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관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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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동맹(Pacific Alliance, PA)은 우리나라에서 아직 생소한 용어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군사동맹을 일컫는 말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런 것이 있었나?’ 고백건대, 필자가 그러했다. PA는 국토가 태평양과 접하고 있는 중남미 4개국(멕시코, 칠레, 페루, 콜롬비아)으로 구성된 경제 통합 공동체이다. PA는 GDP 기준 세계에서 8번째로 규모가 크고 2억 3천만 명 이상의 인구가 살고 있는 경제블록이며, 회원국의 20~30대 비율이 평균 30%를 상회할 정도로 젊고 역동적인 경제공동체이다. 이처럼 성장 잠재력이 큰 PA는 우리에게 매력적인 시장이다.
2011년 4개국 정상은 페루 리마에서 ‘PA 설립을 위한 정상 선언’을 발표했다. 이듬해 ‘PA 기본협정’이 체결되고, 2015년 7월 20일 발효되면서 PA가 정식 출범했다. ‘기본협정’ 제3조 1항은 설립 목적을 세 가지로 밝히고 있다. 첫째, 재화, 서비스, 자본, 인간의 자유로운 이동을 위한 경제 통합을 촉진한다. 둘째, 회원국의 복지 향상, 사회경제적 불균형 해소, 구성원 간 사회적 포용 등을 달성한다. 셋째,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여타 지역과의 정치적 협력 및 경제 통합의 발판을 마련한다.
특히, 세 번째 목표에 따라 PA는 현재 전 세계 64개국을 옵서버(observer)로 두고 있다. 유럽, 아프리카, 중남미와 더불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국가 다수가 옵서버로 참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2013년부터 옵서버로 활동하고 있다. PA는 상설 사무국 없이 회원국이 1년마다 의장국을 번갈아 맡아 운영한다. 실무회의, 각료회의, 정상회의를 통해 의제 선정과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디지털, 기업, 문화, 교육, 개발, 환경, 노동, 젠더 등 주제별 워크숍도 수시로 개최된다.
PA는 옵서버 활동을 넘어 실질적 무역 심화 효과를 낼 수 있는 준회원국(associate state) 지위를 2017년 신설하고, 역외 4개국(싱가포르,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을 1차 협상국으로 선정했다. PA를 단일 상대로 협상하여 FTA 협정을 체결하면 준회원국 지위를 얻게 된다. 다만, 정회원국과 달리 의사결정권은 없다.
1차 협상국 중 싱가포르가 앞서갔다. 싱가포르는 2021년 7월 PA와 FTA 협상을 마무리하고 이듬해 1월 FTA를 체결했다. 이후 각국은 국내법상 조약 비준 절차에 들어갔다. 싱가포르는 2022년 7월, 페루는 2023년 2월, 칠레는 2025년 3월에 각각 비준했다. 협정 제25조1)에 따라 싱가포르와 칠레·페루 사이에 지난 5월 3일부터 FTA가 발효됐다. 한편, 멕시코와 콜롬비아는 국내 비준 절차를 조속히 완료하겠다고 약속했다.
1) 싱가포르와 2개 이상의 서명국이 비준한 날로부터 60일 이후 발효
우리나라도 준회원국 가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는 멕시코를 제외한 칠레, 페루, 콜롬비아와 양자 FTA를 이미 체결했다. 준회원국 가입은 멕시코와는 FTA 신규 체결 효과를 발생시키고 여타 회원국과는 FTA 개선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PA 준회원국 가입을 발판으로 우리 기업이 중남미 시장에 더욱 활발히 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2018년 PA에 준회원국 가입을 신청했고, 나아가 2022년 1월 제16차 PA 정상회의 공동선언문2)에 “2022년 상반기 중 한국과 협상을 개시한다”는 문구 삽입을 이끌어냈다. 이는 1차 협상국과 협상이 완료돼야 다른 국가와 협상을 시작한다는 기존 입장에 변화를 가져온 성과였다. 이에 따라 2022년 6월 23일 협상 개시를 위한 양측 간 첫 회의가 하이브리드로 개최됐다.3)
2) https://alianzapacifico.net/en/download/declaracion-de-bahia-malaga-buenaventura/
3) https://alianzapacifico.net/en/pacific-alliance-south-korea-negotiations-begin/
그러나 PA가 안팎으로 위기를 겪으며 협상이 지연됐다. 우선 외부 위기는 COVID-19의 전 세계적 확산이었다. 내부 위기는 멕시코와 페루의 외교적 갈등이었다. 2022년 페드로 카스티요(Pedro Castillo) 페루 대통령 탄핵이 발단이었다. 2023년 5월 로페즈 오브라도르(López Obrador, AMLO) 멕시코 대통령은 디나 볼루아르테(Dina Boluarte) 페루 부통령의 대통령직 승계를 ‘찬탈’이라고 비난하며 PA 의장국 지위 이전을 거부했다.
다행히 칠레의 중재로 위기를 넘겼다. 멕시코가 칠레에 의장국을 넘기고(2023.6월), 칠레가 이를 다시 페루에 의장국을 넘기는(2023.8월) 타협안이 받아들여졌다. 이후 의장직은 페루(2023), 칠레(2024)를 거쳐 현재 콜롬비아가 맡고 있다. 지난 5월 7일 보고타에서 개최된 PA 출범 14주년 기념 회의에서 의장국인 콜롬비아를 중심으로 회원국들은 이념적 차이를 넘어선 PA 회원국 간 단합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했다.
우리의 준회원국 가입은 인내심을 갖고 추진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PA의 의사결정은 컨센서스로 이루어진다. 즉, 개별 회원국이 거부권을 갖는다. 이는 싱가포르 외 여타 준회원국 1차 협상국과의 협상을 지연하는 주된 이유로 알려져 있다. 더욱이 PA는 당분간 코스타리카의 정회원국 가입에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이후 관세, 이민, 마약 등으로 미국과 마찰을 겪으면서 PA에서 미국 의존적 경제 구조를 탈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콜롬비아 외교부와 상공관광부의 고위급들은 물론이고 오피니언 리더들도 정부가 시장 다변화에 나서야 하며, 특히 아시아와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PA의 아시아를 향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때 우리와 PA의 관계 강화 모멘텀을 마련할 기회다.
우리와 PA와의 유망 협력 분야로 AI를 생각해 볼 수 있다. PA 회원국들은 AI 개발과 발전을 위한 국가 전략을 마련하는 등 적극적으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칠레는 2021년 ‘AI 국가 정책 및 액션플랜’을 수립했다. 칠레 국가인공지능센터(CENIA)는 올해 상반기 정식 출시를 목표로 브라질 및 민간과 협력하여 ChatGPT보다 중남미 지역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특화된 거대언어모형(LLM)인 ‘LatamGPT’를 개발하고 있다.4)
4) https://elpais.com/chile/2025-06-04/latam-gpt-el-modelo-de-inteligencia-artificial-entrenado-para-entender-a-america-latina-mejor-que-chatgpt.html
페루 역시 2021년 국가인공지능전략(ENIA)을 마련하고 2년마다 업데이트하고 있다. ENIA는 페루의 AI 발전을 위한 6개의 핵심 분야(인재 양성, 경제 성장, 기술 인프라 확충, 데이터 플랫폼 구축, 규범 형성, 협업 확대)를 선정하고, 분야별 세부 과제를 설정했다.5) 나아가 AI를 통해 페루의 사회경제적 혁신을 촉진하고 책임있고 지속가능한 AI 이용 모범 국가로 자리매김한다는 목표를 밝혔다.
5) https://precayetano.pe/cursos/wp-content/uploads/2023/05/Estrategia-Nacional-de-Inteligencia-Artificial.pdf
멕시코는 AI 국가 전략 수립을 준비하고 있다. 2023년 국가 전략 개발을 위한 실무그룹이 설립됐으며, 이듬해 10월 취임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Claudia Sheinbaum) 대통령은 국가과학기술위원회(CONAHCYT)를 과학기술인문혁신부로 승격시키고 국가인공지능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AI 국가역량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6)
6) https://www.infobae.com/mexico/2025/04/15/sheinbaum-anuncia-laboratorio-nacional-de-inteligencia-artificial/
콜롬비아도 AI에 진심이다. 2019년 이미 ‘디지털 전환과 인공지능 발전 로드맵(CONPES 3975)’을 마련해 AI를 사회경제적 변혁을 이끌 핵심 기술로 정의했다. 2020년 OECD AI 원칙을 채택하고(2019.5월), UNESCO의 AI 윤리 지침을 수용했다(2021.11월). 2025년 2월 14일에는 AI의 연구, 개발, 활용을 포괄하는 ‘AI 국가 전략(CONPES 4144)’을 발표했다. 구스타보 페트로(Gustavo Petro) 대통령은 AI 국가 전략을 발표하는 행사에서 1시간 넘게 연설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 비전 | ㅇ AI의 윤리적이고 지속가능한 개발과 활용 ㅇ AI를 통한 콜롬비아의 사회경제적 혁신 유도 ㅇ 콜롬비아의 중남미 AI 리더 국가로의 도약 |
|---|---|
| 구성 | ㅇ 6대 핵심과제와 106개의 세부과제를 부처별로 2030년까지 이행 |
| 예산 | ㅇ 2030년까지 총 4,793억 페소 투자(USD 약 $1억 1,600만) |
| 6대 핵심과제 | 1. 윤리 및 거버넌스 2. 데이터 및 인프라 3. 연구, 개발, 혁신 4. 인재 육성 및 역량 강화 5. 위험 완화 6. 보급 및 활용 |
| 주체 | ㅇ 과학기술혁신부와 정보통신기술부가 주관 부처로 전략 이행 ㅇ 교육부, 노동부, 상공관광부, 국방부 등은 소관 분야를 담당 |
한편, PA 4개 회원국은 AI 발전을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지만 자본, 기술, 경험 등의 부족으로 아직 뚜렷한 성과를 거두고 있지 못 하다. 2024년 세계 83개국의 AI 역량을 평가한 ‘글로벌 AI 지수’에 따르면 칠레는 38위, 멕시코는 45위, 콜롬비아는 51위, 페루는 61위를 차지했다. 4개국의 AI 발전 의지를 현실에서 구현해 줄 외부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7)
7) https://www.tortoisemedia.com/data/global-ai#rankings
콜롬비아 정부는 특히 우리와의 AI 협력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AI 국가 전략 발표 이후 양국 간 AI 협력을 협의하기 위한 실무회의를 갖기로 하자 예세니아 올라야(Yesenia Olaya) 과학기술혁신부 장관이 직접 참석하고 싶다는 의사를 먼저 밝혔다. 이를 계기로 우리 대사관과 콜롬비아 과학기술혁신부는 7월 말 개최 예정인 ‘한-콜롬비아 미래협력 포럼’에서 양국 AI 협력 방안을 더욱 심도 있게 논의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세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AI를 활용한 디지털 시장 통합을 지원하며 PA와 협력의 물꼬를 터볼 수 있다. PA는 2020년 제15차 정상회의에서 ‘디지털 전환 및 역내 디지털 시장 발전에 관한 공동선언8)’을 발표했다. 정상들은 각국 시장의 디지털 전환, 전자상거래 활성화, 디지털 무역 장벽 해소 등을 통한 역내 디지털 시장 통합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4개국 디지털 시장은 통합에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다. 다만, 국가별로 상이한 소비 패턴, 결제 시스템, 물류 체계, 광고 생태계 등 걸림돌도 많다. 이를 극복하는데 우리의 AI 및 ICT 기술과 노하우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정책 담당자는 물론이고 양측 기업 간 교류의 장을 만드는 것이다.
8) https://alianzapacifico.net/wp-content/uploads/2021/06/Declaracion-Presidencial-Mercado-Digital-Regional.pdf
둘째, PA의 최근 또 다른 관심사는 중소기업(Small and Medium Enterprises, SMEs) 육성이다. PA는 2019년 제14차 정상회의에서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디지털 전환을 위해 협력하기로 합의하고 기금을 조성했다. 이듬해 제15차 정상회의에서는 창업 초기 단계 기업 지원을 위한 ‘중소기업 인큐베이터’를 설치하고, 중소기업의 전자상거래 활성화를 위한 디지털 플랫폼 구축에 뜻을 모았다. 우리도 중소벤처기업부와 지자체 등을 중심으로 AI를 활용한 중소기업 역량 강화와 창업 진흥 정책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만큼, 이 부분에서 우리와 PA의 협력 방안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청년 분야에서의 협력을 생각해볼 수 있다. PA는 2016년부터 ‘청년 포럼’을 개최하는 등 청년의 교육 기회 확대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 초 PA 각료회의(Council of Ministers)는 청년 정책에 관한 기술 위원회(Technical Group)를 신설하기로 합의하고 청년 교류 활성화, 청년 교육 확대, 청년 권리 신장 등을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 PA 회원국 청년들이 우리의 경제발전 경험, 문화예술, 과학기술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만큼, 이들을 한국으로 초청하여 우리 청년들과 교류하는 프로그램을 PA와 공동으로 추진해 볼 수 있을 것이다.9) 이때도 역시 전 세계 청년들의 관심사인 AI가 유망한 주제가 될 수 있다.
9) 현재는 동아시아-라틴아메리카 협력포럼(FEALAC) 차원에서 양측 청년층 교류가 진행되고 있다.
PA 준회원국 가입은 장기적 과정이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FTA 협상 진전 노력과 동시에 AI 등 우리의 강점 분야를 중심으로 PA와의 협력을 심화해 나가면서 적기를 노릴 필요가 있다. 글로벌 무역 질서가 재편되고 AI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이 뜨거운 가운데, 우리와 PA의 협력이 확대되고 심화되어 우리의 PA 준회원국 가입이 조속히 실현되길 기대해본다.
(작성일: 2025.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