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터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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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어 있는 거인, 중남미를 깨워라! -
우리의 대중남미 경제 협력에 대한 제언
라틴아메리카 협력센터 김은하 연구원
들어가며

세계 경제는 지금 그야말로 격동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정책, 미-중 전략 경쟁의 심화,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은 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도 커다란 도전 과제를 던지고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 등 일부 국가에 편중된 우리의 교역구조는 대외 변수에 구조적으로 취약한 상황으로, 갈수록 불확실해지는 대외 환경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경제 파트너를 모색하고 보다 다변화된 교역구조를 구축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그 중심에 조용히 부상하고 있는 지역이 있다. 바로 중남미다. 우리나라는 칠레, 페루, 콜롬비아 및 중미 6개국1)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며 교역 기반을 다져왔고, 멕시코, 브라질과 같은 거대 시장과도 FTA 또는 무역동반자협정(TPA) 체결을 추진하며 협력의 외연을 넓히고자 노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광물·에너지뿐만 아니라 디지털, 인프라, 녹색산업 등 신산업으로도 협력 분야가 확장되면서, 중남미는 우리의 ‘새로운 성장 파트너’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에 본 고는 변화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한-중남미 경제 협력이 걸어온 길을 되짚고, 우리의 새로운 경제 협력 강화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남미 시장 진출의 전략적 시사점을 모색하고자 한다.

1) 코스타리카,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온두라스, 파나마, 과테말라

2024년 우리의 대중남미 교역과 투자 현황

2024년은 한-중남미 교역에 있어 중요한 분기점이 된 해다. 대중남미 수출 290억 달러, 수입 277억 달러를 기록하며 총 교역 규모 567억 달러를 달성했고, 무역수지에서도 13억 달러의 흑자를 내며 2020년 코로나19 발발 이후 4년간 이어지던 적자 기조에서 벗어났다.

사실 팬데믹이라는 일시적 예외를 제외하면, 중남미는 2019년까지 30년 이상 꾸준히 무역 흑자를 기록해 온 수출 효자 시장이다. 비록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시아, 북미 등에 밀리지만, 우리 수출이 부진할 때 상대적으로 ‘가뭄에 단비’와 같은 역할을 해왔다.2) 지난해에도 글로벌 고금리·고물가 지속, 러-우 전쟁, 중동사태 등 녹록지 않은 대외 수출 여건 속에서 중남미 수출은 17.8% 증가해 우리의 주요 9대 수출시장 중에서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3) 교역 규모도 꾸준히 확대되어 2000년 127억 달러에서 2024년 567억 달러로 4.5배 성장했으며, 대중남미 투자(FDI)4)도 2000년 14억 달러에서 지난해 146억 4천만 달러를 돌파하며 10배 이상 확대되었다. 현재 중남미는 우리나라 전체 해외직접투자의 14.4%를 차지하며 아시아, 북미, 유럽에 이어 제4의 투자 대상 지역으로 자리매김했다.

2) 2010년에는 중남미에서만 216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해 당시 우리나라 전체 무역흑자(412억 달러)의 절반 이상을 중남미가 차지했을 정도로 절대적인 비중을 보이기도 했다.
3) 주요 9대 시장: 미국(10.5%↑)·중국(6.6%↑)·아세안(4.5%↑)·EU(0.2%↓)·일본(2.0%↑)·중남미(17.8%↑)·인도(4.2%↑)·중동(4.8%↑)·CIS(8.9%↓)
4) 한국수출입은행, 신고금액 기준

중남미와의 교역은 우리나라가 자원 및 원자재를 수입하고 공산품을 수출하는 상호보완적인 구조이다. 주요 5대 교역 품목으로 우리는 선박(10.9%), 자동차부품(10.7%), 자동차(9.6%), 철강판(8.9%), 반도체(6.1%) 등 대기업 생산 제품을 수출하고, 중남미로부터 원유(15.2%), 식물성 물질(9.4%), 동광(7.8%), 동제품(7.4%), 금속광물(6.7%) 등 원료 및 광물 중심의 원자재를 수입하고 있다. 대중남미 투자 역시 대표적인 조세회피처인 케이만군도에 투자된 금액을 제외하면, 중남미의 자원과 노동력을 활용한 광업, 제조업에 집중되어 있으며, 제조업 중에서도 자동차(56%)와 금속(14.5%)에 대한 편중도가 높다.

한편, 2000년대 중반부터 우리 기업들의 대중남미 직접투자가 확대되면서 현지 생산에 필요한 중간재 수출 비중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2010년 39.8%→2024년5) 65.5%). 중간재는 반도체, 자동차부품, 이차전지, 철강 등 다른 제품 생산을 위해 투입되는 재화로, 최근 5년간 우리의 대중남미 수출 통계에서도 중간재 수출은 늘 65%대 이상을 차지했다. 중간재 수출의 확대가 대중남미 수출 증가에 막대한 기여를 했다는 뜻이다. 한편으로는 한국이 중남미의 제조 산업에 필수적인 부품과 원자재를 공급하는 핵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대중남미 수출 확대는 양 지역이 글로벌 공급망에서 ‘굿 파트너’일 뿐만 아니라 한국이 수출을 통해 중남미 산업 성장에 기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해석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5) 2024년 대중남미 수출 구성비: 일차산품 0.2%, 소비재 10.9%, 중간재 65.5%, 자본재 23.4% (※ 생산과정에 필요한 중간재와 자본재 비중이 약 89%에 달한다)

중남미 진출 40년, 권역별 특징

우리 기업의 대중남미 진출은 1980년대 중반 이후 중남미 국가들의 민주화와 개혁 및 개방 정책에 힘입어 본격화되었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중남미 대부분의 국가는 외국인 직접투자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선진국의 자본이 자국의 산업을 지배한다.’는 우려 때문에6) 주로 해외로부터의 차관에 의존한 경제 개발에 주력하였고, 그 결과 대외 채무 급증에 따른 경제 침체, 즉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릴만한 저성장을 겪게 되었다.7) 결국, 중남미는 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하였고, 이에 따른 정책 권고로 민영화, 금융 자유화, 긴축 재정 등을 시행하면서, 특히 국내 자본 부족 해소와 기술 도입을 위해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와 경제 개방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6) 우리 기업의 중남미 투자 현황과 진출 전략(현대경제연구원, 1997.9)
7) 1970년대 오일쇼크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자, 일차산품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가진 중남미 국가들은 이를 성장 기회로 삼아 외채를 대규모 유입했다. 그러나 자본축적 없이 외자에 의존한 상태에서 1980년대 초 원자재 가격이 급락하고,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이 고금리 정책을 취하자 중남미 국가들의 채무 상환 부담은 급격히 커졌다. 그 결과, 물가 폭등, 빈곤층 증가, 실업률 상승 등 복합적인 경제위기가 심화되었으며, 이 시기는 흔히 ‘잃어버린 10년(Lost decade)’으로 불린다. 당시 중남미 외채는 1975년 750억 달러에서 1983년에는 3,150억 달러 이상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멕시코는 GDP의 50%에 달하기도 했다(Institute of Latin American Studies, The Debt Crisis in Latin America, p. 69)

이러한 배경 속에서 1980년대 우리 기업들은 정부의 투자 승인 아래 미국 수출을 위한 제조업 중심의 대중남미 투자를 전개했다.8) 중미 및 카리브 국가에는 섬유·봉제 공장을 설립하였고, 멕시코와 브라질·아르헨티나 등 일부 남미 국가에는 미국 및 중남미 역내 시장을 겨냥한 전기·전자 부품 등의 제조업 투자를 시행했다. 특히 중남미 경제가 글로벌 원자재 가격 상승에 힘입어 호황을 누리던 2000년대 초~2015년에는 우리의 대중남미 투자도 본격 확대되어, 신규 법인 수와 투자 금액 모두 증가하였고, ▴대기업 주도 하 중소기업의 동반 진출, ▴투자 업종 다변화와 고도화, ▴서비스 업종에 대한 활발한 투자, ▴FTA 참여와 글로벌 가치사슬 활용형 투자 확대, ▴현지 내수시장 개척 등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아울러, 이러한 진출 양상은 중남미 내 주요 지역 블록별로도 상이하게 전개되었다. 아래 표는 KIEP(2024)에서 분석한 우리 기업의 대중남미 진출 특징을 크게 세 개의 권역, 즉, 태평양동맹, 메르코수르, 중미통합체제로 구분하여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다. 지역별 환경에 따라 우리 기업의 진출 전략과 투자 업종이 어떻게 차별화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9)

8) 일부 투자는 남미 내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제조업과 한국 수출을 목적으로 하는 수산업, 임업에서도 이루어졌다.
9) 중남미를 단일 국가처럼 인식하거나, 한국과의 관계를 단순한 일차산업 중심의 교역·투자에만 국한해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중남미는 33개국이 다양한 특성을 가진 통합되고 분화된 시장이라는 점에서 지역별로 또는 시기별로 차별화된 진출 양상이 나타난다. 보다 자세한 분석은 KIEP의 보고서(‘한국의 대중남미 통상환경 평가와 정책 과제(2024)’)를 참고

< 참고: 우리 기업의 대중남미 권역별 진출 특징 >
태평양동맹(Pacific Alliance):
개방성과 미국 시장 연결성
멕시코, 칠레, 콜롬비아, 페루는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시장 구조와 회원국 모두 미국과의 FTA 체결로 인해, 한국 기업의 대미 수출형 제조업 투자처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멕시코는 USMCA(구 NAFTA)에 참여하고 있어, 자동차, 전기·전자, 철강 등 500여 개의 우리 기업이 진출해 있으며, 대기업 중심의 생산기지로 기능한다. 미국 수출을 염두에 둔 배터리, 전기차 등 고부가가치 제조업이 대표적이다. 반면 콜롬비아, 페루, 칠레는 광물 개발 및 현지 소비시장을 겨냥한 투자처로 활용되고 있다. 미-중 갈등에 따른 공급망 재편 영향으로, 이 권역에 대한 우리의 투자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메르코수르(MERCOSUR):
내수시장 중심의 보호주의 시장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는 EU와 유사한 공동시장을 지향하지만, 보호무역 성향이 강하고 관세·비관세 장벽이 높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은 현지 내수시장 판매를 위한 제조업에 집중해 왔다. 대표적으로 브라질에서는 자동차, 전기·전자, 철강 산업 중심의 투자가 이루어지며, 최근에는 에탄올과 전기를 동시 활용하는 하이브리드 차량에 대한 투자도 증가하고 있다. 브라질 경제가 최근 안정세를 보이면서 이 지역에 대한 투자도 다시 활기를 되찾고 있다. 메르코수르에 대한 한국의 투자 중 92%가 대기업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중소기업의 동반 진출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중미통합체제(SICA):
물류 허브이자 섬유 봉제의 기반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파나마는 경제 규모는 작지만, 미국과의 CAFTA-DR 협정으로 대미 무관세 수출이 가능한 지역이다. 1980~90년대에는 섬유·봉제업 중심의 중소기업 투자처로 각광받았으나, NAFTA 발효와 산업구조 변화로 점차 그 중요성이 감소했다. 현재는 파나마를 중심으로 한 운수·물류 및 사업 서비스 분야가 주요 투자처로 부상하고 있다. 파나마는 북·남미를 잇는 물류 허브이자, 다국적 기업 유치를 위한 SEM 제도(법인세 감면, 비자 혜택 등)를 운영하며, 중남미 본부 설립지로 각광받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의 SICA 내 운수·창고업 및 서비스 분야 투자가 중미 전체 투자의 60.7%에 이른다.
* 자료: KIEP 보고서(2024)를 참고하여 저자 재구성

이처럼 교역·투자 확대에 힘입어 중남미는 우리 경제의 주요 파트너로 성장했으며, 최근에는 자동차, 배터리, 의약품 등 핵심 산업을 중심으로 한-중남미 경제 협력은 강화되는 추세다.

글로벌 불확실성 속 더욱 각광받는 ‘중남미’

지난 40여 년간 한-중남미 경제 관계는 비약적으로 발전해 왔지만, 중남미의 세계시장 점유율이나 GDP 비중과 비교하면, 양측 간 경제 협력의 질적·전략적 깊이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평가가 존재한다. 이는 중남미가 교역구조 다변화의 대안으로 본격적으로 거론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그 중요성에 비해 중남미 수출 확대에 대한 체계성과 전략이 부족했고, 교역 품목 역시 자원, 농산물, 일부 제조업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한-중남미 경제 관계는 단순한 무역 확대 이상으로의 발전은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이러한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의 각종 관세부과 정책과 이에 대한 중국의 맞대응으로 우리의 1위(중국)·2위(미국) 수출시장에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우리 정부는 아세안, 중동, 중앙亞, 중남미, 아프리카 등 글로벌 사우스 신흥시장과의 경제 협력을 강화해 우리의 수출·생산기지·핵심광물 공급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이들과의 통상 네트워크를 확산·고도화하고, 중장기적으로는 포괄적 경제 협력 채널을 구축해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겠다는 게 목표다. 앞서 우리 정부는 2022년부터 중남미를 우리의 ‘3대 전략시장(중동·중남미·EU)’으로 설정하고10), ▴안정적 수출 증가세 지속을 위한 FTA 및 공급망 협력 강화, ▴인프라·방산·원전과 같은 신성장 동력 모색에 주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남미와의 전략적 협력이야말로 한국이 생존과 성장을 동시에 모색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강조한다.11)

10) 대통령 주재 「제1차 수출전략회의」 개최(산업통상자원부)
11) "미국의 고율 관세정책으로 중남미 전략적 중요성 확대"(월간 통상, 2025.05.13)

이제는 한국과 중남미 간 경제 협력의 미래를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중남미는 매력적인 시장이고 한국과의 관계도 점차 깊어지고 있지만, 과연 이 지역의 매력은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을까? 어떠한 시장 기회가 존재하는가?


① 공급망에 이은 新 생산 거점 가능성

트럼프 발 관세 폭탄 이후 중남미가 새삼 관심을 받는 이유는 트럼프 시대 대안적 글로벌 생산기지로의 가능성이다. 중국, 베트남 등 기존 세계의 생산공장 역할을 해왔던 곳들이 대거 큰 폭의 관세를 부과받아 이곳에 둥지를 틀었던 다국적 기업들은 새로운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미국에 생산기지를 만들면 되지만 모든 글로벌 기업들이 그렇게 할 수 없음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에 상대적으로 관세 부과율이 낮은 국가나 지리적으로 미국과 가까운 곳들이 대안으로 거론되는데, 주로 중남미 국가들이 많다. 일례로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등이 10%대의 비교적 낮은 상호관세를 부과받은 점은 새 생산기지를 찾는 기업들에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특히 이들 국가는 미국과의 FTA나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DR) 등을 통해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확보하고 있으며, 낮은 생산비용과 풍부한 노동력도 큰 장점이다.

실제로 미국 CNBC 방송이 최근 주요 공급망 기업 38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12) 에서 응답자의 61%는 공급망을 미국으로 다시 이전하기보다는 관세가 낮은 다른 국가로 이전하는 것이 더 비용 효율적일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리쇼어링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로는 ‘비용(74%)’이었고, 그 외 ‘숙련된 노동력을 구하기 어렵다’는 응답도 21%에 달했다. 비록 트럼프 행정부가 리쇼어링 기업에 세금 감면을 약속했지만, 이는 생산시설 이전 결정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으로 공장을 옮길 경우 비용이 현재의 두 배가 될 것이라는 응답이 18%, 두 배 이상으로 뛸 것이라는 응답은 47%에 달했다. 더불어, 공장을 미국으로 이전하더라도 근로자보다는 자동화 공정을 선호한다는 응답도 81%에 달했다.

12) '미국 안돌아갈래'…미 기업 61% "저관세 국가로 공장 이전"(연합뉴스, 2025.04.15) ※ 설문조사는 미국 상공회의소, 전미제조업협회, 전미소매업연맹, 미국 의류·신발협회, 미국 신발 유통 및 소매업 협회, 공급망 관리 전문가 협의회, ITS 로지스틱스 회원사 등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 온두라스, 과테말라, 니카라과 등 중미 대부분의 국가의 제조업 평균 임금은 시간당 1.50~2.50달러로, 중국 평균 임금(4달러) 보다도 훨씬 낮으며, 미국으로의 운송 시간 역시 짧다. 세계은행(WB)이 각국의 물류 효율성과 경쟁력을 평가해 격년으로 발표하는 ‘물류성과지수(LPI)’에 따르면, 멕시코, 온두라스, 코스타리카, 파나마, 콜롬비아, 브라질, 칠레, 페루, 우루과이 등 중남미 국가들의 물류지수는 세계 141개국에서 중간값 이상을 기록하고 있으며, 동시에 미국과의 지리적 근접성이라는 중요한 차별점을 가지고 있다.

이미 관련 흐름은 나타나고 있다. 베트남 하이퐁에 생산 거점을 둔 LG전자의 사례다. 사실 이번 트럼프 발 관세 폭탄에 가장 치명타가 큰 곳이 아세안 지역이다. LG전자를 포함해 여러 다국적 기업들은 그동안 기업들의 생산기지를 중국과 아세안에 동시에 두는 ‘차이나 플러스 원(China+1)’ 전략을 구사해왔는데, 관세 폭탄으로 이 같은 전략을 더 이상 고수할 수 없게 됐다. 아세안 지역의 고관세로 더 이상 별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대미 수출 전진 기지 격으로 활용 돼왔던 베트남 등 아세안 각국이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 나서고는 있지만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 내기에는 상황이 녹록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에 LG전자의 경우 베트남이 트럼프와의 관세 협상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북미 시장 공략과 관련해 베트남 하이퐁 공장 대신 현재 이미 진출해 있는 멕시코 공장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멕시코 역시 관세로 인한 충격이 있지만 그나마 사정이 낫다고 판단해 이곳의 생산량을 늘려 북미 수출 관련 대응을 하겠다는 것이다.13)

13) [‘오락가락’ 트럼프 관세 전쟁 Part IV] 대안으로 뜨는 ‘글로벌 사우스’(매일경제, 2025.05.02)

LG전자는 브라질 남부 파젠다히우그란데 지역에도 내년 준공을 목표로 신규 생산기지를 건설 중이다. 상당수 글로벌 기업도 이 같은 전략이 그나마 현실적 대안이라고 보고 관련 추이를 살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의류업체 한세실업과 세아상역 등은 관세 부과율이 10%인 일부 중미 국가 공장에서 생산 비중을 늘리는 방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14) LS전선은 멕시코 현지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케레타로주에 배터리 부품 및 전력기기 공장을 건설 중인데, 관세가 부과되면 현지 파트너사가 이를 부담하기로 했다. LS전선 관계자는 “전력 제품은 현지 수요도 충분해 내수시장으로 전환하는 선택지도 고려 중”이라고 설명했다.

14) ‘엎친 데 덮친’ 車·철강·가전[미증유 관세 충격…韓 주요 산업 기상도] (매경 ECONOMY, 2025.04.14)


② 젊은 인구구조로 노동력 풍부, 소비 여력도 높은 탄탄한 내수시장

공급망과 관세 이슈뿐 아니라, 중남미는 지속적으로 국제 사회에서 ‘신시장’으로 관심을 받아왔다. 고령화가 가속화되는 선진국에 비해 중남미는 젊은 경제 인구가 많아 역동성도 크고 성장 잠재력도 강하기 때문이다. 특히 중남미 지역이 ‘젊다’라는 점은 상당한 장점이다. 대다수 선진국의 고질적 문제인 노동력 부족 문제에서도 자유롭고, AI·디지털 경제 등 최신 산업 트렌드에 빠르게 반응해 관련 시장을 이끌어 가기 때문이다.

현재 중남미 인구는 약 6.6억 명으로 전 세계 인구의 8.7%를 차지한다. 국내총생산은 7.1조 달러(약 9,642조 원)나 된다.15) 2023년 중남미의 합계출산율은 1.8명이며 유엔(ECLAC)은 2053년이면 중남미 인구는 7.4억 명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노동 인구도 신흥 지역 가운데서도 젊다. 유엔에 따르면 중남미의 평균 노동 인구의 중위 연령은 31세로, 우리나라(46세)뿐 아니라 트럼프 발 관세 폭탄 이전 중국(38세)의 대안으로 각광 받았던 베트남(32.5세)과 비교해서도 더 젊은 것이다. 특히 생산가능 인구인 15~64세 비중이 전체 인구의 67.6%를 차지하고 있어 인구 구조에 기반한 탄탄한 소비시장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

생산인구가 늘어갈수록 소비 여력도 커지며 소비시장으로서의 잠재력도 풍부하다. 2024년 중남미의 1인당 GDP는 10,797달러로 한국(33,121달러) 대비 3분의 1 수준에 그치지만, 2023년(9,715달러) 대비 11% 급증했으며, 부양 인구에 비해 생산인구가 많은 상황으로, 소비와 생산의 전망이 낙관적이다. 게다가 중남미는 각 지역별로 형성된 권역별 경제 공동체를 유지하면서, 자유무역에 바탕을 둔 성장 기조를 견지하고 있다는 점도 트럼프 시대의 대안으로서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15) 세계은행, 2023년 기준

③ 역동적인 자유무역 네트워크- 중남미 9개국과 FTA 체결

경제 영토 측면에서도 우리나라는 중남미 시장 진출에 있어 비교적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 세계 59개국과 FTA를 발효해 싱가포르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은 FTA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으며, 중남미 지역만 해도 총 9개국과 FTA를 체결한 상태다. 이는 주변 경쟁국인 중국(5개국), 일본(3개국)에 비해 우월한 조건으로, 우리 기업들이 중남미 시장에 무관세혜택을 기반으로 보다 용이하게 진입할 수 있도록 한다.

아직까지 가격 경쟁력이 주요 비교 우위로 작용하는 중남미 시장 특성상, 이러한 무관세 혜택은 비용 경쟁력 측면에서 결정적 우위로 작용한다. 이에 따라 단순한 수출 확대는 물론, 조달시장 진출, 인프라 개발 참여 등 다양한 후속 경제 협력 기회를 선점할 수 있는 전략적 기반도 마련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FTA를 넘어 무역투자촉진프레임워크(TIPF), 경제동반자협정(EPA) 등 다양한 형태의 협력채널16)을 통해 산업, 에너지, 디지털 경제 등 미래 성장 분야에서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중남미 19개국과 체결된 양자 투자보장협정(BIT)은 이 지역의 정치·경제적 리스크를 일부 상쇄함으로써 우리 기업의 안정적 진출 여건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특히 앞서 언급한 ①공급망 재편 흐름과 ②젊고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 내수시장 성장 가능성을 고려할 때, 이러한 제도적 기반은 중남미가 트럼프 시대의 관세 충격을 돌파할 수 있는 대안적 글로벌 생산기지로 부상하는 데 있어 한국 기업에게 중요한 기회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16) 무역투자촉진프레임워크는(TIPF)는 FTA의 핵심인 관세양허를 배제하고 통상·산업·에너지 분야 협력 모멘텀 확보와 우리 기업의 시장 참여 기회 확대를 위한 비구속적 협력 업무협약(MOU)이다. 경제동반자협정(EPA)은 관세철폐·인하 외에 공급망, 디지털, 청정경제 등 폭넓은 협력을 포괄하는 협정으로 투자와 서비스, 지식재산, 인적 자원 이동의 자유까지 포괄하는 협정이다.
※ TIPF 체결 완료: 도미니카(공), 브라질, 파라과이 / 협상 중: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④ 풍부한 자원은 여전히 매력적

공급망 이슈에서 비롯된 중남미의 장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이 지역의 풍부한 자원은 여전히 경쟁력을 자랑한다. 먼저 중남미의 장점은 광물 자원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특히 배터리 핵심 원료인 리튬은 세계 매장량의 60%가 중남미에 있다. 이 외에 구리, 은, 니오븀 매장도 세계 1위다. 2025.2월 발간된 미국 지질조사국(USGS)의 ‘2025년 광물 통계 보고서(Mineral Commodity Summaries 2025)’에 따르면 중남미 지역에 매장되어 있는 41개 광물 중 전 세계 생산량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광물은 8개로, 리튬, 구리, 요오드, 몰리브덴, 니오븀, 아연, 은, 주석 등 첨단 산업에 필수적인 주요 광물 자원이 중남미에 집중되어 있다.

< 공급망 관련 중남미 주요 광물 보유 현황 >

광물 매장량(단위: 톤) 생산량(단위: 톤)
전 세계 국가 매장량 세계 순위 전 세계 국가 매장량 세계 순위
니오븀 1,700만 브라질(1,600만) 1 11만 브라질(10만) 1
리튬 3,000만 칠레(930만)
아르헨티나(400만)
브라질(39만)
1
3
8
24만 칠레(4.9만)
아르헨티나(1.8만)
브라질(1만)
2
5
6
구리 9.8억 칠레(1.9억)
페루(1억)
멕시코(0.5억)
1
2
6
2,300만 칠레(530만)
페루(260만)
멕시코(70만)
1
3
10
몰리브덴 1,500만 페루(190만)
칠레(140만)
멕시코(13만)
3
4
8
26만 칠레(4.1만)
페루(3.8만)
멕시코(1.7만)
2
3
5
니켈 1.3억 브라질(1,600만) 3 370만 브라질(7.7만) 8
아연 2.3억 페루(0.2억)
멕시코(0.14억)
볼리비아(0.05억)
4
5
9
1,200만 페루(130만)
멕시코(70만)
볼리비아(51만)
2
6
7
희토류 9,000만 브라질(2,100만) 2 39만 브라질(20) 12
망간 17억 브라질(2.7억) 4 2,000만 브라질(59만) 7
코발트 1,100만 쿠바(50만) 4 29만 쿠바(3,500) 7
마그네슘 77억 브라질(2억) 6 2,200만 브라질(180만) 3
* 자료: USGS Mineral Commodity Summaries 2025

식량 안보 측면에서도 중남미는 핵심적인 시장이다. 중남미는 전 세계 소고기 생산의 23%, 수출의 22%를 차지하며, 닭고기 생산은 42%에 달한다(FAO). 대두는 전 세계 생산량의 55%, 옥수수는 38%, 바나나는 80%를 중남미가 공급하고 있다(美 농무부(USDA) 기준). 반면, 한국은 식량 자급률이 상당히 떨어져 OECD 회원국 중 세계식량안보지수(GFSI)가 최하위권이다. 연간 1,700만 톤의 곡물을 수입하는 세계 7위의 곡물 수입국이며, 쌀을 제외하고는 밀, 옥수수, 콩, 사료용 곡물 등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으로, 국제 식량 가격이 요동치면 덩달아 휘청거릴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수치는 중남미가 국제 식량 및 자원 공급망에서 핵심 공급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원 안정성과 식량 안보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세계 질서 속에서, 중남미의 전략적 가치는 앞으로도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결론: 전략적 접근 필요

사실 우리의 경우 지금과 같은 경제 위기 상황이 아니더라도 중남미는 반드시 챙겨야 할 대상이다. 그동안 지리적 거리, 제한된 역사적 교류, 문화적 이질성 등으로 인해 중남미는 상대적으로 우리의 관심 밖에 머물러 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한 시장 진출을 넘어, 글로벌 협력 파트너로서 지속 가능하고 구조적인 협력 기반을 구축해야 할 시점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장기적인 전략 틀 하에서 대중남미 경제 협력을 추진하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필요성이 제기되는 분야를 중심으로 협력을 추진해 온 경향이 있다. 이러한 접근은 유연성과 단기적 대응력 측면에서는 장점이 있겠으나, 한국의 존재감을 확고히 할 수 있는 대표 협력 분야와 핵심 사업이 부족하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이제 앞으로의 한-중남미 협력은 양 지역 협력이 지향하는 가치와 방향성을 분명히 하고, 중남미의 구조적 과제 해결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면서도 한국의 기술력과 정책 경험을 살릴 수 있는 대표 협력 분야를 발굴·추진함으로써 협력의 가시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나아가, 우리 기업들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중남미 국가들과의 비즈니스 활동을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외교부는 범정부 차원의 경제안보 외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일환으로 라틴아메리카 협력센터는 우리 기업 및 국민들의 대중남미 진출 지원을 돕고, 중남미 시장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중남미 현지 경제·산업 동향 제공, ▴주요 사업 입찰정보 공유, ▴보고서 및 자료 발간, ▴진출 기업 간담회 개최 등 정보 제공에 주력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중남미를 향한 우리의 접근 방식을 ‘단기적 대응’에서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전환할 적기다. 위기(危機)라는 단어에는 ‘위험’과 ‘기회’라는 의미가 동시에 내포돼 있다. 불확실한 국제정세 속에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길은, 결국 철저한 준비와 치밀한 전략에서 비롯된다.

(작성일: 2025.6.10.)




[참고자료]

각광받는 아세안 시장, 어떻게 공략할까 (아산정책연구원, 2024.03.06.)
“미국의 고율관세정책으로 중남미 전략적 중요성 확대” (월간 통상, 2025.05.13.)
‘미국 안돌아갈래’…미 기업 61% “저관세 국가로 공장 이전” (연합뉴스, 2025.04.15.)
산업硏 “韓 대미 흑자, 美 제조업 성장 덕…양국 산업간 연계 심화” (아주경제, 2025.04.13.)
‘엎친 데 덮친’車·철강·가전 [미증유 관세 충격…韓 주요 산업 기상도] (매경 Economy, 2025.04.14.)
우리 기업의 중남미 투자 현황과 진출 전략 (현대경제연구원, 1997.9.)
[2025 수출 기상도] 중동·중남미·중앙亞 삼총사에 주목하라...수출 다변화 바로미터 (아주경제, 2025.01.09.)
한국의 대중남미 통상환경 평가와 정책 과제 (KIEP 연구보고서, 2024.12.30.)
FTA 외에도… 정부, 맞춤형 협력 'TIPF·EPA'로 경제 영토 넓혀 (조선일보, 2024.04.24.)
LG전자, 트럼프 관세 위협에도 멕시코 생산 유지...TV 생산량 127% 확대 계획 (글로벌이코노믹, 2025.03.14.)
미국 농무부(USDA) 통계 (https://www.fas.usda.gov/data/production/commodity/0711100)
한국 수출입은행 해외직접투자 통계 (https://stats.koreaexim.go.kr/main.do)
한국무역협회 무역 통계 (https://stat.kita.net/)How US tariffs could impact Latin America (S&P Global, 2025.4.16.)
Latin America amidst a trade war: Are new opportunities on the horizon? (J.P.Morgan, 2025.4.29.)
Latin America’s Food Paradox in Numbers (Americas Quarterly, 2024.10.16.)
Mineral Commodity Summaries 2025 (USGS, 2025.1.)
50.8% of Latin America's Population is Part of the Labor Force, Projected to Increase to 54.6% by 2050 (ECLAC, 2024.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