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관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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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칠레 AI 협력, 데이터 및 글로벌 경쟁력 확보의 전략적 열쇠
주칠레대한민국대사관 황정한 공사참사관
1. AI 대전환 – 신정부 국가 핵심 성장 전략

우리 정부는 지난 8월 22일 발표한 ‘새정부 경제성장전략’을 통해 인공지능(AI) 대전환을 국가 핵심 성장 전략으로 제시하였다. 이 전략의 핵심은 제조업 강국으로서 AI와 산업 전반의 융합을 통해 잠재성장률을 제고하고,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국가적 비전이다. 특히, 기업주도 기술 혁신을 중심으로 한 ‘30대 선도 프로젝트’ 중 15개가 ‘AI 전환(AX: AI Transformation)’에 집중되어 있어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다.

AI 도입 및 활용을 통해 산업 전반을 고도화하려는 ‘소버린 AI(Sovereign AI)’* 전략은 자국 기술 기반의 인공지능 역량을 확보함으로써 외부 의존도를 줄이고, 디지털 주권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진정한 소버린 AI의 구축을 위해서는 국내 데이터 보호만으로는 부족하다. 글로벌 AI 경쟁의 핵심은 고품질·다양한 데이터 확보에 있으며, 특히 해외 데이터는 AI 고도화와 해외 시장에서의 우리 기업 경쟁력 강화에 있어 결정적인 요소다.

* 소버린 AI(sovereign AI): 자국의 데이터와 인프라를 기반으로 독자적으로 개발한 인공지능(AI) 기술로, 국가 차원에서 데이터·인프라·AI 모델 등을 직접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기술을 가리킴. 이는 외국 기술에 대한 종속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AI를 운영해 주도권을 가진다는 것으로, 이러한 점에서 데이터 주권보다 넓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음.

2. 국제협력 필요성과 칠레의 전략적 가치

이러한 맥락에서 칠레와의 협력은 단순한 양자 간 기술 교류를 넘어, 중남미 AI 시장 진출과 글로벌 데이터 확보의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다. 칠레 정부는 AI 분야에서 역내 리더십을 적극 강화하고 있으며, 중남미 AI 경쟁에서 선도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칠레는 AI 인프라, 인재 양성, R&D 역량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중남미 인공지능지수(Latin American Artificial Intelligence Index, ILIA)’에서 2023년과 2024년 모두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으며, 역내 소버린 AI 모델인 Latam-GPT 개발을 주도하면서 데이터 주권 강화에 앞장서고 있다.

칠레는 ChatGPT 상용화 이전부터 국가인공지능센터(Centro Nacional de Inteligencia Artificial, CENIA)를 중심으로 Latam-GPT 개발을 추진해 왔으며, 현재는 동 센터가 중심이 되어,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브라질, 콜롬비아, 에콰도르, 가이아나, 파라과이, 페루, 수리남, 우루과이, 베네수엘라 등 12개국과 30여 개의 지역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동 모델은 중남미의 언어, 문화, 제도 등을 반영한 지역 특화 AI 모델로, 디지털 주권의 상징으로 주목받고 있다.

< Latam-GPT 베타버전 화면 (2025년 4분기 중남미 전역 출시 예정) >
자료: Americas Quarterly

칠레에는 현재 33개의 데이터센터(228MW 규모)가 운영 중이며, 34개의 신규 프로젝트가 개발 중에 있다. 이들이 완공되면 데이터센터 용량은 현재의 두 배 이상으로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2024년 칠레 과학기술부는 ‘국가 데이터센터 계획(Plan Nacional de Data Centers, PDATA)’을 수립하여, 5년 내 용량 3배 확대와 25억 달러 이상의 투자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주요 사업자는 ▴ODATA, ▴Equinix, ▴Ascenty, ▴Microsoft, ▴AWS 등이며, 구글 또한 진출을 검토 중이다.

한편, 칠레는 AI 규제 법제화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2023년과 2024년 각각 의회와 정부에서 발의된 AI 관련 법안은 현재 통합 심의 중이며, 인간 중심성, 윤리적 책임, 공정성, 투명성, 개인정보 보호, 설명 가능성 등을 주요 원칙으로 삼고 있다. 동 법안은 UNESCO AI 윤리 권고안, OECD 기준, EU AI 법안 등 국제 기준에 부합하도록 입법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동 법안을 통해 우리와의 협력도 제도적으로 안정적인 기반 위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된다.

3. 한-칠레(중남미) AI 협력방안 제언

한국이 AI 시대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미국·중국 등 ‘빅2’ 중심의 전략에서 벗어나, 제3국 및 개도국과의 협력 확대가 필수적이다. 또한 AI는 기술 협력뿐 아니라 국제 규범과 제도화가 수반되는 분야이므로, 민간기업 주도의 협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정부 차원의 세부 전략 수립과 적극적인 개입 및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1) DEPA를 활용한 협력 확대 및 전략적 접근

한국은 2024년 5월 디지털 경제동반자협정(Digital Economy Partnership Agreement, DEPA)*에 가입하였다. 이 협정은 디지털 무역 촉진 및 디지털 경제 프레임워크 구축을 목표로 하며, 데이터 이동, 알고리즘 보호, 신기술 협력 등 다양한 조항을 통해 협력의 제도적 기반을 제공한다. 칠레와는 이 협정을 기반으로 디지털 인프라 구축, 공공데이터 공유, AI 윤리 기준 정립 등 다양한 협력 과제를 포괄적 파트너십 형태로 추진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원 회원국은 칠레, 싱가포르, 뉴질랜드이며, 현재 중국, 캐나다, 코스타리카, UAE등이 가입 협상을 진행 중

2) ODA 및 KSP를 통한 AI 협력 및 데이터 확보 전략

구글, 메타(페이스북), 유튜브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선점한 데이터 시장에서 한국도 개도국과의 협력을 통해 데이터 확보 및 공동 개발 전략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ODA(공적개발원조) 및 KSP(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와 같은 개발협력 사업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2025년 9월 9일, 칠레에 위치한 유엔 라틴아메리카·카리브 경제위원회(ECLAC)와 기획재정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공동으로 개최한 ‘KSP 중남미 세미나’에서는 ‘디지털 혁신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주제로, ▴취약계층을 위한 디지털 등록 시스템, ▴디지털 기반 공공의료 서비스 개선, ▴디지털정부 협력 등 다양한 협력 사례가 소개되었다. 그러나 자문 이후 실제 시스템 구축이나 데이터 확보로 이어지는 후속 사업은 드문 것이 현실이다. 향후 디지털 분야 ODA와 KSP 사업이 시스템 구축 및 데이터 공유·축적으로까지 이어진다면, 협력국은 보다 효율적이고 고품질의 공공서비스를 국민에게 제공할 수 있으며, 한국은 현지 데이터를 확보하여 이를 활용한 맞춤형 서비스 개발과 AI 고도화에 활용할 수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AI 시대 수출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자산이 될 것이다.

4. ‘데이터 영토’ 확보를 위한 글로벌 협력 파트너: 칠레

칠레는 한국의 중남미 AI 시장 진출을 위한 전략적 관문이며, 동시에 한국은 칠레에게 아시아 진출의 핵심 파트너다. 이와 같은 상호보완적 관계를 바탕으로 한 AI 협력은 양국 모두에게 실질적인 경제 효과와 디지털 주권 강화를 가져다줄 수 있다.

AI 시대 경쟁력은 단순한 기술력에 국한되지 않으며, 데이터와 글로벌 협력 네트워크 확보가 관건이다. 한국은 제조 기반, IT 인프라, AI 기술을 갖추고 있으며, 칠레는 중남미 지역 데이터 중심지의 위치와 제도적 안정성을 보유하고 있다. AI 3대 강국 도약을 목표로 하는 한국 정부에게 있어, 칠레는 중남미 지역에서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인 협력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이다.