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 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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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로 연결된 미래:
한-중남미 디지털정부 협력의 현재와 전망
행정안전부 국제디지털협력과 박병준 과장
□ 들어가며

지금, 전 세계는 디지털 전환의 거대한 물결 속에 있다. 한 국가 안에서 디지털 전환은 행정 효율성 향상, 공공서비스 접근성 확대, 시민 삶의 질 개선 등 다양한 사회적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비대면 행정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디지털정부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중남미 국가들 역시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디지털 전환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 국가에서는 제도·인프라·인적 역량 등의 측면에서 디지털 격차가 여전히 존재하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국제적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대한민국은 ▴UN 전자정부평가, ▴OECD 디지털정부 평가, ▴세계은행 GovTech 성숙도 평가 등에서 지속적으로 최상위권을 유지하며 디지털정부 분야의 글로벌 리더로 자리매김해 왔다. 행정안전부는 이러한 성과를 이루게 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중남미 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디지털 역량 강화와 함께 동 분야 양국의 동반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본 글에서는 한-중남미 디지털정부 협력의 추진 배경과 방향, 주요 협력 사례 및 성과, 향후 과제를 살펴봄으로써 앞으로의 협력 발전 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 한-중남미 디지털 전환 협력의 배경

중남미 국가들이 직면한 공공서비스의 접근성 부족, 민원 처리의 비효율성, 도시와 농촌 간의 정보 격차 등의 행정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행정의 현대화’가 시급한 정책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중남미 지역의 디지털정부 발전 수준은 국가마다 편차가 크다. 2024년에 발표된 UN 전자정부발전지수(E-Government Development Index)에서 코스타리카, 칠레 등 일부 국가는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보이는 반면, 중미 및 카리브해 국가들은 여전히 중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디지털 인프라의 물리적 구축뿐만 아니라, 공무원의 디지털 역량, 개인정보보호 제도, 통합 행정 플랫폼 등의 제도적 기반도 미비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은 중남미 국가들에게 신뢰할 수 있는 실질적인 협력 파트너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디지털정부를 체계적으로 발전시켜 왔으며, 그 과정에서 기능별 행정 시스템은 물론 정부24, 모바일 신분증, 공공데이터포털 등 다양한 서비스와 플랫폼을 성공적으로 구축해 왔다. 이러한 경험은 단순한 선진 사례를 넘어, 중남미 국가들의 현실에 적용 가능한 ‘실행 모델’로 평가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디지털정부 국제협력 사업을 종합적으로 총괄하며, 디지털정부 협력센터 운영, 고위급 초청 연수, 협력사절단 파견 등 다층적인 협력 수단을 통해 중남미 지역과의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는 단기적 기술 이전을 넘어 지속 가능한 파트너십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나아가 우리 기업의 중남미 진출을 위한 전략적 토대 마련에도 기여하고 있다.

□ 주요 협력 사업 및 성과
디지털정부 협력센터: 현지에 뿌리내린 한국형 솔루션

디지털정부 협력센터는 우리 정부가 중남미 현지에 상주 인력을 파견하고, 협력국 정부와 공동 사무소를 운영하며 디지털 전환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중장기 협력 모델이다. 현재 중남미에는 ▴페루(’21~’26), ▴코스타리카(’23~’25), ▴온두라스(’24~’26)에 협력센터가 설치되어 운영 중이다. 각 센터에는 1명의 전문가가 파견 및 상주하면서 현지 수요에 기반하여 공동협력과제를 발굴·추진하며, 정보화 컨설팅, 시범사업, 공무원 연수, 기술 이전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

코스타리카 협력센터는 2023~2024년 동안 디지털 ID 기반 e-Wallet 파일럿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개발하였고, 독립적 정부 기관인 ‘디지털정부청(Agencia Nacional de Gobierno Digital, ANGD)’ 신설에 기여하였다. 특히 해당 시스템은 국민이 모바일로 신분증을 발급받고, 세금 납부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을 포함하며, 국가 차원의 디지털 정체성 관리 모델로 확장될 전망이다. 이와 함께 페루 협력센터는 AI 기반 민원 자동화 시스템, 온두라스 협력센터는 디지털 인재 양성, AI 규제 프레임워크 정비 등 제도 기반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이처럼 각국에 설치된 협력센터는 기술 이전에 그치지 않고, 한국의 디지털정부 모델을 현지 여건에 맞춰 ‘공공정책’으로 전환시키는 중추적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다.


디지털정부 협력사절단: 현지 수요를 발견하고, 길을 여는 사람들

디지털정부 협력사절단은 2013년부터 현재까지 코로나19로 미운영된 2020년을 제외하고 매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협력사절단은 행정안전부뿐만 아니라 우수 시스템을 운영 중인 각 정부 부처가 공동참여하는 데 의미가 있다. 일례로 2024년 10월, 행정안전부는 외교부와 함께 코스타리카와 콜롬비아에 범부처 디지털정부 협력사절단을 파견하였다. 이 사절단에는 한국조폐공사 등 10개 기관이 참여하여 한국의 디지털정부 우수사례를 현지 고위급 관계자에게 직접 소개하고, 민관협력 기반의 비즈니스 미팅을 다수 진행하였다.

특히 콜롬비아 정보통신기술부와의 회담에서는 디지털정부 협력센터 신규 설치 및 한국 기업의 기술 수출 연계 방안이 논의되었으며, 향후 2026년 협력센터 설치를 목표로 ODA 연계사업을 검토 중에 있다.

사절단 활동은 단순한 홍보를 넘어서, 현지 정부와 기업, 국제기구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의 실시간 네트워킹을 가능하게 하며, 향후 협력사업의 사전 타당성 조사와 수요 분석 기능도 수행하고 있다.


디지털정부 초청연수

행정안전부는 개도국의 고위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연수 프로그램도 적극 운영 중이다. 2024년에는 페루, 온두라스, 과테말라, 우루과이 등 중남미 고위급 및 미주개발은행(IDB) 관계자 총 13명의 공무원이 참여하는 디지털정부 초청 연수 과정을 운영하였다. 연수 과정은 공공데이터 개방, 상호운용성, 사이버보안 등 중남미 참석자의 수요에 맞춘 주제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연수 참가자들은 한국의 디지털 전환 전략이 행정 혁신과 국민 편익 제고에 효과적으로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하였다. 매년 중남미 고위급 연수를 추진하자는 의견이 제기되었으며, 전자조달 시스템과 관련하여 투명성 등의 질문을 하며 추가적인 문의를 요청할 정도로 큰 관심을 보였다. 이러한 연수는 일회성 교육을 넘어서, 중남미 공무원 네트워크 형성과 정책 적용의 기초자료로 활용되며 실질적 정책 수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 협력의 의의와 기대효과
중남미 국가들의 디지털 역량 강화와 서비스 혁신

중남미 국가들은 우리나라와 디지털정부 협력을 통해 행정 효율성과 국민 체감형 서비스 개선이라는 이중 효과를 실현하고 있다.

페루의 경우, 2025년 7월 31일 기준 94%의 기관이 온라인 민원 접수창구를 운영하는 등 행정 서비스의 디지털화가 확산되었다. 또한 1,465개의 디지털 지도와 17,287개의 오픈 데이터 세트를 공개하며 데이터 개방을 강화했고, 전 부처가 정보보호 관리 체계를 도입해 보안 수준도 높였다. 국민들이 직접 체감하는 부분에서는 Gob.pe1) 플랫폼이 핵심이다. 중앙과 지방정부 대부분이 이 플랫폼에 통합되었고, 콘텐츠 만족도는 89%로 나타났다. Facilita Perú를 통해서는 430만 건 이상의 온라인 행정 신청이 처리되면서 디지털 행정 서비스가 일상화되고 있다.

1) Gob.pe는 페루 정부 통합 포털이며, Facilita Perú는 그 산하 플랫폼으로, 온라인 신청·접수·처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지털 행정 플랫폼

코스타리카의 디지털정부청(ANGD)은 출범과 함께 행정 현대화를 이끌 새로운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무엇보다도 각 부처와 기관별로 분산되어 있던 디지털 전환 사업을 통합하고 표준화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컨트롤타워가 마련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로 꼽힌다. 이를 통해 행정 절차가 단순히 디지털화되는 것을 넘어, 기관 간 상호운용성과 정보 공유가 가능해져 국민에게 더 빠르고 투명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기대가 크다.

온두라스는 2024년부터 한국 디지털정부 협력센터가 설치된 만큼, 아직 눈에 띄는 성과는 보이지 않으나 디지털 인재 양성과 AI 규제 프레임워크 정비 등 제도 기반 마련에 집중하여 행정 효율성을 높이고 국민에게 더 나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며, 동시에 해외 투자자와 글로벌 IT 기업들에도 신뢰할 수 있는 비즈니스 환경을 제공하게 된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제도적 기반 마련은 온두라스를 중남미 지역의 디지털 혁신 허브로 성장시키는 촉매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대한민국 디지털정부 해외 진출 기반 확대 및 브랜드 제고

한-중남미 협력은 한국의 디지털정부 모델을 기반으로 한 신(新)시장 개척의 교두보로 기능하고 있다. 국가 간 신뢰를 바탕으로 협력센터가 운영되고, 고위급 연수와 사절단 교류가 이어지면서, 국내 디지털 솔루션 기업들이 중남미 공공 시장에 보다 안정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고 있다. 실제로 디지털정부 관련 기업의 중남미 진출 건수는 최근 몇 년 간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며, 디지털 신분증, 공공데이터 플랫폼, 재정정보 시스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디지털정부를 ‘국가 브랜드’로 수출하는 구조로 진화하고 있으며, 이는 산업적 측면은 물론, 외교·안보·문화 분야에서도 전략적 레버리지로 작용할 수 있다.


지속가능한 협력 생태계 구축

무엇보다도, 한-중남미 디지털 협력은 기술 이전이나 단기 사업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협력 생태계 구축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디지털정부 협력센터는 단순한 프로젝트 수행 기관이 아닌, 거버넌스·정책·실행 역량이 통합된 공동 플랫폼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연례 포럼, 연수, 정례 협의체 등을 통해 협력 구조가 제도화되고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공동의 디지털 표준 형성, 국제 규범 공동 대응, 다자협력 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중남미 지역이 한국의 디지털 동반 파트너로 정착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 향후 과제 및 제언
현지 수요 맞춤형 협력 확대와 한국형 모델의 현지화

중남미 각국은 국가마다 행정 체계, 법 제도, 언어·문화 환경이 상이하다. 따라서 한국의 디지털정부 모델을 단순히 복제하는 방식보다는 현지 수요에 기반한 맞춤형 솔루션을 공동 기획하고 설계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예컨대, 코스타리카는 디지털 신원 인증과 통합서비스 중심의 정책 수요가 높은 반면, 온두라스는 AI 기반 보건 서비스나 사이버보안 관련 제도 정비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국가별 디지털 정책 우선순위에 맞는 차별화된 협력 전략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현지 파트너십 강화와 장기적 관점의 기술 이전이 병행되어야 한다. 또한, 현지 법 제도·재정제도·기술 환경을 반영하여 한국형 모델의 모듈화 및 현지화 전략을 더욱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단순한 기술 이전이 아닌 ‘공공서비스 설계 경험’의 이전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협력센터 기능 고도화 및 제도적 지속성 확보

현재 운영 중인 협력센터는 성과를 내고 있지만, 사업 지속성과 제도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다음 과제로 지적된다. 특히 파견 인력의 전문성 유지, 현지 기관과의 협업 구조 강화, 공동과제의 실효성 제고 등이 중점 개선 과제로 꼽힌다. 이를 위해 ▴협력센터의 운영 기간 연장 또는 상설화, ▴협력국 정부와의 MOU 기반 사업 기획 확대, ▴성과 기반의 예산 투입 구조 마련 등 제도적 보완이 요구된다. 또한, 협력센터를 디지털정부 외교의 전진기지로 삼아, 주변국 협력까지 아우를 수 있는 권역별 허브 기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우리 기업 진출 확대를 위한 민관 연계 강화

디지털정부 협력은 공공부문 역량 강화라는 측면 외에도, 국내 디지털 솔루션 기업의 중남미 진출 기회를 넓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민관의 전략적 연계를 보다 공고히 해야 한다. 사절단 연계 및 유관 기관 협력을 통해 기업이 ODA 관련 사업과 민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반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는 민간기업이 단기 수주를 넘어서 중장기 파트너십 구축과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 확보로 연결될 수 있도록 정책적 유인과 컨설팅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 글을 마치며

한-중남미 디지털정부 협력은 단순한 기술 전수가 아니라, 상호 학습과 공동 성장의 여정이다. 한국은 디지털정부 선도국가로서 쌓아온 정책 경험과 기술 역량을 기반으로, 파트너 국가들의 디지털 전환을 촉진하는 동반자가 되어왔다. 동시에, 중남미 각국의 현장 경험과 새로운 정책 실험은 한국에도 소중한 통찰을 제공하며, 글로벌 디지털 협력의 방향성을 재정립하게 한다.

디지털 전환은 기술의 문제일 뿐 아니라 포용과 신뢰의 문제다. 중남미와 한국이 함께 추진해 온 협력은 이러한 철학을 실천하는 모범 사례이며, 이는 앞으로도 더 많은 국가들과의 협력 모델로 확산될 수 있다. 중남미 진출을 모색하는 우리 기업들은 정부 간 협력 인프라와 제도적 신뢰 기반 위에서, K-디지털정부 솔루션은 단순한 수출을 넘어 공공서비스 혁신의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앞으로도 한국이 디지털을 매개로 중남미 각국과 함께 연결되고, 성장하며, 공동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지속 가능한 디지털 파트너가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