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관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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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사우스가 경제적으로 부상하고, 미중 갈등이 고조되면서 외교 지평 확장 및 리스크 관리의 일환으로 글로벌 사우스와의 외교가 주목받고 있다. 특히 미국의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래 외교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각국의 외교 다변화 필요성 및 글로벌 사우스 협력의 당위성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는 북반구 저위도, 남반구에 위치한 개도국, 저개발국 130여 개국을 통칭하는데, 대체로 식민 역사 및 냉전 당시 비동맹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또한 이 지역은 신흥 시장이자 자원 공급처로서의 경제적 잠재력에 더하여, 강대국 간 반목 상황 속에서 운신의 폭을 넓히며 전략적 가치를 높이고 있다.
주재국 브라질은 중남미 대국이자 G20, BRICS 회원국으로서, 인도와 더불어 글로벌 사우스의 주요 핵심 국가이다. 특히 브라질의 외교는 글로벌 사우스 리더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글로벌 사우스 협력을 외교의 중요 요소로 포함하고 있다.
본 기고문에서는 브라질 정부, 학계의 발표 내용 및 주재국 외교단의 평가 등을 바탕으로 브라질의 글로벌 사우스 외교가 갖는 특징과 최근 동향을 알아보고, 브라질의 글로벌 사우스 외교가 한국 외교에 주는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브라질은 실용주의 및 중립외교 노선을 바탕으로, 중남미를 넘어 서방, 아프리카, 아시아와 두루 원만한 관계를 가지며, 모두와의 소통 채널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브라질은 BRICS의 일원이지만, 작년 6월 이탈리아 G7 정상회의를 포함하여 G7 회의에 자주 초청될 정도로 서방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한편, 저개발국의 대변자로서 UN, WTO 등 다자외교 계기에 글로벌 사우스 협력을 강조하여 왔다.
인도, 중국, 러시아 등 BRICS의 여타 주요국과 달리, 브라질은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으며, 군사적 야심을 드러내지 않고 외교 강국을 지향하면서, 세계 질서가 브라질의 위상을 반영하는 다극 체제로 개편되도록 하는 데 외교력을 집중하여 왔다. 특히, 2003~2011년에 이어 2023년 세 번째로 다시 집권한 브라질의 Luiz Inácio Lula da Silva(이하 ‘룰라’) 대통령은 다자주의 강화를 통하여 세계 질서의 민주화 및 글로벌 사우스 협력에 기여하는 브라질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노선은 브라질이 작년 G20, 올해 BRICS 및 COP30 의장국으로서 리더십을 부각하고, 우크라이나, 가자지구 등 지정학적 이슈에서 중립 입장에 기초하여 독자적 목소리를 내도록 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룰라 행정부는 UN, WTO, G20, BRICS 등 여러 다자 무대에서 거버넌스 개혁, 기후변화 대응, 경제 불평등 논의를 적극 주도하면서, 다자주의에 기여하는 브라질의 리더십을 드러내는 데 외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특히 브라질은 세계 안정을 위해 민주적이고 평등한 다극 질서 수립을 주창하면서, 신흥 대국의 부상 등 새로운 역학관계를 반영한 세계 거버넌스 개편을 강조하고, 인도, 일본, 독일과 함께 UN 안보리 상임이사국 확대를 일관되게 추진하여 왔다.
금년 2월 남아공 G20 외교장관회의에서 브라질의 마우로 비에이라(Mauro Vieira) 외교장관이 글로벌 역학관계를 반영하는 국제 거버넌스 개편을 강조하고, 2.25~26 브라질리아 개최 제1차 BRICS 셰르파회의에 참석한 룰라 대통령이 ‘일방주의는 전쟁과 불안정으로 이어지며 다자주의만이 우리의 유일한 길’이라고 언급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 따른 것이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 2기가 기후변화, 해외 원조 등 분야에서 기존 다자협력을 철회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빠진 다자협력의 공백을 브라질 등 여타 대국들이 협력하여 공동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도 브라질 조야에서 제기되고 있다.
BRICS는 브라질에게 글로벌 사우스 외교의 중요 수단인 것으로 평가되며, 브라질은 올해 BRICS 의장국으로서 오는 7월 리우 BRICS 정상회의 개최를 예정하고 있다.
브라질은 금년도 BRICS 우선순위로서 ▴무역투자, ▴보건, ▴인공지능, ▴기후변화, ▴거버넌스 5대 의제를 선정하고, 의제 전반에 걸쳐 글로벌 사우스 협력을 논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BRICS의 첫 공식 회의인 금년 2월 개최된 제1차 BRICS 셰르파 회의에서 브라질의 비에이라 외교장관은 기조연설을 통해 ‘헤게모니와 불평등에 대항하기 위해 다극 거버넌스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BRICS의 역할이 중요하며, BRICS의 회원국 확대를 환영한다’라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당초 BRICS 원년 멤버인 브라질은 그간 중국, 러시아와 달리 BRICS 회원국 확대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면서, BRICS가 반서구 체제로 비춰지지 않도록 내부적으로 견제하는 역할을 인도와 함께 수행하였던 걸로 알려진다. 또한 브라질로서는 BRICS 회원국 확대에 대해, 신흥 대국 회합이라는 BRICS의 초기 정체성을 퇴색시키고 브라질의 존재감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트럼프 2기 행정부의 America First 외교 여파가 국가들 사이 혼란을 고조시키는 상황에서, 브라질은 금년도 의장국으로서 BRICS의 역할과 확대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조정 중에 있는 것으로 관찰된다.
한편,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우려를 표명했었던 BRICS 차원의 별도 통화 창설 가능성에 대해, 의장국 브라질은 우선 BRICS 회원국 통화 간 상호 결제를 원활화하는 논의에 집중하고 있으며, BRICS 별도 통화 논의를 주도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달러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BRICS의 논의 동향은 계속 관찰해 나갈 필요가 있다.
세계적인 농축산 국가이자 세계의 허파 아마존을 보유한 브라질은 기후변화 대응 논의 주도 국가이며, 글로벌 사우스를 대변하여 저개발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지원하기 위한 선진국의 기여를 일관되게 강조하여 왔다. 금년 브라질은 11월 아마존 벨렝(Belém)에서 COP30(제30차 UN 기후변화 협약 당사국총회)를 개최할 예정이며, ▴기후 재원 확대, ▴공정한 에너지 전환 촉진, ▴원주민과 지역사회 참여 보장이 주요 의제가 될 것임을 발표한 바 있다.
한편,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파리협정 탈퇴 선언에 대해, 브라질의 안드레 두 라고(André do Lago) COP30 의장은 미국의 탈퇴가 기후 재원 조성 및 개도국의 에너지 전환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지만, 중국의 역할 및 국제협력 강화를 통하여 해결책을 적극 모색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이번 COP30은 아마존에서 개최되는 최초의 대규모 국제행사로서, 룰라 행정부는 아마존 보호에 대한 인식 제고 및 낙후 지역 개발을 목적으로 아마존 벨렝을 개최지로 선정하였다. 벨렝의 숙소, 공항 등 인프라 부족 우려에 대해, 룰라 대통령은 금년 2월 벨렝 시찰 계기에 이 지역에 대한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각국 대표단이 아마존 개최의 취지를 이해하고 벨렝 체류 도중 다소 불편함이 생겨도 선처하여 줄 것을 당부하였다.
브라질의 룰라 행정부는 소위 “능동적 비동맹(Active Non-Alignment)” 정책을 통하여 우크라이나, 가자 등 지정학적 이슈에 대해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적극적으로 국제 문제에 개입하여 왔다.
우선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브라질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비판하면서도, 서방의 무기 지원 요청을 거부하였고, 대 러시아 제재에도 동참하지 않는 등 중립적 입장을 취한 바 있다. 더 나아가 브라질은 2024년 5월 중국과 함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해결을 위한 평화클럽” 구성을 제안하여 중립국들의 중재를 통해 협상을 촉진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하였으나, 우크라이나의 거부로 진전을 보지는 못하였다.
가자지구에 대해 브라질은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하고 중립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2024년 2월 룰라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군사작전을 집단 학살이라고 비판하며 이를 홀로코스트에 비유하여 브라질-이스라엘 간 갈등을 야기하기도 하였다.
한편, 금년 2월 남아공 G20 외교장관회의에서 비에이라 외교장관은 우크라이나 등 모든 당사자가 포함된 우크라이나 평화적 해법 추구 및 가자지구에 대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자결권을 강조한 바 있다. 이는 금년 1월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종전 및 가자지구에 대한 미측 통제 발언을 브라질이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브라질은 민주주의, 인권, 법치 가치를 존중하는 수준이 높고,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으며 군사 대국을 지향하지 않는 점에서, BRICS 여타 국가에 비해 글로벌 사우스 리더이자 가교로서 인정받기에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거래를 우선하는 접근이 그간 미국이 타국에 요구해오던 도덕적 잣대의 수준을 낮추는 결과로 연결될 수 있으므로, 오히려 브라질의 옵션과 자율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상존한다.
다만, 브라질이 영토·인구·자원·총 GDP 등 외형적으로는 대국 요건을 갖췄으나, 개도국 경제이고 국방지출이 적은 점(GDP 1% 초반 수준)은 글로벌 사우스 리더로서의 국력을 실제로 투사하는 데는 한계로 작용한다는 견해도 있다.
브라질의 극심한 국내 정치 양극화로 인해 2026년 대선 결과에 따라 브라질 외교가 일관성을 상실할 가능성과 국내 심각한 빈부 격차로 인한 사회 발전 저해 상황도 리더십 발휘의 장애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어느 한 편에 서기를 거부하는 브라질의 중립 내지 실용주의 기조가 가치 기반 외교를 추구하는 서방, 특히 유럽이 보기에 브라질이 지속적으로 신뢰할 파트너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하는 요인이 되는 경우도 관찰된다.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에 지리적으로 가까운 미국의 영향력이 크다는 점도 브라질의 역내 리더십 발휘에 한계 요인으로 제기된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거래주의 외교 방식은 미국, 중국, 러시아 간 대결에 더하여, 우크라이나 종전 과정을 계기로 미국과 유럽 간 갈등까지 야기하는 등 외교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더욱 복잡해진 강대국 간 갈등 관계는 일부 국가들로 하여금 헷징 하거나 BRICS 진영으로 기울게 하는 유인을 초래하기도 한다.
한국이 향후 여러 사안에서 미, 중, 러, EU 사이에서 더욱 어려운 줄타기를 해야 하는 가능성에 대해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외교 불확실성에 대한 리스크 관리 방안으로서 글로벌 사우스 협력을 강조하는 견해가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한 글로벌 사우스를 경제적 차원을 넘어 전략적 협력 대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외교 시야를 넓혀야 하며, 이 과정에서 글로벌 사우스 협력 지평을 인도·태평양을 넘어 중남미까지 전략적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견해도 제기된다.
그간 우리나라의 동북아 이원 외교 전략이 아세안 및 인태 지역까지 확장되어 왔다면, 글로벌 사우스 외교 차원에서 우리 전략의 지평은 신장된 국력에 걸맞게 한국 반대편 중남미까지 뻗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브라질은 중남미를 넘어 세계 다극 체제를 떠받치는 주요 대국을 지향하며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는데, 우리 글로벌 사우스 외교의 관문으로서 브라질과의 관계를 전략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브라질과의 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양국 간 정상, 고위급 외교와 양국 간 실질 협력 강화를 전략적으로 병행 추진해야 할 것이다.
한-브 최고위급의 전략적 교류는 양국 간 심리적 거리를 좁히고, 양국 최대 현안인 시장 접근 문제 해소에 돌파구 마련의 계기가 될 것이며, 브라질이 강점을 가진 식량안보, 수소 에너지, 항공 우주, 광물 자원 등 분야에 우리의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실질 협력 도출에도 중요한 모멘텀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브라질은 젊은 인구가 풍부하나, 빈부 격차로 인해 잠재력을 가진 양질 인력이 교육과 일자리 기회를 갖지 못하는 사회 문제를 안고 있는데, 양국이 국제 산학 협력을 추진한다면 브라질의 백년지대계에 기여하는 협력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룰라 행정부는 아마존 펀드 조성, 빈곤퇴치 글로벌 연합 이니셔티브 주도 등 기후변화 대응 및 식량안보 분야에서 글로벌 차원의 리더십을 발휘하여 왔다.
브라질이 주도하는 다자 및 지역 차원의 리더십에 우리가 공동 제안자로 참여하거나, 선도적으로 호응하는 방식을 통하여 브라질과의 글로벌 사우스 공동 협력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브라질이 강점을 가진 식량안보, 친환경 에너지 분야 개발협력 사업에 우리의 IT 기술을 접목하여 중남미나 아프리카에 공동 진출하는 사업도 고려 가능하다.
한편, 브라질은 2003년 룰라 행정부 1기 출범 당시 남남 협력 및 글로벌 거버넌스 영향력 행사를 목적으로 인도, 남아공과 ‘IBSA Dialogue Forum’을 창설하였는데, 룰라 행정부는 BRICS 이후 존재감이 약화된 IBSA의 모멘텀을 살리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
IBSA 회원국인 브라질, 인도, 남아공 3개국은 민주주의, 인권, 법치주의 옹호 수준이 높고, 서방과도 우호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IBSA 협의체 창설 방안도 브라질과의 글로벌 사우스 공동 협력 방안으로 고려 가능할 것이다.
글로벌 사우스측은 서방의 ‘가치’ 강조 배경에 ‘이익’이 있다는 시각을 내 비춰 왔으며, 미국 및 EU의 이중 잣대 내지 위선적 외교 사례로서 反이민,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 전쟁, 자국법 역외적용 등을 제기해 왔다.
한편,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America First 정책은 거래주의에 기반한 것으로 평가되는데, 이에 따라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의 세계가 ‘민주 대 反민주’ 내지 ‘서방 대 反서방’ 프레임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새로운 다극 질서를 형성해 가고 있는 것으로 관찰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세계 질서가 ‘가치’보다는 ‘거래’를 강조하는 새로운 다극 질서 형성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게 ‘헷징’의 ‘명분’과 ‘공간’이 점점 더 유리하게 제공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견해도 있다.
우리나라도 굳건한 한미 동맹을 기반으로 하되, 새롭고 불확실한 다극 질서에 대응한 리스크 관리 방안으로서, 모두와의 소통을 열어놓는 글로벌 사우스의 헷징 노하우를 일정 수준 벤치마크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