업, 페루 해군과는 차기 잠수함 공동 연구, 차기 전투기 도입사업 대상 기종인 KF-21 부품 공동 생산 등에 대한 총괄협약서와 MOU 등을 체결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이외에도 한국 육군이 전력화하여 운용 중인 소형전술차량(KLTV), 다목적 기동헬기 수리온, 경비함, 드론 등의 페루 수출 가능성도 검토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이러한 놀라운 대페루 방산 수출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일까? 글로벌 전략 경쟁이 심화되는 구조적 환경 속에서 대페루 방산 수출 성과를 분석하는 것은 향후 한국의 대중남미 방산 수출 성과를 확대할 수 있는 근간이 될 것이다.
1) 이재림, ‘중남미 방산수출 새역사…HD현대重, 수조원대 페루 함정 건조’, 연합뉴스, ’24.3.29.
2) 이재림, ‘현대로템·STX, 페루에 장갑차 공급계약…페루대통령 "韓 감사"’, 연합뉴스, ’24.5.22.
방위산업 연구의 저명한 학자인 J.S.Gansler는 그의 저서 ‘The Defense Industry’에서 방위산업 기반 형성을 위해서는 ‘국제적 상호 의존성 관련 정책 개발’이 필수적임을 강조한 바 있다. Gansler가 주장한 ‘국제적 상호 의존성’은 주요국 간 전략 경쟁이 심화되는 시기에 한국의 방산 수출 전략 방향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본 기고문에서는 점차 격화되고 있는 글로벌 전략 경쟁 속에서 한국의 대중남미 방산 수출 역사상 최대 성과를 달성한 페루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향후 한국 방산 수출의 확대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앞서 언급한 한국의 대페루 방산 수출은 하룻밤에 이루어진 꿈과 같은 일이 아니다. 2010~2023년까지 지난 14년여 동안 한국의 대남미 방산 수출 중 약 64%(SIPRI TIV*기준 259백만 달러)가 페루를 대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으며, 수출된 무기체계도 경비함, 군수지원함, KT-1P 항공기 등 매우 다양했다. 또한 한국과 페루의 육해공군은 정기적인 양자 회의체를 운영하여 방산 협력을 위한 기반을 다져왔다.
* TIV는 무기거래량(Trend Indicator Value)을 의미
먼저, KT-1P는 2014~2017년간 총 20대가 한국과 페루 간 공동 생산 방식으로 수출되었고, 500톤급 경비함 획득 사업은 2013년부터 총 10척이 계획되어 현재 7~8호선을 건조 중이며 10호선까지 건조된다면 약 5,000억 원의 방산 수출 성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또한 중남미에서 건조된 함정 중 가장 큰 규모의 군수지원함 2척(BAP Paita, BAP Pisco)도 한국과 공동으로 생산했다.
특히 2024년은 페루를 대상으로 한국의 대중남미 방산 수출 역대 최고액, 최대 규모를 기록했으며, 장기계약으로 체결되어 양국이 ‘전략적인 방산 협력 관계’로 발전했다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대목이다.
첫 번째 사업은 페루 해군의 ‘전략적 동반자 기업 선정 사업’이다. 1차 사업으로 페루 해군은 현대중공업과 협력하여 4억 6천만 달러 규모의 호위함, 원해경비함, 상륙함 2척 등 4척의 함정 건조에 착수했고, 장기적으로 총 23척의 함정 건조 사업에서 현대중공업이 배타적 우선협상자 지위를 확보했다.
두 번째 사업은 페루 육군의 ‘전략적 협력 기업(기동성 향상 프로그램)’인데, 1차 사업으로 페루 육군은 현대로템과 협력하여 6천만 달러에 달하는 페루 수출용 K808(30대)의 생산에 착수했다. 향후, 현대로템/STX는 주계약자인 페루 육군 조병창(FAME)과 협력하여 중대형 수송차량, 소형 전술차량, 4륜형 장갑차량, 구난차량 등 특수차량과 전차까지 장기간 독점적으로 우선 공급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했다.
위 사업의 성과를 통해, 우리는 중남미 국가들의 군사력 운용과 방위력 개선 방향에 대해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었다. 첫째, 남미 국가들의 군사력 운용이 여타의 지역과는 달리 ‘대게릴라, 대마약, 대조직범죄(organized crime) 군사작전’ 등의 저강도 전투 작전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둘째, 국제관계 변화와 연계하여 무기체계의 ‘NATO 표준화’를 추구하고 있다. 셋째, 무기체계의 도입을 자국 산업 역량 강화와 연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넷째, 대부분 중남미 국가들이 낙후된 무기체계를 교체하는 시점에 도달했다. 다섯째, 중남미 국가들의 중요한 군사작전 중 하나는 비전쟁 군사행동(Military Operations Other Than War, MOOTW)이며, 이에 적합한 무기체계의 도입을 선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전쟁이 정치의 연장선에서 발생하는 것과 같이, 무기체계는 단순한 전쟁의 도구가 아니라 국가에 내재된 정체성의 표출이기 때문에 대페루 방산 수출에서 확인된 특징 중 ‘NATO 표준화’가 왜 포함되었는지는 글로벌 전략 경쟁과 연계하여 생각해 봐야 한다.
그렇다면, 미국과 중국은 어떠한 전략으로 중남미에서 방산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가? 중국은 중남미 지역에서 신규 방산 시장 개척을 위해 군사원조 및 각종 군사 협정을 융합한 방산 수출 확대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남미 국가를 대상으로 최저가 입찰, 무기의 무상 양도, 무상이자 차관 제공, 장기 군사 협정 체결 등을 통해 중국의 군사적 영향력을 증대해 온 것으로 보인다. 이에 더하여, 중국은 무기체계를 수출한 국가를 대상으로 무상 군사교육, 정치적 지원 등을 통한 방산 수출 확대를 추구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가 대표적인 중국의 방산 수출 대상 국가이다.
미국도 에콰도르, 페루, 아르헨티나 등 중도우파로 전환한 국가를 대상으로,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 회복을 위한 방산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2024년 4월에 아르헨티나 하비에르 밀레이(Javier Milei) 정권이 유력하게 검토하던 중국산 전투기의 도입을 파기하고 미국의 F-16 24대 도입을 확정한 것이다.
또한, 미국은 중남미 전역을 관할하는 전담 군사조직을 구축하고 군사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2001년에 서반구안보협력기구(Western Hemisphere Institute for Security Cooperation, WHINSEC)3)를 설치하여 중남미 국가의 주요 국방 인력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美 남부사령부4)는 중남미 전체를 관할하는 전역사령부로서 1,200명 이상이 근무 중이고, 아르헨티나(1998년), 브라질(2018년), 콜롬비아(2022년) 등 주요 중남미 국가를 NATO의 역외동맹국으로 참여시켰다. 美 남부사령부는 남미 국가들과 UNITAS, Tradewinds, PANAMAX, Southern Cross 등과 같은 다국적 연합훈련, 브라질(Southern Vanguard) 및 콜롬비아(Relámpago) 등과는 양자 훈련을 정기적으로 진행하여 남미 국가들과의 군사적 호환성을 꾸준히 증대시키고 있다5).
3) 1944년 미 육군내 라틴아메리카 훈련센터로 출발하여 임무와 명칭이 변경되다가 2001년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https://armyuniversity.edu/whinsec/en/home)
4) 미 남부사령부의 역사 및 역할 참조. (https://www.southcom.mil/About/)
5) Juan Gabriel Tokatlian, ‘Un maleficio imaginario’, Cohete, ’24.5.26, (https://www.elcohetealaluna.com/un-maleficio-imaginario/)
중국은 방산 수출을 경제적 이익과 군사적 영향력 확대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중요한 정책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전략적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음과 같이 기회를 포착하면서도 동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첫째, 페루, 에콰도르 등 국가의 노후화된 구소련 및 러시아제 무기체계를 미국산 무기체계로 교체, 공급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했다. 둘째, 앞서 언급한 중남미 국가들의 군사력 운용 방식을 고려했을 때 미국 무기체계는 고성능·고비용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셋째, 남미 국가들이 필요로 하는 시기에 미국이 적시에 무기체계를 공급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중남미 지역에서 한국의 방산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한미 동맹 기반 방산 수출 확대 전략’이 필요하다. 이 전략을 통해 한국은 중남미 지역에서 가성비 높은 무기체계를 신속히 공급하여 중남미 방산시장의 대 중국 의존도를 완화하려 하는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가 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미국의 정치적 지원을 확보하여 상호 이익이 극대화되는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 이 전략이 한국과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고 글로벌 포괄적 한미 동맹의 구체화에도 기여할 수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은 한미 동맹을 근간으로 남미에서 신뢰할 수 있는 방산 협력 파트너(한국)를 확보할 수 있다. 둘째, 미국 방산 능력을 보완하는 한국의 지원 하에 남미 국가들의 노후화된 무기체계 교체 수요를 적시 적절하게 대응하여 남미 국가들에게 무기체계의 NATO 표준화를 유지하도록 하면서 동시에 중국산 무기체계에 대한 가격 경쟁력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셋째, 남미 국가들이 선호하는 기술 이전 및 공동 생산 방식을 성공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한국의 방위산업 능력을 통하여 한국은 국익 창출을 극대화할 수 있다.
지금까지 중남미 지역에서 글로벌 전략 경쟁과 방산 수출 양상의 변화 속에서 한국의 대남미 방산 수출 확대 전략에 대해 살펴보았다. 중남미는 세계 4대 방산 수출 강국을 지향하는 한국에게 중요한 기회의 땅이지만, 생각만큼 진입과 확장이 쉬운 방산 시장은 아니다. 왜냐하면, 중남미 지역은 글로벌 전략 경쟁의 격전지이고 중국의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의 확대가 무서운 기세로 현실화되고 있는 지정학적인 요인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경쟁국 대비 우수한 최신예 무기체계를 적시에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강력한 한미 동맹이라는 지원군까지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중남미 방산 시장에서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한미 동맹을 잘 활용해야 하고, 이러한 협력은 한미 동맹의 확대에 기여하여 결국 한국의 안보 이익을 증대할 수 있으며, 방산 수출 증대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